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사함과 따뜻함 사이에서, 마음껏 질투하세요

서정호 2026. 4. 28.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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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2막, 재즈처럼] 질투가 만드는 의외의 하모니... 인터플레이

반평생 라디오 방송에서 음악을 들려주며 살아왔습니다. 재즈 용어를 키워드로, 중년의 일상을 연결해 '나이듦'의 즐거움을 이야기하려 합니다. <기자말>

[서정호 기자]

아재 셋이 모이면 평화로울까? 천만에, 겉으로는 "허허, 그래 잘됐네"하며 오랜만의 덕담을 나누지만, 테이블 밑에서는 소리 없는 이단옆차기가 날아다닌다.

누가 휴대폰 화면에 담긴 손주 자랑을 시작하면 속으론 '우리 애들은 뭐 하나' 싶어 입맛이 쓰고, 또 누가 가족들과 유럽 투어 다녀왔다며 "이거 봐, 니들도 스위스 가면 이 호텔에 묵어. 다른 데 보다 좋아"라며 휴대폰 사진을 들이밀면, 사실 노안으로 보이지도 않으면서도 대충 본 척하고, "그래 재밌었겠네" 예의 상 한마디 해준다. 속으론, 스위스는 고사하고 대마도라도 가봤음 좋겠다 하며. 평생을 등수와 직급에 매달려 살다 보니 은퇴 후에도 경쟁심은 사그라들지 않고, 나이 들어 넉넉해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시기심도 늘고 옹졸해진 느낌이다.

건강조차 경쟁이다. 누구 혈압이 더 낮은지, 누가 당뇨 약을 안 먹는지로 은근히 체력의 서열이 정해진다. 거기에 대고 마라톤 풀코스라도 뛰었다 하면 다들 '와아!' 하고 놀라면서도 누군가는 한마디 한다. "나이 들어 너무 뛰면 무릎에 안 좋대". 이쯤 되면 지혜로운 노년이라기보다, 장난감을 두고 싸우는 대여섯 살 꼬마들과 다름없다. 참 치사하다. 하지만 이 치사함이야말로 아직은 살아있다는 강력한 증거가 아닐까? 욕망이 거세된 평화는 성자의 것이지, 아직 뜨거운 피가 흐른다고 주장하고 싶은 아재들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재즈 공연장에 가면 연주자들이 서로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연주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관객들은 저들이 고결한 예술적 영감을 나누며 황홀한 대화를 나누고 있다고 믿지만, 사실 그 이면엔 팽팽한 '기싸움'이 흐른다. 피아노가 화려한 속주로 좌중을 흔들어 놓으면, 베이스는 '네가 그렇게 나온다 이거지?'라는 듯 더 묵직하고 복잡한 리듬으로 응수한다. 이것이 바로 '인터플레이(Interplay)', 즉 상호작용이다.
▲ '품격 있는 난투극', 인터플레이 
ⓒ yosuke_ota on Unsplash
재즈에서의 인터플레이는 마냥 좋은 게 좋은 식의 협동이 아니다. 그것은 차라리 '품격 있는 난투극'이라 하는 게 맞다. 동료의 연주에 자극받은 연주자가 '나도 너만큼, 아니 너보다 더 잘할 수 있어!'라는 치열한 질투와 경쟁심을 에너지 삼아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솔로를 터뜨릴 때 명연주가 완성된다. 재즈 거장들의 인터플레이에는 '나도 좀 봐달라'는 인정 투쟁과 '내가 최고'라는 유치한 자부심도 섞여 있다. 만약 연주자들이 서로를 시기하지 않고 그저 예의 바르게 양보만 했다면, 재즈는 세상에서 가장 지루한 음악이 되었을 것이다.

이들의 질투가 멋진 연주로 승화 되듯이

우리 아재들의 일상을 이 인터플레이의 무대로 끌어올려 보면 어떨까. 친구의 잘 나가는 소식에 배가 아픈가? 그렇다면 그 배아픔을 '나도 아직 죽지 않았다'는 동력으로 바꿔보자. 저 친구가 저 나이에 히말라야를 간다면, 나는 내일 아침 동네 뒷산이라도 한 번 더 오르겠다는 '치사한 결기'를 부려보는 식이다. 남을 깎아내리는 질투는 독이 되지만, 나를 일으켜 세우는 질투는 훌륭한 삶의 동력이 된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가장 우울할 때는 남과 비교해서 뒤처질 때가 아니라, 비교할 대상조차 없어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잊혔다고 느낄 때다. 친구의 자랑질에 짜증이 난다는 건, 아직 당신 안에 그 에너지를 받아칠 '리듬'이 살아있다는 뜻이다. "너만 하냐, 나도 한다!"라는 그 유치한 반격이야말로 인생 후반전을 버티게 하는 가장 인간적인 생존 본능이다. 물론 그 끝은 재즈처럼 따뜻한 화합이어야 하겠지만.

