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찾았다" 집 나간 엄마, 18년 만에 시취로 돌아왔다
■ 추천!더중플 - 어느 유품정리사의 기록
「 죽음 앞에선 모두 공평하다고 말하는 건 아무것도 들고 갈 수 없다는 얘기일 뿐이지, 죽는 그 순간의 모습은 전혀 공평하지 않습니다. 지켜 봐주는 이 없이 쓸쓸하게 떠나고 싶은 인간은 없습니다. “내 마지막을 고독하게 만드는 것은 나 자신”이라고 유품정리사 김새별 작가는 말합니다.
이번에도 그는 씁쓸한 현장을 만났습니다. 시취로 돌아온 엄마는 무슨 사연일까요. 그날을 기록한 기사 전문을 무료로 공개합니다. 중앙일보 유료구독 서비스 더중앙플러스 ‘어느 유품정리사의 기록’(https://www.joongang.co.kr/plus/series/130)을 소개합니다.
」
젊은 여성의 의뢰였다.
반지하 빌라 현장엔 자매로 보이는 여성 두 명이 나를 맞았다.
“안녕하세요. 청소업체입니다.”
“김새별 대표님이시죠. 예전부터 대표님 영상을 보고 알고 있었어요. 이렇게 뵙게 되네요.”
간혹 내 유튜브 채널 구독자분들을 현장에서 만날 때가 있다.
그들은 대부분 ‘내게 이런 일이 벌어질 줄 몰랐다’는 반응이 많다.
그런데 이번엔 달랐다.
언니 쪽이 이렇게 말했다.
“제가 전화드렸어요. 대표님 영상을 보면서 혹시 저한테도 이런 상황이 벌어질지 모르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젊은 여성인데 이런 상황을 예상했다니. 무슨 일일까.
무슨 사연일까 싶었지만 “상심이 크시죠” 정도로 일단 인사를 했다.
“그렇지도 않아요-.”
유족의 답변에 당황했다.
현장의 고인은 이들 자매의 어머니다.
아직 젊은 나이의 고독사다.
꽤 긴 사연이 시작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언니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엄마는 저희 어릴 때 집을 나갔어요.
아버지가 우릴 키우셨죠.
좀 커서 알고 보니 두 분은 이혼을 하신 건 아니었어요.”
자매가 고등학생·중학생 때 어머니가 사라졌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고.
아버지는 받아들이지 못했다.
남자는 이혼해 달라는 아내의 간청을 끝내 거부했다.
여자가 짐을 싸서 집을 나가는 걸로 부부관계는 깨졌다.
‘부친에게 무슨 문제가 있었던 걸까….’
가정폭력이나 정서적 학대, 방치 같은 거 말이다.
상식적인 의문이었지만 내가 물을 순 없었다.
하지만 자매는 자기들 사연에 붙는 의문과 덧붙여야 할 해명을 잘 알고 있는 듯했다.
“아빠는 성실한 사람이었어요.
누가 봐도 평생 공무원이셨죠.
술·담배도 안 하시고.
무뚝뚝한 성격에 말수가 적으셨을 뿐,
화를 내거나 싸우는 것을 본 적이 없어요.”
자매의 부친은 살갑지는 않아도 따뜻한 성품이었던 것 같다.
부부관계가 파탄 난 뒤 사춘기 딸들을 남자 혼자 키웠는데, 그녀들은 전혀 아빠를 원망하는 투가 없었다.
내 유튜브를 보며 ‘이런 일’이 일어날지 모르겠다고 짐작했다는 자매들.
그들의 어머니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이번엔 고인과 최근까지 그나마 ‘접점’이 있었던 집주인 이야기다.
“10년 전에 아주머니 혼자 이사를 왔어요.
반지하에 건물도 워낙 낡아서 세를 받을 수나 있겠나 생각했는데.
조용조용한 양반이 월세도 꼬박꼬박 내길래
그동안 세를 한 번도 안 올렸다니까요.”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며 집을 나간 여성은 왜 혼자가 됐을까.
더구나 ‘이혼’한 것도 아니라니 다시 돌아갈 순 없었을까.
뭔지 모를 상념에 사로잡혀 일을 시작했다.
반지하 현관문은 손상돼 있었다.
강제로 문을 뜯고 들어간 흔적이다.
어설프게 테이프로 붙여 놓았다.
시신을 수습한 뒤론 들여다보지 않은 방이었다.
내가 먼저 현장을 확인한 뒤
작업량과 시간 등을 따져보고 의뢰인에게 견적을 내야 했다.
