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사태' 선언한 윤 정부, 스위스 제네바에선 이런 결정이 [소셜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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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자영]
▲ 국제노동기구의 '괜찮은 일자리와 돌봄 경제'에 관한 결의안 |
ⓒ 국제노동기구 |
결의안은 안건 채택의 이유로 "성평등, 다양성, 통합, 모든 사람을 위한 돌봄 생태계 구축 등 사회경제적 전환기의 개혁 의제로서 돌봄에 대한 통합적 논의가 하루빨리 필요하다는 인식이 바탕이 되었다"고 밝혔다.
'괜찮은 일자리와 돌봄 경제' 결의안은 여러 측면에서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이 결의안은 코로나 팬데믹 이후 더욱 포용적이고 지속가능한 경제 회복을 위한 전략의 일환이다. 인구 고령화와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 증가로 돌봄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현실을 반영하여 이 분야에서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촉진하고자 하는 목적을 담고 있다.
돌봄 경제에 대한 투자는 전염병, 자연재해, 분쟁 등 외부 충격은 물론 경기 침체에도 더욱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고, 총수요를 늘려 돌봄 부문의 고용을 직접 창출할 수 있다. 또한 경제 전체에 간접적으로 고용을 창출할 수 있는 경제적 효과를 가져온다.
포괄적이고 충분한 자금이 지원되는 돌봄 정책 패키지는 여성의 노동시장 진입 장벽을 제거하고, 여성 고용을 늘리며, 경력 단절로 인한 임금 불이익을 해소할 수 있다. 돌봄 일자리를 더욱 매력적으로 만들어 돌봄 경제 내 일자리 간 격차를 줄이고 남성들을 유입시킬 수 있다.
아동 돌봄과 교육에 대한 투자는 아동의 건강과 복지를 향상시켜 미래의 경제적 성과를 향상시키는 데 기여한다. 근로자의 건강과 교육 수준을 개선하고 일과 삶의 균형을 개선하여 노동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
▲ 6월 6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ILO 총회 본회의장 모습. |
ⓒ 한국노총 |
전 세계적으로 '돌봄 경제'는 이미 뜨거운 화두이다. 미국의 대선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도 돌봄 경제를 경제 정책의 중심축에 놓겠다고 선언했다. 보육, 간병, 장애 보조, 노인 돌봄 등 모든 형태의 돌봄을 지원한다는 조 바이든 대통령의 주요 정책이었던 돌봄 경제를 대선 캠페인의 핵심 정책으로 이어받은 것이다.
우리나라 정부도 돌봄 경제에 무관심하지 않다. 윤석열 대통령이 마침내 '인구 비상사태'라고 선포한 저출생 고령화 추세에 대응한 핵심 정책은 이미 오래전부터 '돌봄'이다.
보건복지부가 수립한 '제2차 사회보장 기본계획(2019-2023)'은 지역사회 통합 돌봄 서비스 이용체계 구축을 과제로 제시하면서 '돌봄 경제'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돌봄 서비스 확대와 관련 산업 육성을 통해 돌봄 경제를 활성화하여 삶의 질 향상과 함께 사회서비스 일자리를 확충하겠다는 것이다. 대규모 일자리 창출, 지역 균형발전, 사회적경제 활성화, 첨단산업 육성 등을 통해 포용적 사회보장과 경제혁신의 상호보완을 원칙으로 삼겠다고 했다.
제3차 사회보장 기본계획(2024~2028)에는 돌봄 경제라는 용어와 프레임이 등장하지 않지만, 전 생애주기에 걸친 돌봄 서비스의 확충, 돌봄 인력의 처우 개선, 그리고 돌봄 서비스의 디지털화 등을 주요 과제로 제시했다. 돌봄 경제가 향후 사회경제 정책의 핵심 영역으로 자리 잡을 것임을 시사한 것이다.
우리 정부가 돌봄 경제라는 개념으로 접근하고 있는 문제의식은 ILO가 결의안에서 정의하는 개념보다는 협소한 듯하다. ILO는 돌봄 경제의 개념이나 정의가 모호하다고 하면서도 다음과 같이 폭넓게 정의하고 있다.
