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넨 늙지마" 했던 할머니께 돌려주고 싶은 말

문수진 2024. 10. 28.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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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멋진 '제주할망들', 젊은 게 벼슬 아니듯 나이 많은 게 죄는 아니니까요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문수진 기자]

나는 제주도에 산다. 며칠 전, 저녁거리를 준비하러 집 근처 마트에 갔다 오는 길이었다. 인도에 접한 옷가게 앞에 한 할머니가 서 있었다. 나는 옆눈으로 가게를 힐끔거리며 쳐다봤다. 할머니는 가게유리문을 잡고, 크게 숨을 들이쉬고 내쉬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할머니 앞을 지나가는 순간, 유리문을 놓은 뒤 작은 나무계단에서 내려오던 할머니가 발을 헛디뎌 넘어졌다. 지나가다 깜짝 놀란 나는 쓰러지려는 할머니를 힘껏 잡아 안았다.

할머니의 손이 내 아랫배와 그 밑 어딘가에 닿았다. 오갈 데 없어 황망한 할머니의 두 손을 잡으며 "괜찮으세요?"라고 물었다. 그분은 계단이 두 개나 있는 줄 몰랐다며 미안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많이 놀란 듯해 보였다. 할머니, 정말 괜찮으세요? 어디 불편한 데는 없으세요? 내가 묻자, 할머니가 답하셨다.

"미안해요, 미안해. 내가 정신을 못 차려서. 늙지 말아요. 늙으면 이래요."
 노인(자료사진)
ⓒ rodlong on Unsplash
가슴이 아려왔다. 눈도 잘 마주치지 못하면서 내게 미안하다는 말과 고맙다는 말만 되풀이하던 그분은 돌아서서 제 갈길을 갔고, 나는 왼손에 마트비닐을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가면서 생각했다. 그분은 얼마나 놀랬을까. '늙지 말라'던 할머니의 말은 요즘 들어 부쩍 늙은 기분이 드는 내게 오히려 상쾌한 바람이 되어 다가왔다.

나이가 여든은 넘기셨을까. 마른 장작처럼 바짝 말라버린 할머니는 너무 가벼워서, 내가 갑자기 덤벼들었지만 넘어지지 않은 채로 그분을 받을 수 있었다.

할머니의 눈에 나는 그저 철없고 젊은 여자였을 것이다. 며칠 전 막둥이네 반모임에서 나이가 제일 많아서 가기 싫다고 징징댔던 것도 모르시고, 그분은 그저 자신보다 한참 어린 내게 미안하다는 말과 늙지 말라는 말만 반복했다.

시골에 살던 때 일이다. 농사를 짓다 보면 인부를 구해야 하는데 우리 동네에서 제일가는 인부는 '좌준이 어멍'과 '해진이 어멍'이었다. 두 분 다 할머니시다.

80이 넘은 두 분은 허리가 굽고, 머리가 세었지만, 젊은 인부들보다 손이 빠르고 일머리가 좋았다. 농번기에 쉬지 않고 일을 하는 건 물론이고, 비오는 날에도 소일거리를 찾아 하루 일당을 채웠다.

그렇게 번 돈으로 아들들 집을 사 주고 땅을 샀다. 사람들은 '며느리 좋은 일만 한다'라고 쑥덕거렸지만, 그 누구도 두 사람의 굽은 등이 밭을 오가는 것을 말리지 못했다. 아흔 살이 넘도록 일만 하다 돌아가셨다는 말을 들었다.

노학자들 이야기보다 더 감동으로 다가오는 '제주할망들'

최근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이근후)>와 <삶이 던지는 질문은 언제나 같다(찰스 핸디)>를 읽었다. 두 책 모두 80이 넘은 노학자가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후세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한 책이다.

내용은 알차고 좋았다. 그런데 이전 만큼의 감동이 이번에는 없었다. 왜 그럴까 생각을 해 봤는데, 나는 이미 열심히 살고 있는 제주의 멋진 할머니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내 주변에는 멋진 생을 산 사람들보다 어렵고 힘든 삶을 가까스로 영위하며 죽지 못해 살아 낸 사람들이 좀 더 많은 것 같다. 그들은 살아 있는 것을 무조건적인 기쁨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저 태어났으니 살아낸 것이다. 즐기는 삶이 아니라 견디는 삶이었다.

글도 모르고 말도 길게 못 하는 그 사람들은 해가 뜨면 밭에서 일을 하고 날이 저물면 집에 돌아와 고된 몸을 눕혔다. 자연에 충실한 삶을 살면서도 자식들만은 자신과 다른 삶을 살기를 기원했다. 읽을 줄 모르니 기도문도 잘 몰라서 새벽에 물 한그릇 떠 놓고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말로 몇 마디 중얼거렸다.

그들의 말은 짧다. 좋은 일도 궂은 일에도 '허, 참.' 몇 마디면 끝이다. 멋 모르는 사람들은 그들을 말이 없고, 무식한 제주할망이라고 부를지도 모른다. 이들의 천불 터지는 속을 보지 못해 하는 소리다.

나는 많이 배우고 멋있는 노인들을 잘 모른다. 만난 적이 없다. 책에서 만난 사람들은 너무 멀리 있다. 나는 욕 잘하는 '투덜이'에, 한 번에 좋다는 소리를 해 본 적이 없는 제주할망들을 알 뿐이다.

밥 먹으러 가자고 하면 집에 먹을 게 많은데 뭐 하러 밖에 나가서 먹느냐고 하고, 비싼 옷 사다 주면 입을 옷이 한한했는데(많은데) 필요 없으니 가져가라고 하고, 여행 가자고 하면 덥고 힘들다며 하면서도 경로당에 가서는 아이들이 여행 가자고 한다고 자랑하는 할망들만 알고 있다.

당신 잘못이 아닙니다
 나는 멋진 할망(할머니)들을 많이 알고 있다.(자료사진)
ⓒ 픽사베이
좋은 걸 쉽게 좋다고 못 하고 행여나 트집 잡힐까 자식들에게 잘한다는 말보다 조심하라는 말을 먼저 하는 제주 할망들은, 모든 게 무서운 건지 그저 '속솜하라(조용히 해라, 말하지 말고 있으라는 뜻)'고만 한다.

오늘 할머니가 했던 말이 가슴에 꽂혔다.

"늙지 마라. 자네일랑 늙지를 말아."

두서없이 건넨 그 말속에는 나도 예전에는 이러지 않았는데 나이가 드니 별 수 없다는 뜻이 숨겨져 있을 것이다. 이건 느닷없이 자기 몸이 쓰러지는 걸 받아낸, 그나마 젊어 보이는 여자에게 할머니가 건넬 수 있는 미안함의 최대표시였을 것이다. 아무리 괜찮다는 말을 해도 몸 둘 곳 없이 미안해하는 할머니를 뒤로하고 돌아섰다.

집에 오며 정리한 생각, 나이 드는 것은 죄가 아니라는 것. 누구나 나이를 먹는데 또 마음은 저 혼자 세월을 비켜가서 몸은 늙고 마음이 젊은 슬픈 현실이 찾아온다. 제 맘대로 되지 않는 육체를 가진 채 살아간다.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분은 잘못한 게 없다. 계단 두 개를 하나로 생각해서 내려오다 휘청이는 건 10살 아이도 하는 실수다. 나이가 많아서 그런 게 아니다.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일을 두고 마냥 슬퍼하시지 않았으면 좋겠다.

젊은 게 벼슬이 아니듯, 나이 많은 게 죄는 아닐 테니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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