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장 원서 사범대에 몰빵한 딸...교사 아빠의 솔직한 심경
[서부원 기자]
▲ 20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일인 2023년 11월 16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여고에서 수험생들이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
ⓒ 사진공동취재단 |
기업이든 정부든 시민단체든 환경 분야에서 일하고 싶다던 아이가 느닷없이 교사로 진로를 급선회한 이유가 궁금했다. 지금껏 기후 위기와 맞물린 지구 환경의 보존이 인류의 가장 절실한 문제이며, 진로와 직업에서도 '블루오션'이라고 으스대 온 터다. 향후 관련 직업이 화수분처럼 쏟아질 거라고 장담하기도 했다.
그런데, 고2 겨울 방학 무렵 지구 환경 보존이라는 목표는 '종착역'이 아니라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불현듯 머리를 스쳤단다. 아울러, 시민들을 대상으로 정책을 만들어 강제하기보다 개인적 각성을 통해 자발적으로 실천하도록 이끄는 것이 바람직하고도 실효적이라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했다. 그가 미래세대 교육에서 해답을 찾은 이유다.
사범대 택한 아이에게 주변인이 내보인 한결같은 반응
"굳이 사범대를 가야겠니?"
그렇듯 나름 심사숙고한 뒤 진로를 정한 그에게 주변 사람들이 내보인 한결같은 반응이다. 학급 담임교사도, 교과 교사도, 심지어 둘 다 현직 교사인 부모조차도 다른 선택을 종용하고 나선 것이다. 사범대에 합격한다고 해도 임용시험을 통과해 교사가 되기란 하늘의 별 따기라는 현실적 조언이 전가의 보도처럼 이어진다.
임용시험을 통과하는 것도 어렵지만, 학령 인구의 급감에 따른 교사 정원조차 대폭 줄어 머지않아 사범대의 문을 닫는 대학이 나올 거라는 암울한 전망마저 나오는 판국이다. 그러잖아도 교대와 더불어 사범대의 입학 정원이 해마다 줄어드는 추세다. 어느새 전공에 따라 10명 남짓인 학과가 태반이다.
이에 따라 '입결'도 급추락하고 있다. 불과 몇 해 전까지만 해도 교대의 '입결'이 의치대에는 못 미친다 해도 약대, 수의대 등과는 어금버금했다. 사범대 경우에도 '의치한약'을 제외하면 여러 단과대학 중 맨 윗자리를 차지할 만큼 인기를 구가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이들 사이에서 안정적인 교직에 대한 선망이 컸다.
이젠 상황이 돌변했다. 사범대생은 교사 말고는 진로가 불투명해 졸업과 동시에 백수가 된다는 두려움이 크다. 게다가 걸핏하면 민원이 제기되고 아동학대 혐의로 고소당하는 등 나날이 교권이 추락해가는 현실과 맞물려 사범대 진학은 '자해 행위'라는 우스갯소리마저 나온다. 누구라도 사범대에 간다면 도시락 싸 들고 달려가 말릴 수밖에 없다.
"학교로 발령받아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지만, 학교 말고도 아이들과 만나 지구 환경의 보존에 관하여 이야기 나눌 공간은 많지 않을까? 취업 고민이 없다면 거짓말일 테지만, 아무렴 산 사람의 입에 거미줄이야 치겠어?"
딸아이의 말이 죽비가 되어 되돌아왔다. 부모이기 이전에 명색이 교사로서, 교사가 되겠다는 아이에게 격려는 못할망정 각박한 현실과 불안한 미래를 핑계 삼아 막아서는 모습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미래 전망과 취업률 따위의 사회적 조건을 우선 고려해야 한다는 충고는 기실 아이의 적성과 재능을 억누르는 반교육적 처사다.
▲ 회상해 보면, 딸아이는 어려서부터 또래 친구들 앞에서 무언가를 설명하고 가르치는 걸 남달리 좋아했다. |
ⓒ alamkusuma on Unsplash |
회상해 보면, 딸아이는 어려서부터 또래 친구들 앞에서 무언가를 설명하고 가르치는 걸 남달리 좋아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만들어 나눠주는가 하면, 시험에 대비할 때도 부모를 앞에 앉혀 놓고 이해가 가는지 들어보라며 강의하는 식으로 공부하곤 했다. 부모가 아닌 교사의 눈으로 봐도, 그의 노트 정리는 일품이었다.
