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온천은 논 위에 떠있다…천장서 별 쏟아지는 20만원 호텔

이영희 2024. 10. 18.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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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천! 더중플 -‘온천 소믈리에’

「 오늘의 ‘추천! 더중플’은 최고의 휴식을 꿈꾸는 분들에게 최적의 여행지를 찾아드리는 시리즈 ‘온천 소믈리에’입니다. 일본에서 특파원으로 일하며 ‘온천 소믈리에’ 자격증을 취득한 기자가 특별한 매력을 가진 일본 온천으로 독자들을 안내합니다.

알려진대로 일본은 ‘건축 강국’입니다. 상(賞)의 숫자가 모든 걸 말해주진 않지만, 1979년 프리츠커상이 제정된 이래 가장 많은 수상자(9명)를 배출한 나라죠.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에 피난민 쉼터를 지었던 반 시게루(坂茂·67), 노출 콘크리트의 거장으로 불리는 안도 다다오(安藤忠雄·83) 등은 한국에도 널리 알려진 건축가입니다. 일본 곳곳엔 이들이 설계한 온천이 있어요. 그 중 제가 가장 좋아하는 ‘쇼나이 호텔 스이덴 테라스(SHONAI HOTEL SUIDEN TERRASSE)’를 소개하려 합니다. 건축가의 특별한 디테일을 호텔 곳곳에서 느낄 수 있는데도 숙박비는 2인 기준 20만원대로 저렴한 곳이거든요. 광고 아니고요, ‘내돈 내여행’으로 고른 숙소입니다.

일본에 딱 한 곳 있는,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온천은 어디일까요. ‘온천 소믈리에’의 모든 기사는 더중앙플러스(The Joongang Plus) 구독 후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www.joongang.co.kr/plus/series/242

눈 위에 떠 있는 것 같았던 겨울의 스이덴테라스. 이영희 기자


때론 잠시 머무는 공간에서 예상치 못한 위로를 받기도 합니다.

2년 전 일본 야마가타(山形)현에 있는 ‘쇼나이 호텔 스이덴 테라스(이하 스이덴 테라스)’를 찾아간 날을 기억합니다. 끝날 듯 끝나지 않던 코로나19, 2년 차를 맞은 외국 생활에 지칠 대로 지친 때였어요. 어느 여행 책자에서 허허벌판에 우뚝 선 이 온천 호텔의 사진을 보고 충동적으로 예약 버튼을 눌렀죠. 도쿄(東京)에서 기차를 몇 번 갈아타고 JR 쓰루오카(鶴岡)역에 도착, 택시를 불러 호텔로 향했습니다. 하얀 눈이 쌓인 벌판 한가운데 길고 낮은 목조 건물이 둥둥 떠 있더라고요. 어쩌자고 이런 곳에 호텔을 지은 것인가. 당황스러운 마음이 먼저 들었어요.

첫인상부터 예사롭지 않았던 이 온천 호텔은 일본 건축가 반 시게루가 설계한 곳입니다. 재난 지역에 종이를 이용한 난민 보호소를 지어 2014년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건축가죠. 지금은 내년 여름 오사카(大阪)에서 열리는 엑스포 파빌리온을 짓고 있고요. 세계적인 건축가가 어쩌다 외딴 시골 마을까지 출동했을까 의아했지만 이곳을 경험하고 나면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스이덴 테라스’는 마음의 거처를 잃은 이들에게 평안을 선사하는 ‘마음의 난민 보호소’ 아닐까 싶어지거든요.


세상 어디에도 없는 '논 뷰 온천'


스이덴 테라스의 도서관. 반 시게루의 종이 튜브로 만든 의지가 비치돼 있다. 사진 호텔 홈페이지.

특별한 관광 자원이 없고 가진 건 논뿐인 야마가타의 쇼나이(庄内) 지역에 온천 호텔을 세우겠다 결심한 사람은 야마나카 다이스케(山中大介·38)라는 인물입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부동산 회사에서 일하던 당시 서른 살의 그는 끝없이 펼쳐진 쇼나이 평야의 풍경에 반해 어디에도 없는 ‘논 뷰(view)’ 호텔을 계획했다고 해요.

