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으로 버무린 ‘천원의 밥상’… 거리의 아이들 먹는 ‘영의 양식’

신은정 2024. 10. 26.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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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원주서 ‘석식당’ 운영 ‘식당 목회’ 하는 최현석 정류장교회 목사
위기 청소년에게 1000원 밥상을 지어주는 강원도 원주 석식당의 지난 9월 10일 메뉴로 계란 김밥과 새우 튀김, 메밀 소바를 제공했다. 인근 식당 대표가 재료를 가져와 색다른 음식을 만들었다고 한다.


강원도 원주의 한 주택가. 오래된 상가 건물 2층 창가 안쪽엔 매주 수요일 오후 5시 따뜻한 느낌을 주는 노란색 전구가 켜진다. 계단 옆 1층 밖 가게 이름이 적힌 정사각형 나무 간판 ‘석식당’에도 영업을 알리는 같은 색 빛이 환하게 빛난다.

아이들 마음과 허기 채우다

지난 16일 석식당을 찾은 첫 손님은 고등학교 2학년생인 성훈(이하 청소년 가명)이와 광현이였다. 이들은 오후 5시 5분, 출입문을 열고 들어오며 인사를 했다. 식당 주인 최현석(34) 목사와 이은희(40) 사모는 미소를 지으며 다가가 주문을 받았다. 석식당 주방장이자 최 목사 처제인 이은혜(37)씨는 이날 한우와 양파를 다져 만든 햄버그스테이크와 아이들이 좋아하는 햄을 잔뜩 넣은 김치볶음밥 등 2가지 메뉴를 준비했다.
지난 16일 아이들로 가득 찬 석식당 모습.


성훈이가 식당 스피커에 휴대전화를 연결해 음악 감상을 하는 동안 비슷한 또래 학생들이 식당 안으로 우르르 들어왔다. 주문한 음식이 서너 개쯤 나올 무렵 초등학생 5학년생 10명도 이어서 들어왔다. 학생들은 대부분 단골이라고 했다. 아이들은 능숙하게 주문을 해 식사를 하고 밥값으로 1000원씩을 냈다. 음식을 예쁘게 담아내는 ‘플레이팅’에도 매우 신경을 쓴 석식당의 메뉴는 보통 식당에서 1만원을 더 받아도 될 만큼 영양이 가득했고 푸짐했다.

아이들은 이 식당을 어떻게 알게 됐을까. 최 목사는 “아웃리치를 통해서”라고 멋쩍게 웃었다. 석식당 근처의 큰 공원에서 늦은 시간까지 배회하는 아이들에게 “배고프면 밥 먹으러 오라”며 홍보한 덕분이라 했다.

아이들이 내고 간 1000원이 계산대 그릇에 놓여 있다.


최 목사는 가족과 교회 성도, 지인의 도움으로 매주 수요일 ‘천원 밥상’을 낸다. 이날 석식당에는 청소년 20명이 찾아와 허기를 달랬다. 요즘 식당처럼 인스타그램을 통해 예약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말없이 온다고 밥을 먹을 수 없는 건 아니다. 최 목사는 이날 밥을 남기지 않고 먹고 떠나는 아이들을 1층까지 배웅했다. 그는 아이들의 등을 툭툭 치면서 “위험하게 살지 말라”고 잔소리하면서 “무슨 일 생기면 꼭 전화해” 하고 부탁했다.

방황하던 과거… ‘밥심’ 알기에

최 목사는 목회자가 되기로 마음먹었던 20대 전도사 때부터 다양한 이유로 어려움에 빠진 위기 청소년을 품겠다고 서원했다. 자신도 아파봤기 때문이다. IMF 외환위기로 부친의 사업이 어려워져 집에 채권자들이 수시로 찾아왔던 불안한 청소년 시절을 보냈다. 그러면서 그는 술과 담배에 손을 대기도 했다.

유일하게 신앙생활을 하던 어머니가 데려간 보육원 봉사도 식당목회를 하게 된 계기였다. 그는 “김치 볶음이 가장 맛있는 반찬이라고 말하는 보육원 아이들을 보고 마음이 아팠다”며 “집안 형편이 어려웠지만 늘 저희를 배불리 먹이시려던 부모님이 전해준 사랑이 방황했던 저를 돌아오게 했다”고 말했다. 이날 석식당에서 봉사한 김성은(27)씨도 “교회 밖 아이들이라 더 마음이 쓰인다”며 “밥 한 끼에 사랑을 담아 나눠주고 싶다”고 했다.

