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도시 주민이 본 '공무원 통근 버스' 논란

조명호 2026. 2. 2.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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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중단지시는 타당한 결정, 하지만 열악한 정주여건 개선도 동시에 이뤄져야

[조명호 기자]

대구 혁신도시에 산 지 10년째다. 혁신도시 아파트에 살지만 이웃에 공공기관 직원 가족은 잘 만날 수 없다. 나는 공공기관 직원이 아닌 일반 주민이다. 예전 옆집에 살던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 직원 가족은 몇 년 전 이사를 갔다.

금요일 오후가 되면 한국가스공사 본사 앞 도로에 대형버스 서너 대가 줄지어 선다. 서울 방면, 경기 방면. 목적지가 적힌 플래카드를 붙인 버스들이다. 직원들이 주말을 보내러 수도권 '집'으로 향한다. 이제 이런 풍경이 곧 사라질 예정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한마디가 전국의 혁신도시에 근무하는 사람들의 머리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대통령의 발언, 그리고 즉각적인 조치
▲ 혁신도시 통근버스 충북혁신도시 공공기관 직원들을 출퇴근시키는 통근버스들
ⓒ 진천군
지난 1월 21일, 이재명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공공기관을 지방으로 이전해 놓고 서울로 가는 전세버스를 대주는 건 이전 효과가 없다."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국토교통부는 지방 이전 공공기관의 수도권 전세 통근버스를 3개월 이내, 늦어도 6개월 안에 전면 중단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전국 149개 지방 이전 공공기관 중 47곳이 수도권 통근버스를 운영하고 있었다. 여기에 연간 약 220억 원의 예산이 투입되고 있었다. 특히 수도권과 가까운 충북은 11개 기관 중 10개가, 강원은 11개 중 6개가 평일 통근버스를 운영 중이었다. KTX로 1시간이면 서울에 닿는 지리적 이점이 오히려 '반쪽짜리 이전'을 부추긴 셈이 되어버렸다.

대통령과 국토교통부의 지침에 공공기관 직원들은 즉각 반발했다. "맞벌이와 자녀 교육 현실을 무시한 탁상행정"이라는 목소리가 높았다. 하지만 이 문제를 단순히 '불편해졌다'는 차원으로만 볼 수는 없다.

혁신도시, 애초에 무엇을 위한 것이었나
▲ 대구혁신도시 혁신도시 공공기관에 근무하는 사람들은 있지만, 혁신도시에 거주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 대구시
2007년 노무현 정부는 국가 균형발전이라는 기치 아래 혁신도시 사업을 시작했다. 단순한 사무실 이전이 아니라 사람이 살고, 가족이 함께 머무르며, 지역경제가 성장하도록 설계된 국가급 프로젝트였다.

내가 지금 거주하는 대구 혁신도시도 2014년 그런 취지로 조성됐다. 한국가스공사를 비롯한 공공기관이 입주했고, 공공기관 사택, 아파트 단지와 쇼핑몰, 학교가 들어섰다. 하지만 18년이 지난 지금, 금요일마다 혁신도시를 빠져나가는 버스 행렬이 현실을 말해준다. '이전'은 완료됐지만, '정착'은 여전히 유보된 상태다.

2020년 국토교통부 조사에 따르면 전국 혁신도시의 가족 동반 이주율은 평균 65.3%에 불과했다. 셋 중 한 명은 가족을 수도권에 두고 혼자 내려와 사는 셈이다. 제주(81.5%), 부산(77.5%)과 달리 충북은 46.9%, 강원은 60.5%에 그쳤다. 역설적이게도 수도권과 가깝다는 게 오히려 독이 됐다. 이들을 두고 '혁신도시 기러기'라는 신조어까지 생겼다. 직장은 지방에, 가족은 수도권에. 매주 수백 킬로미터를 오가는 고달픈 삶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공정한 이야기를 위해서는 이 부분도 이야기해야 한다. 공공기관 이전 과정에서 직원들에게 제공된 지원은 적지 않았다. 혁신도시 아파트 우선 분양권, 가구당 수백만 원에서 천만 원 이상의 이주 정착 지원금, 교통비 지원, 자녀 학자금 보조 등이 주어졌다. 이건 정책적 혜택이었다. 국가 균형발전이라는 공익 목적을 위해 세금과 공적재원으로 제공된 지원이었다. 문제는 이 혜택들은 "지역에 정착한다"는 전제 위에서 제공됐다는 점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많은 공공기관 직원들이 수도권 생활을 유지한다면, 그 전제는 잘못된 것이다.

정주 여건의 현실, 외면할 수 없는 문제

물론 공공기관 직원들의 반발과 하소연도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혁신도시의 정주 여건은 여전히 문제다.

가장 큰 건 교육이다. 대구 혁신도시는 고등학교가 없다. 과학고등학교가 하나 있지만 일반 전형으로 들어갈 수 있는 학교가 아니다. 동구 다른 지역에 위치한 고등학교가 혁신도시로 이전을 하려고 했으나 여러가지 사정에 의해 미루어지고 있다. 고등학교 이전 부지는 현재 풀만 가득 자라고 있다. 대입을 앞둔 학부모는 불안할 수밖에 없다. 수도권에 비해 학원가도 빈약하고, 특목고나 자사고 선택지도 제한적이다.

