트럼프 "북한 보라" 다음날…김정은, 보란듯 미사일 쐈다

박현주 2024. 9. 12.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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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북한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보십시오."(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현지시간 10일 미 대선후보 TV 토론)

미 공화당 대선 주자인 트럼프의 이 발언이 나온 지 24시간도 채 되지 않아 북한이 12일 동해 상으로 단거리탄도미사일(SRBM)을 발사했다. 북·미 간 직거래로 제재 완화 등을 얻어내기 위해 트럼프의 당선을 내심 바라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트럼프의 주장에 설득력이라도 실어주려는 듯 '지원 사격'에 나섰다는 해석이 가능한 대목이다.
10일(현지시간) 미국 에서 열린 대선후보 토론에서 발언하는 도널드 트럼프. 로이터. 연합뉴스.


美 대선 토론 직후 미사일 발사


합동참모본부에 따르면 북한은 이날 오전 7시 10분쯤 평양 일대에서 동해 상으로 SRBM 수 발을 발사했다. 미사일은 360여㎞를 비행한 뒤 동해 상에 탄착했다고 합참은 밝혔다. 앞서 북한은 지난 7월 1일 초대형 탄두 장착 신형 탄도미사일 발사 실패(북한은 '성공'이라 주장) 이후 미사일 도발을 중단했는데, 73일 만에 재개한 것이다.

북한은 지난 7월 말 평안북도와 자강도 일대에서 발생한 기록적인 수해 수습에 국가 역량을 사실상 총동원하느라 그간 쓰레기 풍선 부양(지난 4~8일) 등 저강도 '회색지대 도발'만 이어갔다. 그러다 이날 돌연 SRBM 발사를 감행한 건 전날 이뤄진 미 대선 토론이 영향을 줬을 수 있다.

지난 7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평안북도 신의주시와 의주군의 큰물(홍수) 피해 현장을 직접 방문한 모습. 노동신문. 뉴스1.


토론에서 트럼프의 경쟁 상대인 미 민주당 대선 주자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은 "독재자들은 트럼프를 아첨과 호의로 조종할 수 있다고 확신하기 때문에 트럼프의 당선을 응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트럼프는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가 자신에게 해 준 말을 인용한다면서 "중국과 북한이 트럼프를 두려워한다"고 맞받았다. 이어 "지금 북한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보라"고 말했다. 자신의 재임 시절에는 북한이 모라토리엄(핵실험·장거리 탄도미사일 발사 유예)을 했던 반면 바이든 행정부 들어 이를 파기하고(2022년 3월) 탄도미사일 도발을 거듭하고 있다는 취지였다.

10일(현지시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서 ABC 방송이 주최한 미 대선후보 TV토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과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이 맞붙은 모습. 로이터. 연합뉴스.


트럼프 밀릴까 '지원 사격'


트럼프의 이런 발언 뒤 북한이 이튿날 곧바로 탄도미사일 도발 재개에 나선 건 미 대선을 50여일 앞둔 상황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영향력을 미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이와 관련, 미 CNN 여론조사 결과 전날 미 대선 TV토론을 지켜본 유권자의 63%는 트럼프보다 해리스가 더 잘했다고 응답했는데, 박빙 판세가 트럼프에 불리하게 돌아가지 않도록 행동에 나선 것일 수 있다.

김재천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실제 가능성은 매우 작지만, 김정은으로선 트럼프가 당선될 경우 자신이 원하는 '군축 협상'을 시도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일말의 기대를 할 수 있다"며 "독재자들과도 단발성 '딜'과 개인적 친분 형성에 열려 있는 트럼프를 해리스에 비해 '해볼 만한' 상대로 여기기 때문에 그의 당선을 바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미 대선을 앞두고 '나를 좀 봐달라'는 식의 존재감 높이기 시도가 이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2018년 6월 싱가포르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만나 정상회담을 하는 모습. AFP. 연합뉴스.


다만 북한은 직접적 대미 위협용인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나 군사정찰위성이 아닌 SRBM을 이날 도발 수단으로 택했다. 수해 복구 작업으로 인해 중량감 있는 군사 도발을 벌일 여력도 없는 데다 실패할 부담도 없는 가장 쉬운 카드이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달 초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평안북도, 자강도, 양강도 등에서 수해로 집을 잃은 이재민과 만나는 모습.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7차 핵실험 등 각종 도발 가능성


정부는 북한이 미국 대선을 앞두고 존재감을 높이기 위해 각종 도발을 감행할 가능성을 주시하고 있다. 2022년 초 이미 실시 준비를 완료한 7차 핵실험도 여전히 유효한 카드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은 지난 10일 외교·통일·안보 분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미 대선 전 북한이 7차 핵실험을 감행할 가능성과 관련해 "(북한이) 어떤 형태로든 중대 도발을 해서 시선을 끌려는 시도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 많은 사람(전문가)의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이런 가운데 북한의 풍계리 핵실험장에 최근 홍수로 인해 주변의 교량이 쓸려가는 등 피해가 발생했다고 미국의 북한 전문매체 38노스가 이날 보도했다. 풍계리에서 매년 반복되는 홍수 피해지만, 구체적인 피해 규모에 따라 연내 핵실험 가능성에 타격을 줄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북한은 이번 홍수로 인해 군수공장이 밀집한 자강도에서도 큰 피해를 본 것으로 정보당국은 파악하고 있다.

한편 군은 북한이 이날 쏜 미사일에 대해 초대형 방사포(KN-25)를 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이와 관련,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오늘 발사한 대형 방사포는 단거리 미사일로 분류될 수 있고, 2차적으로 우리에 대해 계속 위협을 가해 온다는 메시지일 수도 있다"며 "1차적으로 러시아와 군사 교류에 있어 러시아에 수출할 모델에 대해 실험해 보는 것이 아닌가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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