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숲이 무한하게 확장하는 정원, '제라 스튜디오'

대지의 주인인 나무의 역사를 잇고 숲속으로 숨어든 사진 스튜디오. 우거진 동백과 삼나무숲으로 통하는 길목에 제주의 풍경을 닮은 정원이 펼쳐진다.

숲으로 구축한 공간 속, 사람들의 추억을 담다

울창하게 펼쳐진 동백나무와 삼나무가 청록의 그림자를 만들며 대지를 감싼다. 키위밭이었던 땅은 바람을 막아주는 나무의 보호를 받으며 5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자리를 지켜왔다. 건축주는 아버지에게 땅을 물려받으면서 선친의 얼이 담긴 동백나무와 삼나무를 이 땅의 주인공이라고 생각했다.언젠가부터 동백숲의 아름다움을 즐기기 위해 많은 이들이 마을을 찾았고, 건축주는 이곳에 사람들의 추억이 깃들 수 있는 사진 스튜디오를 짓기로 했다. 건축가는 ‘숲이 주인공이 되고 건축은 사라지는’ 공간을 떠올렸다. 두 개의 동으로 구성된 스튜디오는 가장 단순한 형태의 디자인과 규화 처리된 적삼목 사이딩 외장재로 존재감을 최소화했다. 건물 전면은 사람의 시선이 닿는 높이까지 미러 스테인리스로 마감했다. 건축물을 가려주며 거울처럼 주변의 숲을 비추고, 숲과 건축물 사이에는 무한의 녹색 시공간이 펼쳐진다.숲과 건물을 연결해 줄 조경 디자인도 이러한 콘셉트 아래에서 구상되었다. 정원 디자이너는 현장답사 후 아름답고 세련미 넘치는 정원보다는 숲의 연장선, 혹은 숲이 시작하는 어디쯤을 보여주는 정원을 떠올렸다. 식재 구역을 몇 가지 큰 덩어리로 나누어 각자의 콘셉트를 정하되 오래된 나무와 너른 땅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정원을 조성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였다.


메인 정원

건물 전면에 있는 삼나무와 동백나무가 스테인리스 외벽에 비치며 건물과 정원, 그리고 높은 나무들이 하나의 풍경으로 펼쳐진다.메인 정원에는 여름 동백이라 불리는 노각나무를 중심 교목으로 삼고, 낮은 키의 큰개기장 ‘샤이엔스카이’, 아스틸베, 원추리, 촛대승마를 심어 키가 작은 덩어리를 만들었다. 수직의 노각나무와 낮은 큰개기장, 아스틸베의 배치가 정원에 입체감을 형성한다. 동시에 사람의 눈높이에서 전체 정원이 편안하고 막힘 없이 한눈에 들어오도록 조성했다.

① 노각나무 Stewartia pseudocamellia
6월이 되면 동백을 닮은 흰꽃이 피며 열매송이도 다음 해 봄까지 가지에 남아 있다.

② 감태나무 Lindera glauca
‘백동백’이라고도 불린다. 주홍빛으로 물드는 단풍이 아름다우며 봄까지 잎이 떨어지지 않아 겨울에도 눈에 띈다. 중부 이남에서 키울 수 있다.

③ 큰개기장 ‘샤이엔스카이’
Panicum ‘Cheyenne Sky’

수직으로 곧게 뻗은 노각나무 아래 60㎝ 정도의 높이로 메인 정원의 베이스를 만들어낸다.

④ 원추리 ‘마누아 로아 ‘Hemerocallis ‘Manua Loa’
직경이 5㎝ 정도 되는 큰 꽃을 초여름에서 한여름까지 계속해서 피운다. 아침에 꽃이 피면 저녁에는 지는 ‘데이릴리(Day-lily)’이다.

⑤ 아스틸베속 Astilbe ssp.
6월이 되면 흰색과 분홍색의 꽃이 피며 잎이 나오는 시기도 빨라 오랜 기간 정원에서 볼 수 있다.

숲으로 가는 휴식 정원

동백숲으로 향하는 길목과 그늘진 공간에 휴식정원을 만들었다. 동백숲이 시작되는 삼나무 아래 경사면에는 현무암이 배치되고 가는잎처녀고사리, 호스타류, 천남성 등이 군락을 이룬다. 가장자리에는 철쭉, 낙상홍, 가침박달나무, 올괴불나무, 물푸레나무, 히어리 등이 방문객의 발길을 숲길로 자연스럽게 이끌고 있다. 서쪽 해가 삼나무 사이로 들어오면 잎들이 투명하게 반짝이는 시간이 있다.

① 분꽃나무 Viburnum carlesii
해가 좋은 양지에서 2m 내외로 잘 자란다. 잎 양면에 솜털이 나고 4~5월이 되면 잎과 꽃이 동시에 나온다. 연한 자주빛 꽃은 향기도 매우 좋다.

