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극우학자가 본 윤 대통령... 앞날이 밝지 않다 [김종성의 '히, 스토리']
[김종성 기자]
▲ 일본 국가기본문제연구소 홈페이지 |
ⓒ 국가기본문제연구소 |
2007년 창립된 국가기본문제연구소는 최대 극우단체인 일본회의(닛폰카이기)와 긴밀한 관련을 갖고 있다. 일본 극우의 대명사이자 전 일본회의 대표위원인 고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도지사도 이 연구소 회원으로 활동했다.
연구소는 일부 한국 지식인들을 부각시키는 활동도 하고 있다. 지난 6월 15일에는 '귀속재산 연구, 한국에 묻힌 일본 자산의 진실'을 저술한 이대근 성균관대 명예교수를 일본연구특별상 수상자로 공표했다. 이 연구소가 한국 학자나 변호사 등과 함께 식민지배에 관한 일본 측 주장을 홍보하고 있다는 점은 홈페이지의 '연구소 개요'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전시 노동자 문제에서 안이한 양보를 하지 말라'는 논설의 필자는 연구소 기획위원 겸 연구원이자 레이타쿠대학 객원교수인 니시오카 쓰토무다. 1956년생인 이 극우 학자는 '북조선에 납치된 일본인을 구출하기 위한 전국협의회(구출회)' 회장으로 활동하면서 일본 사회의 대북 압박 여론을 고조시키는 데 참여하고 있다.
주한일본대사관 전문조사원, 현대코리아연구원 연구원과 도쿄기독교대 교수 등을 거친 니시오카는 납치문제를 통한 대북 압박뿐 아니라 강제징용·위안부 문제 등을 통한 대한국 압박에도 참여한다. 일본이 명백히 잘못한 강제징용 등의 문제에서 일본 극우가 목소리를 높이며 도리어 한국을 나무라는 이 모순된 현상을 장식하는 인물 중 하나다.
니시오카의 글은 "11월 13일, 기시다 후미오 수상이 방문지인 프놈펜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최초의 공식 회담을 가졌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윤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의 한일정상회담은 9월 22일에도 있었는데도 이렇게 썼다.
일본 정부와 극우는 한국이 징용 해법을 갖고 오지 않으면 정상회담을 해주지 말아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해왔다. 30분 진행된 9월 22일 만남을 회담이 아닌 간담으로 평가절하하는 것은 이 회담 때 윤 대통령이 만족스러운 해법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인식에서다.
니시오카는 11월 13일 만남을 '회담'으로 평가했을 뿐 아니라 '최초의 공식 회담'이란 수식어까지 붙이며 의미를 부여했다. 그런데 이 회담에서도 징용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최초의 공식 회담'이란 표현을 쓴 것은 윤 대통령의 태도를 높이 평가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윤 정권에 대한 호의적 시각과 우월적 시각
이 점은 논설의 이어지는 대목에서 확인된다. 그는 "윤석열 정권은 발족 이래로 일본 기업의 재산이 현금화되고 그로 인해 우리나라가 제재를 가하는 사태를 피하기 위해 각종 노력을 해왔다"라고 썼다.
윤 대통령이 일본 기업 재산이 법원 강제집행에 의해 현금화돼 피해자들에게 넘어가지 않도록 노력했으며, 또 일본의 한국 제재를 피하기 위해 노력해왔다고 평가했다. 윤 정권에 대한 호의적 시각과 우월적 시각을 함께 담은 것으로 보인다.
동시에, 북한의 군사적 위협으로 인한 일본 민심의 동요를 막으려면 기시다 내각이 한일 군사협력에서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인상을 확산시킬 필요가 있다는 일본 정부의 정치적 고려에 공감한 결과로도 보인다.
'11월 13일 만남은 정상회담'이란 표현은 한일이 연대해 북한을 방어하는 인상과 함께, 윤 대통령이 징용 문제에서 뭔가 양보한 듯한 느낌을 일본 국민들에게 전달해 기시다 내각 지지율을 높일 수 있는 표현이다. 그런데 니시오카는 글 서두에서는 윤 대통령을 높이 평가했지만 본문에서는 '톤'을 바꾸었다. 글의 본문은 조심해야 한다는 메시지로 가득 차 있다.