친구들과 의기투합해 동아리를 꾸린 뒤 환경 관련 세미나를 여는 등 비교과 활동에도 열심이었다.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하는 외향적인 성격이라 활동적인 직업이 제격이라 여겨왔지만, 아이들과 부대끼며 미래를 어루만지는 교사도 나쁘지 않은 선택일 듯싶었다. 진정 가슴을 뛰게 하는 일인지가 진로 선택의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되어야 한다.
"그보다 여전히 시험 성적만으로 줄 세워 교사를 임용하는 방식부터 바뀌어야 할 것 같아. 임용시험을 위해 몇 년 동안 고시원에서 두문불출 공부만 했다는 선생님들의 경험담이 조금 충격적이었어. 차라리 그 시간 교육 실습을 하는 게 추후 교직 생활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사범대로 진로를 정하고 난 뒤, 호기심에 교사 임용 과정을 들여다본 모양이었다. 시험 성적으로 과연 교사의 자질과 역량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느냐는, 실상 '해묵은' 문제 제기였다. 기실 이는 시험 성적으로 서열을 정하는 것만이 공정하다는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관성을 극복하지 않는 한 일점일획 손댈 수 없는 선발 방식이다.
부작용이 크다는 건 알지만, 달리 방도가 없다는 식이다. 로스쿨이 도입되면서 이른바 '고시 낭인'은 사라졌지만, 지금은 임용시험에 목매단 예비 교사들이 바통을 넘겨받은 모양새가 됐다. 시험 준비에 영혼이 피폐해졌다고 토로하면서도 그들은 교사 정원의 감소를 우려할 뿐, 선발 방식에는 별다른 문제의식을 보이지 않는다.
맹목적인 '시험 중독 사회' 대한민국
기성세대는 물론, 철부지 초등학생조차 시험 성적에 따른 차별 대우는 정당하다고 스스럼없이 말하는 상황에서 현행 임용시험 체제가 바뀌기를 기대하는 건 허황하다. 같은 조건으로 한날한시에 치르는 시험이 아니면 믿지 못하겠다고 아우성치는 마당에 대안이 있을까 싶다. 이러다 '수능 1등급 출신 교사'가 '지역 균형 선발 출신 교사'를 얕잡아볼 날이 올까 두렵다.
요원할지라도, 아이의 지적처럼 교사의 임용 방식은 반드시 개혁해야 한다. 시험 성적으로 줄 세워져 뽑힌 교사가 아이들의 시험 성적 향상에 목매다는 건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다. 시험 성적을 올리고 진학 실적이 좋은 교사가 유능한 교사로 우대받는 현실은 무한경쟁과 각자도생의 가치관만 횡행하는 우리 교육의 민낯이다.
우리나라는 '능력주의'라는 말로는 부족한, 맹목적인 '시험 중독 사회'다. 일단 '시험 중독'에 빠지면 여행과 영화 감상은커녕 독서마저 시간 낭비로 치부하게 된다. 교양 쌓기는 기약 없이 유예되고, 그렇게 교단에 선 교사는 아이들에게 '시험 중독'이라는 몹쓸 병을 전염시키게 되는 무한루프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따위의 금언은 병증을 더욱 악화시킬 뿐이다.
버스가 떠난 뒤 손 흔드는 격이지만, 딸아이에게 요지경 속인 교사 임용 과정에 대해 미리 들려주었다면, 지레 겁먹고 사범대 진학을 포기했을까. 아이가 대학에서 지금껏 그래왔듯 임용시험 외길에서 '시험 중독'에 허덕일지, 아니면 변화와 개혁을 부르대며 임용시험을 거부할지, 딸아이의 성격상 이 두 가지 외에 다른 선택지는 없어 보인다. 수능을 꼭 한 달 남겨둔 지금 교사로서, 아빠로서 심경이 복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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