‘누가 오겠냐’란 반대의 목소리를 뚫고 그는 반 시게루와 힘을 합칩니다. 반 시게루는 원래 대도시의 랜드마크가 될 대형 빌딩을 주로 설계하는 건축가가 아니에요. “돈과 힘을 가진 부자들을 위해 기념비적 건물을 짓는 데 집중하는” 건축계 현실에 염증을 느끼고, 자신을 필요로 하는 현장에 찾아다니는 ‘행동하는 건축가’로 불리지요. 그가 주로 사용하는 소재는 두루마리 화장지 심과 비슷한 ‘종이 튜브’와 나무. 싸고 가벼우면서도 내구성이 강한 소재로 화려하진 않지만 실용적인 건물을 짓습니다.

천장에서 빛이 들어오는 스이덴 테라스의 온천탕. 사진 호텔 홈페이지


2018년 문을 연 스이덴 테라스엔 이런 그의 건축 세계가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논둑을 걸어 호텔 문을 열고 들어서면 밝은 로비가 따뜻하게 여행객을 맞아줘요. 중앙에 커다란 나무 계단이 있고, 격자무늬 창으로 햇살이 들어옵니다. 종이 튜브를 이용해 만든 소품이 곳곳에 배치돼 있어 건축가의 세심한 손길을 느낄 수 있습니다.

온천도 좋았어요. 목재 트러스 구조의 천장을 가진 실내탕에선 밤이면 반짝이는 별이 보이더라고요. 논 밑에서 끌어올린 온천수는 투명한 나트륨·칼륨·황산염·염화물천으로 자극적이지 않고 부드럽습니다. 가장 맘에 들었던 곳은 정성 들여 지어진 도서관이었어요. 목재 서가엔 고른 이의 취향이 느껴지는 책들이 꽂혀 있고, 논 풍경이 한눈에 보이는 통창 앞 의자에 앉아 책을 읽을 수 있습니다.

호텔 주변엔 그 흔한 편의점 하나 없었습니다. 목욕을 하고, 책을 읽고, 남는 시간은 건물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디테일에 감탄하는 게 전부였죠. 그런데도 휑하고 추웠던 마음이 포근하게 데워지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한국에서 가려면 센다이(仙台) 공항으로 들어가 기차나 버스로 3시간 넘게 이동해야 하니 교통이 불편한 것이 흠이지만 ‘산 넘고 물 건너’ 찾아가 볼 가치가 충분합니다.


자연 속에 녹아든 ‘작품’ 같은 온천들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세노우치 리트리트 아오나기'. 사진 호텔 홈페이지

그 외에도 도쿄 ‘신국립경기장’을 설계한 구마 겐고(隈研吾·70)의 ‘후후 나라(ふふ奈良)’,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일본 내 유일한 온천인 ‘세토우치 리트리트 아오나기(瀬戸内リトリート青凪)’ 등 건축가의 ‘지문’이 묻어있는 멋진 온천들의 이야기를 다음 기사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 온천 천장엔 별이 뜬다, 논 위에 떠있는 20만원 호텔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75802

■ 온천 여행의 모든 것

「 이번 겨울 온천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다음 기사들을 먼저 읽어보세요. 취향에 맞는 온천 고르는 방법부터 온천에서 지켜야 할 예절까지 상세히 알려드립니다.

일본 규슈 구마모토현에 있는 구로카와 온천. 사진 구로카와 온천협회 홈페이지


▶18만원 료칸, 72만원 이겼다…일본 가성비 갑 온천은 여기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67766
: 나에게 딱 맞는 일본 온천 찾는 법, 예산에 맞는 숙소 고르기

▶올 가을 혼자 떠나라, 일본…미슐랭도 픽한 산골 온천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73999
: ‘혼온’이 대세! 나 혼자 훌쩍 떠나기에 최적인 온천은 어디일까요

▶온천서 머리수건 얹는 일본인…웃긴다? 사고 막는 지혜였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70836
: 온천, 잘못하면 큰일 날 수도 있다!! 이것만은 꼭 지키세요

▶아침 귀국 비행기에 딱이다, 도쿄에 숨은 ‘5000원 온천’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80301
: 도쿄에도 온천이 있다. 쇼핑하러 간 길에 온천도 즐기려면

▶“한국도 이런 물이 있다니!” 온천 소믈리에가 놀란 온천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81854
: 온천러버들이 꼽은 국내서 제일 물 좋은 온천 알려드림

이영희 기자 misqui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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