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타자'에게도 버거웠던 감독의 무게
[이준목 기자]
프로야구 두산 베어스 이승엽 감독이 결국 6월 2일 전격적으로 자진 사퇴했다. 두산은 현재 23승 3무 32패로 10개 팀 가운데 9위에 그치고 있다. 특히 지난 주말 꼴찌 키움 히어로즈에게 2연속 영봉패를 당한 게 결정타가 됐다는 평가다. 이승엽 감독은 성적 부진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고 구단에 자진 사퇴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승엽 감독의 퇴진은 올시즌 프로야구에서 58경기만에 나온 '감독 사퇴 1호'다. 두산 구단은 팀분위기 쇄신을 위하여 이 감독의 사의를 수용했다고 밝혔다. 당분간 조성환 코치가 감독 대행을 수행할 예정이다.
이승엽 감독은 지난 2022년 10월, 두산과 3년 계약에 총액 18억 원이라는 파격적인 조건으로 지휘봉을 잡았다. 한일통산 626홈런, KBO 리그에서만 467홈런(역대 1위), 5회의 한국시리즈 우승과 베이징올림픽 금메달 등 선수로서는 수많은 위업을 세운 한국야구사 최고의 '국민타자'였지만, 은퇴후 지도자 경력은 아예 전무한 '초보 감독'이었다.
이승엽 감독은 2017년 은퇴 이후 5년여간 야구 재단 운영, SBS 해설위원 역임, JTBC 스포츠예능<최강야구> 출연 정도가 야구 관련 활동의 전부였고, 지도자로서의 프로 현장 경험은 없었다. 반면 두산은 한국시리즈 우승만 6회나 차지했으며, 전임인 김태형 감독(현 롯데) 시절에는 무려 7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3회 우승)이라는 대기록을 수립하며 왕조를 호령했던 팀이었다. 가뜩이나 팬들의 기대치가 높은 두산에서, 자팀 레전드 출신도 아니고 지도자로서 전혀 검증도 안 된 이승엽 감독을 굳이 선임한 배경에 대해 여론은 시작부터 그리 호의적이지 않았다.
표면적으로 어느 정도 성과는 남겼다. 2022시즌 9위에 그쳤던 두산은, 이승엽 감독이 부임한 이후 2년 연속 가을야구 진출에 성공했다. 첫해인 2023년에 5위, 2년차인 2024년에는 4위를 기록했으며 두 시즌간 승률은 74승 2무 68패, .521로 동일했다.
하지만 포스트시즌에서는 너무 무력했다. 2년연속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전패' 수모를 당했다. 2023년에는 NC 다이노스를 상대로 1차전에서 대량실점 끝에 패퇴했다. 지난해 KT 위즈를 상대로는 와일드카드 시리즈 사상 하위팀에게 첫 업셋을 허용하는 불명예 기록을 수립하며 정규시즌의 성과마저 빛이 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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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두산 베어스 이승엽 감독이 2일 계약 기간 3년을 채우지 못하고 감독직에서 자진 사퇴했다. 두산은 2일 23승 3무 32패로 10개 팀 가운데 9위에 머물러 있다. |
| ⓒ 연합뉴스 자료사진 |
두산 팬들 사이에서 '이승엽 야구'하면 떠올리는 대표적인 이미지는 과도한 스몰볼(잦은 작전구사를 통한 감독의 경기개입)과 투마카세(불펜 쪼개기), 올드스쿨(베테랑 선호와 보수적인 경기운영)같은 용어로 요약된다.
현역 시절에는 대표적인 홈런타자로 이름을 떨쳤던 이승엽 감독이지만, 정작 사령탑으로서는 잦은 번트지시와 도루 시도, 작전야구에 의존하며 주자를 쌓기보다 1-2점을 짜내는데 집중하는 상반된 야구스타일을 구사했다. 하지만 두산의 전통적인 팀컬러나 타고투저 시즌이라는 흐름에 걸맞지 않았던 이승엽 감독의 전술에 팬들은 갈수록 답답함을 드러냈다.
투수 운용 방식은 이승엽 감독이 임기 내내 특히 가장 많은 비판을 받았던 부분이다. 두산은 이승엽 감독 체제 내내 외국인과 국내 선발투수들이 번갈아가며 부상으로 인한 전력누수가 속출했다. 이는 자연히 불펜의 과부하로 이어졌다. 이승엽 감독은 여러 불펜투수들을 대거 투입하는 '이닝 쪼개기'식 투수운영을 구사했는데 이로 인하여 2024시즌 두산 불펜진의 소화이닝은 무려 600.1이닝으로 리그에서 가장 많았다.
또한 이 과정에서 두산의 미래를 이끌어야 할 젊은 투수들이 불펜에서 소모품처럼 혹사당했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이승엽 체제에서 마무리로 부상한 김택연은 신인 시즌부터 60경기에 등판해 65이닝을 소화했으며 멀티 이닝과 연투도 빈번하게 속출했다. 김택연 만이 아니라 두산 불펜투수들의 연투 횟수는 140회로 리그에서 2번째로 많았다.
당장의 경기 결과는 어느 정도 얻었을지 몰라도, 경기수가 쌓일수록 투수들의 피로가 누적되면서 장기적으로 잦은 부상과 구위 저하로 이어졌다. 이병헌, 최지강, 김명신 등 이승엽 체제에서 많은 이닝을 소화했던 투수들이 2025년 들어 대거 무너진 것은 우연이 아니라는 평가다. 정철원도 셋업맨과 마무리를 오가며 2024시즌 구위가 크게 떨어졌다가 롯데로 이적하고 나서야 다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반면 재능있는 투수들을 불펜에 몰아넣다 보니 3-5선발급을 맡아줘야 할 토종 선발투수 육성은 지지부진했다. 여기에 올시즌 토종 에이스 곽빈의 부상 이탈과 외국인 1선발 콜 어빈의 기복은 두산 마운드의 부담을 가중시켰다.
