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워있으면 한국인이 죽어 간다” 드루 선교사 손녀의 기억
엘리자베스 브룩스 서면 인터뷰
“자신의 몸은 돌보지 않고
고통 속 한국인들 먼저 생각”
가문 유산 군산선교역사관에 기증

“제가 태어났을 때 할아버지는 이미 하나님 품에 계셨습니다. 하지만 그분의 사역은 지금도 우리 삶 속에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미 남장로교 파송 최초의 의료 선교사 알레산드로 다말 드루(유대모·1859~1926) 박사의 손녀 엘리자베스 드루 반스 브룩스(97)씨는 29일 국민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조부를 이같이 회고했다.
드루 선교사는 의사로서 복음과 삶을 분리하지 않았던 실천적 신앙인이었다. 그는 1894년 미 남장로교가 조선에 파송한 초기 선교사 가운데 한 명으로 같은 시기 호남 선교에 헌신한 윌리엄 전킨(전위렴·1865~1908) 선교사와 함께 전라도 지역 선교의 기초를 닦았다.
드루 선교사는 단순히 병을 치료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의료 혜택을 받기 어려운 조선 민중에게 서구 의학과 치료법을 전하며 의료를 통해 복음이 스며들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고자 했다. 특히 그는 사회적으로 소외된 계층에 집중해 진료하며 기독교 박애 정신을 실천한 인물로 평가된다. 군산에 정착한 1896년부터 약 2년간 4000여 명을 치료한 것으로 전해졌다.
드루 선교사의 조선에 대한 애정은 한국을 떠난 이후에도 이어졌다. 그는 1901년 건강 악화로 미국 캘리포니아로 돌아간 뒤에도 이민 한인들을 돌보며 조선과의 인연을 놓지 않았다. 브룩스씨는 “할머니와 어머니에게서 들은 조부의 모습은 늘 같았다”며 “자신의 몸은 돌보지 않고 고통 속에 있는 한국인들을 먼저 생각했던 분”이라고 말했다. 가족에게 전해진 이야기 가운데 가장 자주 반복된 말은 “‘내가 아프다고 누워 있으면 한국 사람들이 죽어간다’는 조부의 고백”이었다고 전했다.
드루 선교사가 남긴 신앙과 의료의 유산은 지금도 가문 안에서 이어지고 있다. 브룩스씨는 “한국에서 태어난 저의 모친인 루시 드루 반스도, 저도, 큰며느리도 간호사”라며 “제 큰손녀 둘도 모두 의료업 종사하고 있다. 모두 5대에 걸친 전통이다. 신앙과 의료의 유산에 감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손녀의 기억 속에서 드루 선교사는 한국 문화를 존중한 선교사이기도 했다. 드루 선교사는 한국의 작은 물품 하나까지 소중히 여기며 수집·보존했고, 한국 기독교 초기 문헌을 영국 케임브리지대에 기증했다. 한국 관련 유물은 미국 오클랜드 박물관에도 남아 있다. 또 가문이 보관해 온 전라도 교회사 문화유산은 연구를 거쳐 군산선교역사관에 기증됐다.
브룩스에게 한국은 마음의 고향이다. 그는 “어린 시절 할머니에게서 한국어 찬송 ‘예수 사랑하심을’을 배웠고, 한국에서 태어난 어머니는 영어보다 한국어가 더 익숙했다”며 “가족 모두가 한국을 그리워했다”고 말했다.
오늘의 그리스도인에게 전하고 싶은 말로 브룩스씨는 “세속화된 시대일수록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는 신앙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동규 기자 kky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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