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아파트여야 할까?…저층 주거지의 반란, 서울 ‘중간주택’ 실험

‘고층 아파트 단지 vs. 저층 다세대ㆍ단독 주택.’
서울의 주거 형태는 이 두 유형의 주거지로 사실상 양분되어 있다. 2024년 통계청의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서울 주택 317만호 중 190만호(약 60%)가 아파트다. 연립ㆍ다세대·단독주택이 있는 저층 주거지가 40%를 차지한다.
일부 고급 단독주택 동네를 제외하고 아파트와 저층 주거지는 규모와 주거 환경의 질 측면에서 뚜렷한 격차를 보인다. 민간 투자 중심의 주거환경개선이 아파트 위주로 이뤄진 데다, 저층 주거지 관련 법과 제도가 미비한 탓이다. 박인석 명지대 건축대학 명예교수는 “한국 주거 공간의 양극화가 심각하다”며 “서민 다수가 사는 골목 주거지는 갈수록 퇴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저층 주거지도 살 만한 동네로 만드는 방법을 찾아보자는 취지의 건축상이 국내 최초로 제정됐다. ‘HAU(Housing Architecture Urbanism) 건축상’으로, 건축ㆍ도시 분야 교수들로 구성된 동네주택연구회와 새건축사협의회가 만들었다. 한국 주택 건축 연구의 권위자로 꼽혔던 고 박철수 서울시립대 교수의 3주기를 기념해 추진됐으며, 모금을 통해 총 3000만원의 상금도 마련됐다.

첫번째 공모로 아파트와 다세대주택 사이 새로운 주거 대안이자 규모와 틀을 깬 ‘중간주택’ 개발에 나섰다. 지난달 28일 서울 중구 정림건축에서 열린 심포지엄에서 건축ㆍ도시 분야 전문가들이 참여해 중간주택을 둘러싼 다양한 논의를 이어갔다. 과거 단독주택이 있던 필지가 다세대ㆍ다가구, 도시형생활주택으로 개발되면서 작은 필지가 고밀화되는 추세다. 하지만 아파트와 비교해 채광이 부족하고, 1층이 주차장으로 채워진 저층 주거지의 열악한 환경이 법ㆍ제도적 공백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현행법상 다가구ㆍ다세대 주택의 연면적은 660㎡로 제한되어 있다. 층수도 1층 필로티 주차장을 포함하면 4~5층으로 짓도록 규제한다. 또 단위세대 면적당 전용면적 30㎡ 이하는 주차장 0.5대, 60㎡ 이상에는 1대를 확보해야 하는 기준도 적용된다. 1층에 필로티 주차장을 설치하지 않을 경우 지하 주차장을 마련해야 하지만, 주차 통로 확보 등을 고려하면 법으로 제한한 면적보다 큰 필지가 필요하다. 다가구ㆍ다세대주택에서 지하 주차장이 드문 이유다.
김대성 어반인사이트건축사사무소 대표는 “아파트는 채광ㆍ일조 기준 등 제도가 촘촘한 반면, 다세대 주택은 제도 미비로 인해 건물 간 간격이 좁고 주거 환경이 열악해지는 경우가 많다”며 “소형 투룸 빌라가 많은 것도 주차장 면적을 최소화하기 위해 가구당 30㎡ 이하로 설계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저층 주거지에도 많은 시민이 거주하고 있지만, 놀이터ㆍ주차장ㆍ커뮤니티 시설 등 생활 인프라는 부족한 실정이다. 박인석 교수는 “서울의 비아파트 자가 거주율은 57%로 아파트(58%)와 비슷한 수준”이라며 “아파트뿐 아니라 저층 주거지도 건강한 삶터로 만들기 위해 법ㆍ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번 공모전은 서울 관악구 신림동 저층 주거지를 대상으로 기존 건축기준에서 벗어난 중간주택의 새로운 유형을 제시한 작품을 선정한다. 다음 달 29일까지 참가등록을 받고, 수상작은 오는 9월 발표할 예정이다. 공모 관련 자세한 내용은 새건축사협의회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김성홍 서울시립대 건축학부 명예교수는 “저층 주거지가 모두 아파트로 재개발될 수 없는 만큼 이번 공모를 통해 중간주택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고, 보다 나은 주거 환경을 위한 제도적 틀을 마련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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