돌봄 경제는 공식성과 비공식성을 아우른다. 교육, 영유아 보육 및 교육, 보건 및 사회서비스 부문의 근로자, 가사 노동자, 그리고 무급 돌봄 노동을 수행하는 개인들의 활동을 포함하지만 이에 국한하지 않는다. 즉, 돌봄 경제는 단순히 특정 산업이나 직업군에 국한하지 않고, 사회의 모든 층위에서 이뤄지는 돌봄 관련 활동을 포괄하는 광범위한 개념이다.
ILO의 돌봄 경제 정의와 패러다임은 시장에서 교환되는 돌봄 관련 상품과 서비스, 노동만을 포함하지 않는다. 돌봄 경제 전문가인 낸시 폴브레는 "인간과 사회의 재생산과 복지를 제대로 연구하기 위해서는 시장을 넘어서서 '사람' 혹은 '노동력'을 생산하고 재생산하기 위해 필요한 재화와 서비스의 생산과 분배, 유지의 과정을 들여다볼 것"을 강조한다.
태어나서 줄곧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온 우리는 '경제'를 시장경제와 동일시하는 관습과 제도에 젖어 있다. 낸시 폴브레는 '경제'의 개념과 범위를 확장해야 하며, 새로이 정의된 경제 발전의 궁극적 목표는 인간의 역량(capabilities)과 행복이다. 돌봄 경제에 대한 관심은 전통적인 시장 중심의 경제 개념이 소환하는 인적 자본 투자의 수익성과 GDP 수치로 표상되는 경제성장이라는 환상에서 벗어날 것을 요구한다.
▲ ILO는 ‘돌봄 경제’를 공식성과 비공식성을 아우르는 폭넓는 개념으로 이해하고 있다. |
ⓒ 셔터스톡 |
첫째, '인정(Recognize)' 단계는 돌봄 노동의 가치를 사회적으로 가시화하고 인정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무급 돌봄 노동의 경제적 가치를 측정하여 국가 통계에 포함시키고, 돌봄 노동의 사회적 중요성에 대한 대중 인식 캠페인을 실시하며, 돌봄 노동자의 숙련과 전문성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자격 체계를 수립할 것 등을 제안한다.
우리나라에서도 통계청이 무급 돌봄 노동의 경제적 가치를 측정하고 있지만 숫자 생산을 위한 작업에 그치고 있다. 이 숫자를 정책 수립의 기초 자료로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정책을 입안할 때 돌봄 노동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기 위해 가족 돌봄 지원의 방식과 수준 등 측정의 결과물을 보다 적극적으로 반영해야 한다.
둘째, '감소(Reduce)' 단계는 무급 돌봄 노동의 부담을 경감시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공공 인프라 개선을 통한 가사 및 돌봄 노동 시간 단축, 노동 절약형 기술과 가전제품에 대한 접근성 향상, 그리고 유연한 근무 제도 도입을 통한 직장과 돌봄 책임의 균형 촉진 등의 방안을 실행할 수 있다.
우리나라도 이와 관련한 기술과 제도를 활용하고 있다. 그러나 일·가정 양립 정책이 고용안정이 보장된 근로자에게 혜택이 집중되는 바람에 여성과 남성, 정규직과 비정규직, 저소득 가구와 고소득 가구 간 갈등을 심화시키고 있다. 최근 발전하고 있는 인공지능과 로봇이 돌봄 부담을 완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지만, 경제력에 따른 기술 접근성 차이 때문에 불평등을 심화시킬 가능성도 있다.