② 올괴불나무 Lonicera praeflorens
이른 봄 가장 먼저 꽃을 피운다. 잎보다 먼저 꽃이 피며 열매는 붉은 색으로 익는다.

③ 물푸레나무 Fraxinus rhynchophylla
잎의 생김새와 회갈색 수피가 아름답고, 습기가 있는 곳을 좋아하며 내한성이 좋아 전국 어디서나 잘 자란다.

④ 가는잎처녀고사리 Thelypteris beddomei
숲 가장자리에서 많이 발견되며 습기가 있는 곳을 좋아한다.

⑤ 줄사초 Carex lenta
제주줄사초라고도 불리며, 상록성으로 주로 숲속에서 볼 수 있고 높이는 70cm 정도까지 자란다.

단풍나무 정원과 입구 정원

상업 공간에는 첫 얼굴과 다름없는 주차장 공간도 주요한 정원 포인트가 된다. 열매와 단풍이 아름다운 마가목과 팥배나무를 중심으로 주차장 경관을 조성했다.주차장에 진입할 때 건물과 함께 가장 먼저 마주치는 단풍나무는 이 구역의 랜드마크가 된다. 다간단풍의 섬세한 줄기들은 한 그루만으로도 정원을 가득 채운다. 나무 아래에는 카렉스 ‘실버셉터’와 앵초, 호국대상화, 이테아가 낮게 깔린다.주차장 가장자리에는 꽃, 단풍, 열매까지 즐길 수 있는 팥배나무와 마가목을 심고, 초여름에 향기 나는 꽃이 피는 백정화, 겨울의 붉은 줄기를 감상할 수 있는 흰말채나무 등으로 정원에 계절감을 준다.30m의 긴 삼나무 행렬 옆으로 다양한 사이즈의 현무암을 거칠게 배치하고, 삼나무의 수직 라인과 닮은 큰개기장 ‘노스윈드’와 부드러움을 더하는 중국쥐똥나무가 대조를 이루며 공간을 아우른다.

① 카렉스 ‘실버셉터’ Calex ‘Silver Sceptre’
은빛이 도는 가늘고 줄무늬가 있는 잎은 꽤 깊은 그늘에서도 견딘다.

② 이테아 ‘헨리스 가넷’ Itea virginica ‘Henry’s Garnet
매우 콤팩트한 수형으로 환경을 가리지 않고 잘 자라며 병충해도 거의 없다. 키는 120㎝ 정도까지 커 정원용 관목으로 적당하다.
① 백정화 Serissa japonica
5월이면 흰색 작은 꽃이 피며 1m 정도로 키가 자란다. 맹아력이 좋아 전정으로 수형을 잡기 수월하고 음지에서도 잘 자란다.

② 모로위사초 ‘바리에가타’ Carex morrowii ‘Variegata’
내한성이 강하여 겨울에도 푸른 잎을 볼 수 있다. 반음지, 습기가 비교적 많은 곳에서 좋은 상태를 유지한다.

③ 중국쥐똥나무 Lagustrum sinense ‘Variegatum’
수형이 둥글게 자라 단독으로 심어도 보기 좋은 형태를 유지하며 반음지에서도 잘 자란다. 희고 작은 꽃은 향기가 좋다.

④ 큰개기장 ‘노스윈드’ Panicum ‘Northwind’
직립으로 곧게 잘 자라며 푸른색이 도는 잎 컬러도 매력적이다. 건조에 강하며 다양한 흙에서 잘 적응한다. 키는 160cm 정도까지 큰다.
취재협조_ 제라 스튜디오
∙ 설계 및 감리 : 투닷건축사사무소㈜
∙ 시공 : ㈜브라운트리종합건설(제이디홈플랜)
∙ 조경 : 김원희 가든웍스 + 어반노마드

정원 디자이너 김원희 :
가든웍스(GARDENWORKS) 대표


사계절 아름다운 자연주의 정원을 지향하며 개인 정원뿐만 아니라 공공정원, 상업공간 등 전국적으로 다양한 정원·식물 작업을 한다. 개인과 단체를 대상으로 정원 수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세계적인 정원가 ‘피트 아우돌프’에 관한 영화 <Five Seasons>를 한국에 처음 소개하기도 했다. 2018년 일본 세계가드닝월드컵에서 ‘최우수디자인상’(최재혁 작가와 협업)을 수상했고, 2019년부터 매년 첼시 플라워 쇼에 프레스로 참석하여 다양한 정보 제공과 강의를 하고 있다. https://www.instagram.com/wonheekim33/


구성_ 조재희 | 사진_ 변종석

ⓒ월간 전원속의 내집 2024년 10월호 / Vol.308 www.uujj.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