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마리만 나타나도 전국에서 몰려오는 새, 드디어 만났습니다

이경호 2026. 5. 11.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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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 년간 만나지 못하던 새, 짬침에서 마침내 이어진 물꿩과의 인연

[이경호 대전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

실제로 탐조를 하다 보면 사람마다 이상하리만큼 인연이 닿지 않는 새가 하나쯤은 있다. 같은 장소를 가고, 같은 소식을 듣고, 같은 시간에 기다려도 끝내 만나지 못하는 새 말이다. 그래서 더 갈구하게 된다. 탐조인들은 그런 새들을 마음속 '위시리스트'에 넣어 둔다. 과학과 기록을 바탕으로 새를 보는 탐조인들조차 결국 운과 인연을 이야기하게 되는 역설이 생긴다. 수백 킬로미터를 달려가 새 한 마리 보지 못하고 돌아오면서도 사람들은 또 다시 먼 길을 떠난다. 탐조를 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인간은 참 이상하게도, 보이지 않는 것을 더 오래 사랑한다.

30여 년 동안 탐조를 하며 만나지 못한 새들은 많았지만, 그중에서도 유독 번번이 스쳐 지나간 새가 있었다. 바로 물꿩이었다. 소식을 듣고 서산으로 달려가고, 새만금을 찾고, 우포늪까지 찾아갔지만 결과는 늘 허탕이었다. 있었다고 했지만 찾지 못했고, 도착하면 이미 떠난 뒤였다. "아까까지 있었는데요"라는 문장은 탐조인들에게 가장 익숙하면서도 허망한 문장 가운데 하나다.
 부유식물 위의 물꿩의 모습
ⓒ 이경호
물꿩은 국내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새가 아니다. 멸종위기종은 아니지만 국내에서는 극히 드문 미조로 기록되어 왔다. 과거에는 우포늪이나 서산, 새만금 등 일부 지역에서 간헐적으로 관찰되는 정도였고, 소식 하나만으로도 전국의 탐조인들이 움직이곤 했다. 긴 꼬리를 늘어뜨린 독특한 번식깃과 연잎 위를 가볍게 걸어 다니는 모습은 한번 보면 쉽게 잊기 어렵다.
최근에는 기후와 서식 환경 변화 등의 영향으로 보이는 관찰 기록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이제는 여러 저수지와 습지에서 물꿩 소식이 들려온다. 하지만 그렇다고 쉽게 만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누군가는 우연히 산책하다 만나고, 누군가는 몇 해를 쫓아다녀도 끝내 보지 못한다. 탐조란 결국 경험과 정보, 그리고 설명되지 않는 우연이 함께 쌓여 만들어진다. 탐조인들은 흔히 이를 '조복'이라 부른다.
 습지위의 물꿩 겨울깃
ⓒ 이경호
그렇게 번번이 스쳐 지나가던 물꿩을 결국 베트남의 짬침국립공원에서 만나게 됐다. 그것도 어렵게 한 마리가 아니라, 놀랄 만큼 많은 개체였다. 너무 많아서 오히려 안 보고 지나갈 수 없을 정도였다.

습지 곳곳을 작은 배를 타고 이동하는 동안 물꿩은 계속 모습을 드러냈다. 연잎 위를 걸어 다니고, 작은 습지에서 먹이를 찾고, 배가 잠시 멈출 때마다 시야에 물꿩이 들어왔다. 국내에서는 한 마리 소식만으로 전국의 탐조인들이 움직이는 새인데, 짬침에서는 습지 풍경의 일부처럼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떠다니는 수초 위를 거의 가라앉지 않고 걸어 다니는 장면은 신기할 뿐이었다. 긴 발가락으로 부엽식물 위를 디디며 살아가는 모습은, 인간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자연에 적응한 생명의 감각을 보여주는 듯했다.

짬침에서는 또 다른 물꿩류도 함께 만날 수 있었다. 바로 Bronze-winged Jacana였다. 국내에는 공식 기록이 없는 종이라 아직 국명도 없다. 직역하면 '청동날개물꿩' 정도가 될 듯하다. 이 새 역시 연잎 위를 유유히 걸어 다니며 자연스럽게 모습을 드러냈다. 청동빛 날개를 가진 이 새는 물꿩과 마찬가지로 긴 발가락을 이용해 부엽식물 위를 자유롭게 이동했다.
 Bronze-winged Jacana 성조의 모습
ⓒ 이경호
특히 어린 새는 물꿩의 어린 새와 매우 비슷해 처음에는 물꿩 유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도감을 다시 확인한 뒤에야 Bronze-winged Jacana의 어린 새라는 것을 알게 됐다. 현장에서 새를 본다는 것은 단지 이름을 확인하는 일이 아니다. 익숙하다고 생각했던 감각이 끊임없이 수정되고, 자신이 알고 있던 기준이 흔들리는 과정에 가깝다.
 Bronze-winged Jacana 어린새
ⓒ 이경호
아무튼 짬침에서는 두 종의 특별한 물꿩류를 함께 만날 수 있었다. 그러나 더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 새들이 특별하게 보이지 않는 풍경이었다. 잘 보전된 습지 안에서 이 새들은 희귀종이 아니라 평범한 생태계의 구성원처럼 살아가고 있었다. 건강한 습지에서는 희귀한 새조차 일상의 일부가 된다.

어느 나라에서는 평생을 쫓아다녀야 겨우 만나는 새가, 다른 곳에서는 논과 습지의 흔한 풍경이 된다. 철새와 습지 생물들에게 국경은 의미가 없다. 인간만이 선을 긋고, 이름을 붙이고, 희귀함의 기준을 만들어낸다.

▲ 30년 못 만난 새를 베트남에서 만났습니다 #물꿩 #Bronze-winged Jacana 30년 동안 번번이 스쳐 지나가기만 했던 새, 물꿩. 서산과 새만금, 우포늪까지 찾아갔지만 늘 아까까지 있었다는 이야기만 들었습니다. 그런데 베트남 짬침국립공원에서는 상황이 완전히 달랐습니다. 배를 타고 습지를 이동할 때마다 연잎 위를 걷는 물꿩이 눈에 들어왔고, 심지어 Bronze-winged Jacana까지 함께 만날 수 있었습니다. 국내에서는 평생을 쫓아다녀야 겨우 만나는 새들이, 이곳에서는 습지의 평범한 풍경처럼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 새와 사람의 이야기 / 새랑새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물꿩은 그렇게 베트남의 습지에서 새로운 인연이 되었다.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새가 어느 날 갑자기 눈앞의 풍경이 되는 경험은 탐조를 계속하게 만드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새를 만난다는 것은 단지 목록 하나를 추가하는 일이 아니다. 그 새가 살아가는 공간과 생태계를 함께 이해하게 되는 과정이다.

30년 동안 만나지 못했던 새를 베트남에서 마주한 순간, 떠오른 것은 단순한 감상이 아니었다. 새가 귀한 것이 아니라, 그런 새들이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는 습지가 점점 귀해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짬침에서 본 것은 희귀한 새 몇 마리가 아니었다. 인간의 개발과 훼손 속에서도 아직은 생명들이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는 습지의 시간이었다. 인간은 늘 희귀종을 이야기하지만, 정작 사라지고 있는 것은 그 새들이 살아갈 평범한 터전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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