테이프를 뜯어내고 방문을 여니
아니나 다를까, 훅- 하고 덥고 습한 기운이 덩어리째 밀려왔다.
시취.
이 더위에 이 정도 시취면,
적어도 한 달 이상 시신이 방치됐을 게다.
웅웅거리는 소리가 소름 끼치게 일제히 고막을 쳤다.
좁은 방 안에서 방향을 못 잡고 내 머리며 팔에 둔중하게 부딪혀 오는 파리떼.
바닥엔 번데기 껍질이 여기저기 뭉쳐 있었다.
이들도 ‘생명’인데 죽은 생명에 기생해 꾸물거리다 변태를 하고 날아올라 발악을 한다.
상상조차 하기 끔찍한 그 과정이 동영상 고속재생을 하듯 내 머릿속에 재연된다.
“살충제 좀 많이 들고 오세요.”
함께 간 동료에게 소리쳤다.
고인이 숨진 공간을
물량과 시간, 돈으로 설명하는 것이
유족에겐 더 인간적이었다.
그 현장을 직접 보라고 할 순 없으니.
직접 보겠다고 해도 말릴 요량이었다.
유품을 정리한 뒤 보여드리겠다고.
하지만 자매는 죽은 엄마의 방에 딱히 관심이 없어 보였다.
“사실 5년 전에 어머니를 한 번 봤어요.
그때 언니가 결혼을 했거든요.
아버지가 연락을 했어요.
딸 결혼식에 엄마 자리만 지켜 달라고.
그래서 이혼을 안 하신 거래요.
우린 아무 필요도 없는데.
아버지는 무슨 생각이셨던 건지.”
내키지 않은 만남이었던 것 같다.
짧은 안부인사만 나누고 헤어진 뒤 두 번 다신 안 만났다고 한다.
자매의 목소리엔 여전히 원망이 묻어 있었다.
그 가족의 사연을 다시 정리해 보면 이렇다.
어머니는 사랑하는 남자가 생겨 18년 전 가정을 떠났다.
10년 전엔 혼자가 돼 허름한 반지하 빌라에 세 들어 조용히 살았다.
남편과 딸을 버려도 좋았던 그 남자와는 함께 8년을 못 간 것이다.
그리고 5년 전에 애들 아빠의 ‘부탁’으로 큰딸의 결혼식을 찾았다.
그 가족의 냉랭한 재회는 그때뿐.
그리고 5년 뒤.
가족에게 이미 버려진 어머니는 시신마저 버려진 채 고독사의 최후를 맞았다.
사인에 사건성은 없었다.
살충제를 잔뜩 뿌려 두고 한참을 기다려 다시 반지하로 내려갔다.
약에 취한 파리떼들이 온통 바닥에 뒹굴었다.
모터라도 단 듯한 맹렬한 날갯짓.
하지만 아무리 발악을 해도 날아오르지 못한다.
발광한 듯 제자리만 뱅글뱅글 돌다가 축 처진다.
죽어가는 파리떼를 한 봉지 가득 빗자루로 쓸어담았다.
지독한 시취와 끔찍한 파리떼 소리가 좀 가시고 난 뒤의 방은
60대 여성이 혼자 살 법한 집 그 자체였다.
하지만 다른 점이 있었다.
자식들이 장성해 독립한 뒤 홀로 사는 엄마의 집엔 냉장고가 두세 대씩 있다.
아이들이 찾아오면 반찬이며 김치를 바리바리 싸줘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엄마들의 냉장고엔 식재료가 가득가득하다.
그것도 부족해 김치냉장고며 여분의 냉장고가 또 있는 편이다.
하지만 이 집엔 중소형 냉장고 딱 한 대뿐이었다.
냉장고를 열어 보니 달걀 다섯 개와 빵빵하게 부풀어 오른 우유팩, 조각 수박 4분의 1쪽, 김치가 들어 있는 반찬통, 고추장.
그리고 소주 두 병이 전부였다.
자식이 있는 여성의 고독사 현장에선 보기 드문 냉장고였다.
이런 말들을 한다.
인연이란 처음 만나는 사람이고,
운명이란 마지막까지 있어주는 사람이다.
고인에게 인연은 있었지만 운명은 없었다.
그들만의 속사정은 모르겠다.
다만 그 인연은 운명이 되지 못했고 천륜마저 끊었다.
사춘기 소녀들이 잃어버린 엄마의 냄새,
18년 뒤 참혹한 시취로 남았다.
참. 그나저나 딸들은 언제부터,
‘이런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겠다’고…
예감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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