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 됐다고 왜 집에 가세요?"... 하림이 시니어를 붙잡는 이유

유창재 2026. 8. 17. 12:17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정년이 됐다고 해서 꼭 일을 그만둬야 하나요? 건강하시다면 우리와 계속 같이 일하시죠."

말복을 하루 앞둔 지난 13일 오후 전북 익산시 망성면에 있는 ㈜하림 공장.

정년을 앞둔 숙련 노동자들이 젊은 직원들과 함께 일하며 자신의 경험과 기술을 전수하는 '시니어인턴십(세대통합형)' 노인일자리사업이었다.

하림의 시니어인턴십이 보여주는 세대통합형 노인일자리의 모습이다.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2026 노인일자리] '닭고기 대가' 하림의 세대통합형... 숙련된 60대 노동자가 젊은 직원에게 기술 전수

[유창재 기자]

 하람의 베테랑 직원이 닭고기의 뼈와 살을 정확하게 분리하면서 빠른 속도로 작업하고 있다. 작은 뼛조각이 살에 남아 제품으로 나가면 소비자 안전 문제와 클레임으로 이어질 수 있다. 최소 2~3년에서 10년 이상의 숙련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한다.
ⓒ 한국노인인력개발원
"정년이 됐다고 해서 꼭 일을 그만둬야 하나요? 건강하시다면 우리와 계속 같이 일하시죠."

말복을 하루 앞둔 지난 13일 오후 전북 익산시 망성면에 있는 ㈜하림 공장. 깔끔하고 현대적인 생산시설 안에서 닭고기 가공 작업이 한창이었다. 자동화된 설비 사이로 쉴 새 없이 움직이는 닭고기와 작업자들의 손길이 이어졌다. 한쪽에서는 숙련된 손길로 닭을 부위별로 신속하게 해체하고 선별하는 베테랑 노동자들의 작업이 바삐 이뤄졌다.

이곳에서 눈길을 끈 것은 생산시설만이 아니었다. 정년을 앞둔 숙련 노동자들이 젊은 직원들과 함께 일하며 자신의 경험과 기술을 전수하는 '시니어인턴십(세대통합형)' 노인일자리사업이었다.

하림은 닭고기 생산·가공을 중심으로 사료와 식자재, 급식 등으로 사업 영역을 넓힌 식품기업이다. 지난해 매출은 약 1조 4000억 원, 임직원은 2500여 명이다. 협력·외주업체까지 포함하면 이 공장에서 일하는 인력은 5000명을 웃돈다.

"은퇴 아닌 전수"… 기술 노하우 지닌 60대 숙련자 → '현장 지킴이'로
 하림은 단순히 ‘노인을 고용하는 사업’에 머물지 않는다. 핵심은 숙련된 시니어와 젊은 신입사원을 한 작업장에서 연결하는 데 있다.
ⓒ 한국노인인력개발원
하림이 시니어인턴십에 참여한 것은 2019년부터다. 한국노인인력개발원과 함께 운영해 지금까지 145명이 이 사업에 참여했다. 기업이 받은 지원금은 약 4억6000만 원이다. 시니어인턴십은 노동시장 재진입이 상대적으로 어려운 만 60세 이상 노인의 고용을 촉진하기 위해 기업에 인건비를 지원하는 사업이다. 3개월간 인턴십을 거친 뒤 계속 근로계약을 체결하면 기업에 1인당 최대 270만 원이 지원된다.

하림에서 이 제도는 단순히 '노인을 고용하는 사업'에 머물지 않는다. 핵심은 숙련된 시니어와 젊은 신입사원을 한 작업장에서 연결하는 데 있다. 현재 60세 이상 재고용 인력은 169명으로 전체 임직원 2578명의 6.6%가량이다. 이 가운데 여성 직원이 130명으로 약 77%를 차지한다. 사업 확장으로 인력 수요가 계속 늘면서 정년을 맞은 숙련자들을 다시 고용해야 할 필요성도 커지고 있다.

하림은 정년을 맞는 직원 가운데 10년 이상 근속 여부와 건강 상태, 근태, 동료들의 평가 등을 종합해 재고용 여부를 결정한다. 근로 연장을 희망하는지를 먼저 묻고, 현업 부서와 면담을 거쳐 최종적으로 결정한다.

올해 세대통합형 일자리 참여자는 25명으로 확대할 계획이며, 현재 16명이 참여하고 있다. 이들이 맡는 일은 아무나 쉽게 대체할 수 없는 직무들이다. 부화장 업무부터 원료 발골·정선, 개체 선별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부화 업무는 단순히 달걀을 기계에 넣고 병아리를 기다리는 일이 아니다. 온도와 습도, 환기, 전란, 위생 등 여러 조건을 세밀하게 관리해야 한다. 이상이 생긴 알을 골라내는 것도 오랜 경험이 필요한 일이다. 닭고기 발골과 정선도 마찬가지다. 뼈와 살을 정확하게 분리하면서 빠른 속도로 작업해야 한다. 작은 뼛조각이 살에 남아 제품으로 나가면 소비자 안전 문제와 클레임으로 이어질 수 있다.