무대 위에서 서로 잡아먹을 듯 소리로 싸우던 연주자들도 곡이 끝나면 땀을 닦으며 서로의 어깨를 두드린다. "오늘 네 연주 정말 독하더라, 덕분에 나도 간만에 신나게 불었어"라고 말하는 그 눈빛. 우리 아재들의 어울림도 그랬으면 좋겠다. 한바탕 '자랑 배틀'을 벌이고 질투 섞인 농담을 주고 받다가도, 헤어질 때는 "야, 그래도 네가 건강하니 내가 질투할 맛도 난다. 아프지 마라"라고 툭 던지는 그 한마디. 그 치사함과 따뜻함 사이의 절묘한 간격이 바로 우리가 완성해야 할 인생의 '인터플레이' 아닐까.

인생 2막의 무대에서 우리를 춤추게 하는 것은 숭고한 철학이 아니라, 때로는 이런 지질한 경쟁심과 그걸 알아봐 주는 오랜 친구의 존재다. 그러니 마음껏 질투하자. 그리고 그 질투를 나만의 멋진 솔로 연주로 승화 시키자. 친구가 멋진 베이스 라인을 깔아주면, 나는 더 화려한 트럼펫 소리로 응수 하면 그만이다. 그렇게 서로 밀고 당기며 불협화음조차 화음으로 만들어가는 것, 그것이 진짜 '멋진 아재'들이 만드는 삶이라는 재즈가 아닐까.

[글에 어울리는 추천곡]

아티스트 : 빌 에반스 트리오(Bill Evans Trio)
앨범 : 'Sunday at the Village Vanguard' (Riverside RLP 376)
곡명 : 'Alice in Wonderland'
라인업 : 빌 에반스(피아노), 스콧 라파로(베이스), 폴 모션(드럼)
녹음일 : 1961년 6월 25일, 뉴욕 빌리지 뱅가드 라이브 실황

재즈 역사상 가장 치밀하고도 치열한 '인터플레이'를 꼽으라면 단연 이 앨범일 것이다. 흔히 빌 에반스의 음악을 부드러운 카페 음악 정도로 생각하지만, 이 실황 앨범을 찬찬히 뜯어보면 세 연주자 사이의 불꽃 튀는 기싸움을 느낄 수 있다. 특히 이 곡은 평범한 왈츠 곡을 두고 세 남자가 어떻게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며 품격 있게 싸우는지 보여주는 교과서다.

특히 스콧 라파로는 일반적인 베이스의 역할인 '묵묵히 박자나 짚어주는 조연'에 만족할 생각이 전혀 없다. 그는 시종일관 빌 에반스의 피아노 멜로디에 끼어들고, 때로는 주도권을 빼앗아 오려는 듯 화려한 하이톤의 라인을 뽐내며 리더를 끊임없이 도발한다. 마치 친구의 자식 자랑에 "우리 애는 이번에 승진했네"라며 더 큰 패로 응수하는 아재 같다.

빌 에반스 역시 만만한 인물이 아니다. 라파로의 도전을 무시하거나 짓누르는 대신, 오히려 그 에너지를 받아쳐 더 깊고 정교한 타건으로 응수한다. 피아노가 한 걸음 물러나 공간을 열어주면 베이스가 그 틈을 타 자기 소리를 더 크게 내고, 다시 드럼이 그 둘 사이를 가르고 들어오며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한다. 이들은 서로를 아꼈지만, 동시에 무대 위에서는 누구보다 서로를 이기고 싶어 했던 '치사한 대가들'이었다.

이 녹음이 있고 불과 열흘 뒤, 베이스의 스콧 라파로가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그 소식을 들은 빌 에반스는 큰 충격에 빠져 몇 달간 피아노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그토록 치열하게 싸우고 질투하던 상대가 사라지자, 자신의 연주를 완성해 줄 '가장 완벽한 경쟁자'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서로가 서로를 자극하며 더 높은 경지로 끌어올리는 그 팽팽한 긴장감. 우리의 노년도 이들처럼 서로의 성취에 자극받고, 서로의 건강에 질투하면서도, 결국에는 그 모든 소음을 하나의 근사한 예술로 승화시키는 그런 '인터플레이'의 현장이 되었으면 한다. 얄미운 친구가 내는 그 튀는 소리가, 사실은 내 인생의 연주를 멈추지 않게 하는 파트너십이 아닐까.

[재즈 사전]

- 인터플레이(Interplay) : 연주자들이 서로의 즉흥 연주에 반응하며 실시간으로 소통하고 경쟁하는 과정. 단순한 협력을 넘어선 '창조적 충돌'이자 '음악적 대화'다.

- 트리오(Trio) : 3인조 연주 구성. 주로 피아노-베이스-드럼으로 이루어지며, 가장 밀도 높은 대화(인터플레이)가 일어나는 최소 단위다. 셋이 모이면 싸우거나 합치거나, 아재들의 관계와 닮았다.

- 라이브 실황(Live Recording) : 스튜디오가 아닌 실제 관객 앞에서의 공연을 녹음한 것. 연주자들 사이의 가감 없는 기싸움과 현장의 공기까지 담겨 있어 더욱 인간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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