석식당 대표인 최현석(왼쪽) 목사와 처제 이은혜(가운데) 주방장, 이은희 사모.


식당 테이블 옆 흰색 커튼을 열면 2017년 4월 최 목사가 개척한 ‘정류장교회’가 있다. 최 목사는 교회를 시작하고 처음엔 아이들에게 햄버거를 사주거나 교회로 초대해 간단한 음식을 해줬다. 그러나 집밥이 그리웠던 아이들은 김치찌개에 계란말이, 진미채 같은 ‘엄마 밥’을 먹고 싶어했다. 간호사로 일하다 육아에 전념하던 최 목사의 처제가 식당목회를 돕기로 했고 2022년 4월 영업 신고를 내면서 진짜 식당을 운영하게 됐다.

함께 밥 먹은 100명의 아이들

배고픈 아이들에게 밥을 먹이는 사역엔 교회 성도를 포함해 수많은 돕는 손길이 있었다. 최 목사 부부를 포함해 정류장교회의 14명 성인 성도와 9명의 아이들이 함께 주일예배를 드리며 위기 청소년 사역에 참여한다. 최 목사는 “청소년을 돌보느라 제대로 목회하지 못하는 것 같아 다른 교회를 찾아보시라고 권한 적도 있지만 언제나 교회의 사역을 지지해 주시는 감사한 분들”이라고 했다. 석식당 취지에 공감한 한 식당 대표가 수익 일부를 기부해 교회를 식당으로 리모델링할 수 있었다. 석식당 소문이 나면서 지역의 여러 식당에서는 1년에 몇 차례씩 특별 요리를 아이들에게 제공해 주기도 한다.

그동안 석식당을 다녀간 아이들은 100명이 넘는다고 했다. 최 목사는 석식당을 찾은 아이들이 홀로서기를 할 수 있도록 관련 기관을 연결하고 일자리를 주선하거나 장학금을 주기도 한다. 최 목사는 “어려운 사정을 알게 돼 위탁 보호했던 15살 수연이가 어버이날 ‘엄마 아빠, 말썽만 부려서 죄송하다’고 쓴 편지나 부모에게 버림받다시피 한 고등학교 1학년 호석이가 나중에 취업해 사줬던 제육볶음 등 감사하고 벅찬 기억이 많다”며 “석식당에서 만난 아이들에게 밥을 지어주는 일을 하면서 가슴 속에 품은 유일한 마음은 기대하지 않고 바라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아이들에게 일자리를 소개해 주었지만 가지 않아 난처하고 곤란한 적이 많았어요. 그럴 때마다 ‘내가 만약 진짜 부모였다면 여기서 그냥 포기할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아이들 인생이 한순간에 바뀌지 않는다 하더라도 괜찮아요. 저에게 사역의 열매는 아이들의 자해 상처가 아물고 폭행이나 사기 등 범죄에 더 이상 휘말리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최 목사는 최근까지 석식당을 다니는 청소년 10여명이 모이는 ‘양떼예배’를 지역 교회 찬양팀 등과 함께 진행했고 지금은 재정비를 위해 잠시 중단했다.

포기 순간, 그를 붙잡은 것들

위기 청소년을 돌보는 일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나 마찬가지다. 최 목사 역시 한때 공황장애 증상을 보일 정도로 지쳤을 때가 있었다. 사건 사고가 끊이질 않는 아이들 뒤치다꺼리를 하다 보니 10대 관련 범죄 뉴스만 봐도 식은땀이 나고, 사건 피해자가 될 것 같은 망상에 시달렸다. 최 목사는 “아직도 완벽히 극복한 것이 아니지만 성경에 나오는 사역자들 대부분은 모두 목숨 걸고 일하지 않았는가”라면서 “제 연약함을 깨닫고 하나님을 의지하니 돕는 이들도 많아지고 오히려 더 담대해졌다”고 했다.

위기 청소년을 10년간 돌보며 교회나 기관 등에 아쉬웠던 점들은 없었을까. 최 목사는 “우리 사회에선 아직 아이들이 사고를 치면 보호관찰을 하거나 위탁 보호조치를 내리는 등 사후처리에 초점이 맞춰진 것 같다”며 “아이들이 범죄에 노출되기 전, 어른들이 아이들의 아픔을 미리 감지하고 현실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우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아이들을 교회로 먼저 데리고 온다는 생각보다는 건전한 게임방 등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공간에 스며들 수 있도록 사역의 지경을 넓혀주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원주=글·사진 신은정 기자 se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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