투수진에 비하여 야수진은 베테랑 의존도가 매우 높았다. 두산은 주전급 야수들의 연령대가 높아지고 노쇠화 조짐이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지난 3년간 새로운 야수들의 육성과 성장은 더뎠다.
롯데와의 트레이드 이후 본격적으로 포텐이 터지고 있는 전민재와 달리, 두산이 받아온 김민석과 추재현은 좀처럼 기회조차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나마 오명진과 임종성, 김준상 등 새 얼굴이 기회를 받기 시작한 것은 최근이었지만, 팀성적이 9위까지 떨어지며 여론이 완전히 등을 돌린 시점에서 이미 때늦은 변화였다. 결국 이승엽 감독은 두산에서 자신이 지향하는 분명한 야구철학을 보여주지 못한 채, 3년 계약의 마지막 시즌을 남기고 중도에 초라하게 물러나게 됐다.
종합적으로 봤을 때, 이승엽 감독은 처음부터 현재 두산이 처해있는 상황에는 그리 맞지 않는 감독이었다. 아직 지도자로서 자신만의 색깔과 철학도 다듬어지지 않은 초보 감독에게, 과도기에 놓인 팀을 맡겨서 성적도 내고 육성도 하고 선수단도 완벽하게 장악하며 두루두루 다 잘하기를 바랬다면 애초부터 무리한 요구였다.
왜 두산은 이승엽 감독을 선임했을까
그렇다면 왜 두산은 굳이 이승엽 감독을 선임했을까. 오히려 두산은 전통적으로 '순혈주의'에 기반한 감독 선임이 많았던 구단이다. 김경문이나 김태형 전 감독은 모두 두산 출신의 자팀 프랜차이저로서 스타급은 아니었지만, 한 팀에서 선수-코치를 오랫동안 거쳐 감독까지 올라오며 팀내 기반과 영향력이 탄탄한 인물들이었다. 그래서 이들은 확실한 철학과 성적을 바탕으로, 스타들이 넘쳐났던 선수단을 장악하는게 가능했고, 자신의 야구스타일을 성공적으로 팀에 녹여낼 수 있었다.
반면 이승엽 감독은 열성 야구팬으로 유명한 박정원 두산 구단주가 직접 지목한 인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 감독은 정식으로 지도자 수업을 받은 적도 없고, 두산 내부 사정과 문화에 대하여 잘 모르는 외부인 출신의 감독이었다. 신중하고 온건한 성격 때문에 두산의 전임 감독들처럼 팀 분위기를 강하게 휘어잡는 스타일과도 거리가 멀었다. 두산은 특유의 문화로 인하여 1990년대 OB시절의 김인식 감독(1995-2003) 정도를 제외하면, 외부에서 감독을 영입하여 성공한 사례는 아직 단 한번도 없었다.
그리고 이승엽 감독을 둘러싼 이러한 약점들은 부임 전부터 이미 팬들조차 충분히 예상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두산 구단은 경험도 팀내 입지도 부족한 감독을 보완해 줄만한 장치가 부족했다. 이승엽 감독의 부임 첫 시즌을 앞두고 FA가 된 양의지의 두산 복귀 정도 외에는 눈에 띄는 외부 전력보강이 없었고, 윈나우와 세대교체 사이에서 분명한 노선을 정하지 못했다.
이승엽 감독이 포스트시즌 탈락의 책임을 혼자 뒤집어쓰고 홈팬들에게 '나가'라는 구호를 듣는 수모를 당할 때도 구단은 감독을 제대로 보호해주지 못했다. 오히려 2024시즌 이후 김한수-박흥식 전 코치 등 이른바 '이승엽 라인'으로 분류되던 코치들이 성적부진의 책임을 뒤집어쓰고 교체되면서 가뜩이나 불안정하던 감독의 리더십과 권위는 더욱 흔들렸다.
결국 두산은 이승엽 체제 3년간 성적과 리빌딩을 모두 놓치며 시간을 허비한 셈이 됐다. 그 책임을 모두 이승엽 감독이 혼자 뒤집어쓴 꼴이 되어버렸지만, 현대야구에서 한 구단의 팀컬러와 시스템이란 감독 혼자서 좌우하는 것이 아니다.
한편으로 최근 은퇴한 많은 프로야구 출신 유명 야구인들이 '감독'에 대한 열망을 드러내지만 정작 낮은 연봉과 자존심 등 현실적인 조건을 이유로 밑바닥부터 체계적으로 지도자 경력을 쌓는 과정은 기피하는 경우도 많다. 특히 스타 출신들일수록 방송이나 인플루언서 등 다른 분야로 진출하는 것을 더 선호하는 추세도 늘어나고 있다. 최근 프로야구계에서 성공한 스타플레이어 출신 지도자들이 점점 나오기 어려워지는 이유다.
이승엽 감독은 두산에서 3시즌간 346경기 171승 7무 168패 승률 .504의 성적을 남긴 채, 자신의 첫 지도자 도전을 아쉬운 용두사미로 마감하게 됐다. 현역시절 스타 출신이라는 명성과 경험만 믿고 준비도 없이 덜컥 프로팀의 감독을 맡는 것은, 오히려 축복이 아니라 독이 든 성배가 될 수도 있다는 것, 만인의 사랑을 받던 '국민타자'에서 한순간에 '실패한 감독'으로 추락해버린 이승엽 감독의 시행착오가 남긴 안타까운 교훈이다. 과연 이승엽 감독에게 두 번째 기회는 찾아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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