의료 인프라도 큰 문제다. 2020년 조사에서 혁신도시 거주민이 가장 많이 요구한 게 의료기관 접근성 개선이었다. 종합병원까지 30~40분, 응급상황이면 더 먼 거리를 이동해야 한다. 배우자의 직장 문제도 심각하다. 수도권에서 전문직으로 일하던 배우자가 지방에서 같은 수준의 일자리를 찾기란 쉽지 않다.

거주 이전의 자유 vs. 세금으로 받은 혜택

대한민국 헌법은 거주 이전의 자유를 보장한다. 어디에 살지는 개인의 선택이다. 다만 여기에는 빠진 전제가 하나 있다. 수도권에 계속 살 자유는 있지만, 이미 받은 혜택은 어떻게 할 것인가?

혁신도시 아파트 분양권, 이주비, 정착 지원금. 이 모든 것이 "지역에 정착한다"는 전제 위에서 제공됐다. 지원금을 돌려달라고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추가적인 지원, 즉 수도권 통근버스 같은 편의까지 계속 제공해야 하는지는 다른 문제다.

왜 공공기관 예산으로 '서울행 버스'를 운영해야 하는가? 공공기관의 예산은 직접적인 세금은 아니지만, 국민이 부담하는 공공요금에서 나온 공적 재원이다. 그 돈으로 수도권 통근버스를 운영하는 것이 과연 공기업의 역할에 부합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수도권 통근버스를 운영하는 데 소요되는 비용 연간 220억 원을 혁신도시 정주여건 개선에 쓰는 것이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그런데 이 돈을 매주 수도권과 지방을 오가는 버스 운영에 쓰고 있다.

지방 근무를 선택하지 않거나 개인 사정으로 수도권 거주를 유지한다면, 그 비용은 개인이 부담하는 게 맞다. KTX, 자가용, 고속버스 등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2022년 정부세종청사의 공무원 통근버스가 중단된 선례도 있다. 당시에도 반발이 있었지만, 결국 KTX나 자가용으로 출퇴근하는 방식에 적응했다.

이번 통근버스 중단 지시의 방향성은 타당하다. 이전은 했으나 정착하지 않은 구조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메시지다. 하지만 동시에 해야 할 일이 있다. 버스만 끊고 끝낼 문제가 아니다. 정착을 요구했다면, 정착할 수 있는 조건도 함께 만들어야 한다.

중앙정부, 지자체, 이전 공공기관이 함께 정주 여건 개선에 나서야 한다. 무엇보다 교육 환경이 시급하다. 혁신도시마다 고등학교를 최소 2~3곳 확충하고, 대입 지원 프로그램을 강화해야 한다. 의료 인프라도 필요하다. 종합병원급 의료기관을 혁신도시 내에 유치하고, 응급의료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배우자 일자리 문제도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혁신도시 내 기업 유치를 확대하고, 공공기관들이 협력해서 배우자 채용 프로그램을 운영할 필요가 있다. 뻔한 이야기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그럼 이 뻔한 상황을 왜 20년 가까운 세월동안 방치했는가?

책임은 누구에게 있나

혁신도시 정책이 반쪽짜리로 운영된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 답은 '모두'다. 공공기관 직원들은 혜택은 받았지만 정착의 의무는 회피했다. 중앙정부와 지자체는 정주 여건 개선을 뒷전으로 미뤘다. 공공기관들은 근본적 해결책 대신 통근버스라는 임시방편으로 문제를 덮어왔다.

18년이 지났다. 이제는 누가 옳고 누가 그른지를 따질 때가 아니다.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를 고민할 때다.

나는 공공기관 직원이 아니다. 그저 혁신도시에 사는 평범한 주민이다. 금요일 저녁마다 버스를 타고 떠나는 사람들을 보며 묘한 기분이 들곤 했다. 저들에게 이곳은 직장일 뿐, 집은 아니구나.

통근버스가 사라지면 어떻게 될까? 어쩌면 더 많은 사람들이 수도권으로 돌아갈지도 모른다. 아니면 혁신도시에 정착할지도 모른다. 확실한 건, 지금 같은 애매한 상태가 계속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혁신도시는 수도권 집중을 해소하고 지방을 살리겠다는 거대한 실험이었다. 18년이 지난 지금, 그 실험은 반은 성공, 반은 실패다. 이제라도 제대로 하자. 버스를 끊는 것도 필요하지만, 정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은 더 필요하다. 원칙도 지키고, 현실도 개선하는 것. 그것이 혁신도시를 살리는 길이다.

그리고 한가지 더! 혁신도시는 공공기관 직원만의 공간이 아니다. 이곳에는 출퇴근의 편의가 아니라, 삶의 지속성을 고민하며 살아가는 주민들도 있다. 공공기관 직원이 아닌 주민들의 일상도 함께 배려해 달라고 하면 그건 무리한 요청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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