장재석 하림 기획조정실 과장은 "무정란이나 질병이 있는 알, 형태가 이상한 알을 미리 골라내는 것도 기술"이라며 "생물 산업 특성상 닭의 부화 과정이나 살과 뼈를 미세하게 분리하는 가공 작업, 개체의 멍·골절 유무를 가려내는 작업 등은 최소 2~3년에서 10년 이상의 숙련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개체 선별 역시 단순히 무게를 재는 작업이 아니다. 닭의 멍이나 골절 등 상품성이 떨어지는 개체를 찾아내야 한다. 숙련자는 손으로 닭을 잡아보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무게를 가늠할 수 있다고 한다.

이런 일은 신입사원이 단기간에 익힐 수 없고 10년, 20년의 경험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 때문에 시니어가 젊은 직원에게 작업 방법을 가르치는 '현장 교사' 역할을 한다. 회사는 정년 예정자와 신입사원의 부서를 미리 확인한 뒤 멘토링과 기술 전수를 진행한다. 이후 실제 생산현장을 찾아 기술 전수가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도 살핀다.

지역 대기업 하림 "나이는 숫자일 뿐… 베테랑 현장 유지가 성장 원동력"
 국내 닭고기 최대 생산 기업인 하림. 현대적인 생산시설 안에서 닭고기 가공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은 자동화된 설비 사이로 쉴 새 없이 움직이는 닭고기들의 모습
ⓒ 유창재
1986년 설립되어 창립 40주년을 맞이한 하림은 농장, 공장, 시장을 하나로 잇는 '3장 통합 경영 시스템'을 국내 최초로 구축한 대표 애그리비즈니스(Agri-business) 기업이다. 지역 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기에 익산시가 하림지주 본사 앞 도로를 '하림로'로 지정했을 정도다.

차대진 하림 생산본부장(총괄 이사)는 "오랜 기간 작업장에서 일한 분들은 나이가 있다고 해서 못 하는 일이 전혀 없다"며 "속도는 조금 떨어질 수 있어도 중요도와 숙련도에서는 오히려 선배들이 가진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하림에는 '나이가 많아서 안 된다'는 문화 자체가 없으며, 오히려 장기 근속한 선배들의 노하우는 기업의 소중한 자산"이라고 강조했다.

기업 입장에서도 시니어 노동자의 존재는 생산성과 직결된다. 특히 삼복 등 성수기에는 평소 하루 60만~70만 마리 수준이던 도계 물량이 100만~120만 마리까지 늘어난다. 이때 수백 명의 단기 인력이 현장에 투입되는데, 숙련된 시니어들이 작업을 이끌어야 생산 차질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장 과장은 "숙련자들이 빠지면 현장에서 병목 현상이 발생한다"며 "신입이나 아르바이트 인력을 이끌고 작업을 진행할 수 있는 리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시니어들의 근무조건도 연령과 건강 상태를 고려한다. 일반적으로 주·야간 근무가 이뤄지지만 시니어인턴십 참여자는 희망자에 한해 주간 근무를 중심으로 배치한다. 법정 기준에 따라 4시간 근무 뒤 30분 휴게시간도 보장한다. 하림은 지원금을 전액 인건비로 활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동시에 작업장 곳곳에 휴식을 위한 공간과 안마의자 등을 마련하고, 보건실을 운영하는 등 건강과 안전에도 신경을 쓰고 있다.

무엇보다 회사가 강조하는 것은 '나이가 많아서 내보내는 문화'가 없다는 점이다. 차 이사는 "예전에는 정년이 되면 '이제 그만 쉬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건강하다면 왜 일을 그만둬야 하느냐는 생각으로 많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하림의 정년 예정자 가운데 근로 연장을 선호하는 비율은 90%를 넘는다. 일을 그만두는 경우도 대부분 손주 돌봄 등 개인적인 사정 때문이라는 게 회사 쪽 설명이다. 차 이사는 "나이라는 이유만으로 밀려나는 것이 아니라, 나이가 들수록 자신이 가진 경험과 노하우가 현장의 기준이 될 수 있는 문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말복을 하루 앞둔 지난 13일 오후 전북 익산시 망성면에 있는 ㈜하림 공장을 방문한 보건복지부와 한국노인인력개발원 노인정책 관계자들이 하림 임직원들과 간담회를 갖고 있다.
ⓒ 한국노인인력개발원
이날 현장을 함께 찾은 김수영 한국노인인력개발원장은 노인일자리 정책의 패러다임 변화를 강조했다. 그는 "대한민국의 생산 가능 인구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며 "노인일자리는 단순한 소득 보전의 개념을 넘어 실제 생산성을 높이는 분야에 배치돼야 한다"고 제시했다.

저출생·고령화로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숙련된 고령 인력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는 기업뿐 아니라 사회 전체의 과제가 되고 있다. 하림의 세대통합형 일자리는 그 답을 생산현장에서 찾고 있다. 정년을 '일의 끝'으로만 보지 않고, 한 세대의 기술이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또 다른 출발점으로 만드는 방식이다.

공장 안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젊은 직원들 사이로 흰 작업복을 입은 노인일자리 어르신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의 손끝에는 수십 년간 쌓아온 경험이 있었고, 그 경험은 다시 젊은 직원들에게 전달되고 있었다. 하림의 시니어인턴십이 보여주는 세대통합형 노인일자리의 모습이다.

"나이가 들었다고 현장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경험이 필요한 곳에서 다시 역할을 찾는 것입니다."
 하림은 단순히 ‘노인을 고용하는 사업’에 머물지 않는다. 핵심은 숙련된 시니어와 젊은 신입사원을 한 작업장에서 연결하는 데 있다.
ⓒ 유창재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