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논에서 트랙터로 작업하다 난 사고 교통사고 아냐"…피해자 의사 불문 처벌 대상
논에서 트랙터로 작업을 하다가 난 사고는 트랙터를 이동하다가 난 교통사고가 아니기 때문에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 경우 12대 중과실 교통사고 등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운전자를 처벌할 수 없도록 한 교통사고처리특례법상 처벌 특례가 적용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16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신숙희 대법관)는 업무상과실치상 혐의로 기소된 장모씨의 상고심에서 공소기각 판결한 1심 판결을 파기환송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원심은 이 사건 사고의 발생 장소 및 발생 경위 등에 비춰 이 사건 사고는 단순히 트랙터의 이동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 아니라 트랙터를 이용해 논에 로터리 작업(트랙터에 장착된 로터리를 이용해 논의 바닥을 뒤집어엎는 쇄토 작업)을 하던 중에 발생한 것이라는 이유로, 이 사건 공소사실에 대해 공소기각 판결을 선고한 1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1심법원에 환송했다"고 전제했다.
이어 "원심의 판단에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은 채 논리와 경험의 법칙을 위반해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교통사고처리 특례법 제3조 1항, 제2조 2호의 '교통사고'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고 장씨의 상고를 기각한 이유를 밝혔다.
교통사고처리특례법(이하 특례법)은 형법상 업무상과실치상에 해당하는 교통사고를 예외 없이 모두 형사처벌할 경우 전과자가 양산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사고차량이 종합보험에 가입돼 있거나 피해자가 피고인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 경우' 피해자가 중상해를 입은 것이 아니고, 피고인에게 12대 중과실이 없으면 처벌할 수 없도록 처벌의 특례를 두고 있다.
특례법 제1조(목적)는 '이 법은 업무상과실 또는 중대한 과실로 교통사고를 일으킨 운전자에 관한 형사처벌 등의 특례를 정함으로써 교통사고로 인한 피해의 신속한 회복을 촉진하고 국민생활의 편익을 증진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입법목적을 밝히고 있다.
같은 법 제2조(정의)는 1호에서 '차'의 개념을 '도로교통법상 차와 건설기계괸리법상 건설기계'로 정의하고 있다. 또 2호에서 '교통사고'를 '차의 교통으로 인하여 사람을 사상하거나 물건을 손괴하는 것'으로 정의했다.
이에 따르면 건설기계관리법상 건설기계인 트랙터는 특례법상 '차에 해당한다. 따라서 트랙터를 이동하는 과정에서 난 사고는 교통사고에 해당돼 특례법이 적용된다.
대법원은 '교통사고'와 관련 "차의 교통이라고 함은 차량을 운전하는 행위 및 그와 동일하게 평가할 수 있을 정도로 밀접하게 관련된 행위를 모두 포함하는 것으로 해석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한편 특례법 제3조(처벌의 특례) 2항은 '차의 교통으로 업무상과실치상죄 또는 중과실치상죄와 도로교통법 제151조의 죄를 범한 운전자에 대하여는 피해자의 명시적인 의사에 반하여 공소를 제기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같은 조 단서에서 운전자가 상해 사고를 일으킨 뒤 피해자에 대한 구호 조치 없이 도주하거나, 피해자를 옮겨 유기하고 도주한 경우, 음주측정 요구에 불응한 경우, 중앙선 침범이나 횡단보도에서의 사고 등 12대 중과실 교통사고를 저지른 경우에는 본문의 처벌 특례를 적용하지 못하게 했다.
장씨는 2022년 3월 광주 광산구 자신의 논에서 트랙터를 조작했다가 뒤쪽에 서 있던 지인 A씨(사고 당시 70세)의 오른쪽 다리가 로터리 회전 날에 말려 들어가 절단되게 한 혐의(업무상과실치상)로 기소됐다.
A씨는 사고 발생 4개월 전쯤 장씨에게 자신의 중고 트랙터를 300만원에 팔았던 인물이다. 사건 당일 장씨는 흙을 잘게 부수는 로터리 작업을 하기 위해 자신의 논에서 트랙터 조작 및 운전 연습을 하고 있었는데, 마침 그곳을 지나가던 A씨가 그 모습을 보고 트랙터 조작과 운전방식을 가르쳐주겠다고 해 장씨가 동의했다.