지역사회 통합 돌봄과 같이 노인이 지역에서 오랫동안 생활할 수 있도록 인공지능이나 소셜 로봇 등 활용을 위한 연구 개발과 제도 구축이 활발한데, 기술이 인간의 돌봄 노동을 감소시킬 것인지, 슬그머니 가족 노동을 더 요구할 것인지, 어떻게 기술이 돌봄 노동을 재조직할 것인지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셋째, '재분배(Redistribute)' 단계는 돌봄 책임을 사회 구성원들 간에 더 공평하게 분배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부모 휴가 정책 개선을 통한 남성의 돌봄 참여 장려, 공공 돌봄 서비스 확대, 그리고 가정 내 돌봄 책임의 공평한 분담을 촉진하는 교육 프로그램 실시 등의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
돌봄 노동의 분배는 성평등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여성이 돌봄에 특화하면 장기적으로는 여성 개인에게 불이익을 가져올 뿐만 아니라 국가 경제에 해로운 영향을 미친다. 우리나라는 돌봄 비용 증가에 대해 돌봄 서비스의 공공성을 제고하는 대신 시장에서 사회경제적 취약 계층인 여성이나 이주 노동자에게 낮은 임금을 지급하는 것으로 해결해 왔다.
필리핀 가사노동자처럼 해외 인력을 돌봄 시장에 투입하는 해결책은 단기적으로 미봉책이 될지언정 장기적으로는 위기를 지연시킬 뿐이다. 돌봄 노동자의 수입은 무엇보다 돌봄을 조직하고 공급하는 자생적인 공동체의 생성과 발전을 가로막는다. 필리핀 가사노동자에게 최저임금보다 적게 주자는 정치인들의 목소리는, 돌봄 노동이 생산하는 사회경제적 가치가 아니라 '누가' 그 일을 하느냐로 돌봄 노동의 가치를 환원시킨다는 점에서 경계해야 한다.
이런 식으로 돌봄 노동의 가치가 하락하는 한, 저임금 일자리를 회피하려는 동기는 커질 것이고 사회구성원들 간의 공평한 돌봄 분배는 어려워질 것이다.
▲ 8월 6일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에 참여할 필리핀 노동자들이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하고 있다. |
ⓒ 연합뉴스 |
돌봄의 사회경제적 가치와 생산성에 대한 편협하고 부당한 우리 사회의 인식은 돌봄 일자리와 서비스 정책의 밑바탕에 자리하고 있다. 돌봄은 그 사회경제적 가치를 온전히 평가하기 어려운 공공재이다. 공공재의 가치이자 편익은 직접 생산하고 소비한 개인을 넘어, 잠재 성장률이나 고용률의 증가로 환원할 수 없는 사회 전반에 걸친 편익을 창출한다.
돌봄의 편익은 오랜 시간이 지난 이후에야 나타나고 장기에 걸쳐 창출되므로 그 진정한 가치는 과소 평가되기 쉽다. 가치가 과소 평가되므로 돌봄 노동에 대한 응당한 보상은 이뤄질 수가 없다. 단기적인 투입 대비 산출 관점에서 측정하는 일반적인 '생산성' 개념으로 돌봄 노동자의 채용, 경력 관리, 보상을 결정해서는 안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대표성(Represent)' 단계는 돌봄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정책 결정 과정에 반영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돌봄 노동자들의 노동조합 결성과 단체 교섭권 보장, 돌봄 정책 수립 과정에 돌봄 노동자들의 참여 보장, 그리고 돌봄 노동자들의 권리와 이익을 대변하는 전문 기관 설립 등의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돌봄 노동자들은 대표성 확보에 있어 여성 지배 직종, 재가 노동, 공공부문, 사용자-노동자-이용자라는 3자 고용관계라는 일자리의 특징으로 인해 구조적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돌봄 서비스 이용자의 권리와 돌봄 노동자의 일하는 사람으로서 기본적 노동권이 좀 더 조화와 균형을 이뤄야 한다.
이와 같은 5R 프레임워크의 효과적인 실행을 위해서는 정부, 기업, 시민사회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정부는 포괄적인 돌봄 시스템에 대한 투자와 유급 돌봄 부문의 괜찮은 일자리를 보장하는 정책 수립에 주력해야 하며, 기업은 돌봄 서비스와 인프라에 대해 투자하고 성평등을 증진하는 돌봄 정책 수립에 참여해야 한다.
▲ 윤자영 / 충남대 경제학과 부교수(소셜 코리아 자문위원) |
ⓒ 윤자영 |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에도 게재됐습니다. <소셜 코리아> 연재 글과 다양한 소식을 매주 받아보시려면 뉴스레터를 신청해주세요. 구독신청 : https://socialkorea.stibee.com/subscri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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