그는 한국 정부 내에서 유력하게 거론되는 강제징용 해법인 한국 정부에 의한 대위변제 방식이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재단)에 의한 채무인수 방식에도 위험성이 있다고 지적한다. 한국 정부에 의한 면책적 채무인수 방식은 채무자의 동의를 요하므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한다.
미쓰비시나 일본제철이 채무인수에 동의하면 이들에게 책임이 있었음을 인정하는 모양새가 된다. 채무자의 동의에 따라 기존 채무자의 채무를 소멸시키고 인수인이 새롭게 채무를 부담하는 면책적 채무인수는 '채무자의 동의'로 인해 일본의 책임을 인정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인식을 담은 지적이다.
그는 재단에 의한 인수 방식은 기존 채무자의 채무도 소멸시키지 않고 기존 채무자의 동의도 요하지 않는 병존적 채무인수라서 일본 기업의 관여를 요구하지 않지만 이 역시 조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윤 정부가 일본 기업의 성의 표시를 요구하는 점이 주의할 대목이라는 것이다.
성의 표시 요구로 인해 "일본 기업의 관여가 요구되고 원고에 대한 채무를 인정케 할 위험이 있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재단의 채무인수를 계기로 일본 기업이 사과 표명이나 기부금·위로금 지급 등의 방식으로 성의 표시를 하게 되면 결과적으로 강제징용 책임을 인정하게 되니 조심하라는 것이다.
▲ 윤석열 대통령이 13일(현지시간) 캄보디아 프놈펜 한 호텔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악수하며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 연합뉴스 |
니시오카는 일본 기업들이 그런 식으로 관여될 경우, 일본 사법부의 권위까지 떨어트릴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일본 재판소에서 승소 판결을 받은 일본 기업들이 한국 법원의 판결에 따라 성의 표시 같은 것을 하게 되면 "결국 일한의 법질서가 정면으로 충돌"한다면서 "한국 측의 법질서를 인정하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라고 주의를 준다.
윤석열 정부의 해법은 2018년 대법원 강제징용 판결을 처리하기 위한 것이므로 일본 기업들이 이 해법을 위해 성의 표시를 하게 되면 결과적으로 한국 대법원을 존중하는 모양새가 된다는 지적이다.
그가 제기한 또 다른 위험성은 미쓰비시·일본제철에 소송을 건 사람들 외에도 잠재적 소송 제기자들이 많다는 점이다. 일본 기업들이 성의 표시를 하게 되면 이들까지 일어설 수 있다고 경고한다. "다수의 전 노동자, 전 군인·군속들로부터 불공평하다는 불만이 분출될 것이 예상된다"라고 지적한다. 또 다른 강제징용 피해자들뿐 아니라 강제'징병' 피해자들도 들고 일어설 수 있다는 것이다.
더 많은 피해자들이 등장할 것을 우려하는 이 대목은 일본 극우의 모순을 반영한다. 일제 식민지배가 한국에 이익을 줬을 뿐이라고 주장하면서도, 강제징용뿐 아니라 강제징병 피해자들까지 의식하고 있는 셈이다.
니시오카가 지적한 또 다른 위험성은 윤석열의 해법이 그의 리더십을 전제로 한다는 점이다. 그는 "재단에 의한 인수라는 틀은 윤석열 정권이 일정한 통치력을 갖고 있는 동안만 유지될 수 있다"고 말한다.
'윤 정권이 재임하는 동안만 유효한 방안'이라고 하지 않고, '윤 정권이 통치력을 갖고 있는 동안만 유효한 방안'이라고 지적한 점은 의미심장하다. 그는 윤석열 정권의 해법이 차기 정권에서 뒤집힐 수 있다는 점을 언급하면서 윤 정권과 거리를 두자고 말한다. "일정한 거리를 두면서 우리나라의 국익에 부합하는 범위에서 한국과 행동을 같이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일본 정부나 극우에 동조하는 방향으로 윤 정권이 강제징용 문제를 성공적으로 종식시킬 수 있는 방안은 많지 않다. 피해자 편에 서서 전범기업의 사과·배상을 촉구하는 원칙적 태도를 취하지 않고, 전범기업과 일본 정부 편에 서는 윤석열 정부의 앞날이 결코 밝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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