A씨가 트랙터 조작 방법을 설명하고 먼저 논의 한쪽 면에 대한 쇄토 작업 시범을 보인 뒤 장씨가 나머지 부분은 자신이 해보겠다며 트랙터 운전석에 올라탔다. 그런데 장씨가 트랙터 뒤쪽에서 지켜보던 A씨를 미처 보지 못하고 트랙터를 전진하기 위해 클러치를 밟고 로터리 날을 내린 다음 전진기어를 조작, 트랙터를 운전하려고 할 때 회전 중인 로터리 회전 날에 A씨의 오른쪽 다리가 말려 들어갔다.
이날 사고로 결국 A씨는 오른쪽 다리를 허벅지까지 절단하게 돼 영구장애 상해를 입게 됐다.
업무상과실치상 혐의로 기소된 장씨의 재판에서는 장씨가 트랙터로 A씨에게 상해를 입힌 사고를 '교통사고'로 볼 수 있는지가 쟁점이 됐다. 트랙터가 '차'에 해당하고, 장씨의 과실로 A씨에게 상해를 입혔다는 점에 대해서는 다툼의 여지가 없었지만, 특례법상 처벌 특례가 적용될 수 있는지가 다퉈졌다.
1심 법원은 '차'에 해당하는 트랙터의 이동 과정에서 발생한 '교통사고'로 보고 공소기각 판결했다.
장씨가 재판에 넘겨지기 전 A씨가 장씨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명시적으로 표시했기 때문에 기소할 수 없는데 기소가 이뤄졌다는 판단이었다.
재판부는 "기록에 의하면, 피해자가 이 사건 공소제기 전 피고인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명시적으로 표시한 사실이 인정되므로 결국 이 사건 공소는 공소제기의 절차가 법률의 규정에 위반돼 무효인 때에 해당하므로 이 사건 공소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공소제기 후인 2022년 12월 30일경 다시 피고인에 대한 처벌을 원한다는 의사를 표시했으나, 반의사불벌죄에서 처벌불원의사를 표시한 자는 임의로 이를 철회할 수 없으므로 그 의사표시는 효력이 없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2심의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이번 사고는 차의 교통으로 인해 사람을 사상한 것으로 보기 어렵기 때문에 특례법이 적용될 사안이 아니라는 검사의 항소이유를 받아들였다.
그 같은 판단의 근거로 재판부는 ▲장씨가 A씨로부터 트랙터를 구입한 이후 계속 자신의 논에 놓아둔 점(트랙터를 이동하지 않았다는 점) ▲사건 발생 직전에도 트랙터는 장씨의 논에 있었고, 장씨는 쇄토 작업을 하기 위한 준비작업을 하고 있었던 점 ▲사고 발생 직전에 트랙터가 로터리 작업에 이용된 점 ▲사고 당시 장씨는 로터리 작업을 하기 위해 로터리 날을 내린 다음 회전시켰던 점(단순히 트랙터를 이동시키는 과정이었다면 로터리 날을 내리거나 회전시키지 않았을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들었다.
장씨가 로터리를 외부로 이동시킨 적이 없는 데다가 사고 발생 직전에도 A씨가 쇄토 작업 시범을 보이기 위해 로터리 작업을 했고, 장씨 역시 직접 로터리 작업을 해보기 위해 로터리 날을 내리고 회전시켰던 만큼 트랙터의 '이동' 과정이 아닌 '로터리 작업' 과정에서 발생한 사고라는 게 2심 재판부가 내린 결론이었다.
대법원도 이 같은 2심 법원의 판단에 문제가 없다고 봤다.
형사소송법에 따라 2심 법원이 공소기각 판결을 파기하면 1심 법원이 다시 재판하게 된다. 1심 법원의 공소기각 판결이 잘못됐다는 대법원 판단이 있었던 만큼, 다시 열리는 재판에서는 장씨에게 유죄 판결이 내려질 것으로 보인다.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csj040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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