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 대신 자신감으로 옷장 채웠다"

조회 1,0952025. 4. 10.

이소연 씨는 패션 산업의 잔혹한 현실을 마주한 뒤, 7년째 새 옷을 사지 않고 있습니다. 중고 옷 교환과 수선을 통해 지속가능한 멋을 실천하고 있는데요. 자세한 내용은 정책주간지 'K-공감'을 확인하세요.

쇼핑중독에서 反쇼핑 활동가로
“옷 대신 자신감으로 옷장 채웠다”
7년째 새 옷을 사지 않고 있다는 이소연 씨가 10~30년 이상 오래된 자신의 옷들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 C영상미디어

‘옷을 사지 않기로 했습니다’ 저자 이소연 씨

“이 가죽재킷이요? 30년 전 엄마가 첫 월급을 받아 산 옷이라고 해요. 관리를 잘한 덕에 지금도 제가 가장 즐겨 입는 옷 중 하나죠.”

말하지 않았다면 몰랐을 것입니다. 요즘 같은 세상에 30년에 걸쳐 대물림된 옷이라니. 이소연 씨의 손에는 이 밖에도 ‘연식’이 만만찮은 옷이 여러 벌 들려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30년 전 가죽재킷과 함께 산 칠부바지, 13년 전 5000원을 주고 산 티셔츠, 10년 전 친구에게서 공짜로 얻은 롱스커트…. 그는 “옷을 오래 입으려면 하나하나 소중히 다루지 않을 수 없다”면서 옷에 담긴 저마다의 사연을 설명했습니다.

그런 그도 과거엔 누구 못지않은 ‘쇼퍼홀릭’이었습니다. 20대 내내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매일같이 옷을 사모았습니다. 기쁠 땐 기뻐서 슬플 땐 슬퍼서 ‘득템’하는 재미에 빠져 살았습니다. 옷 쇼핑중독에 제동이 걸린 건 미국에 머물던 시절 ‘1.5달러짜리 패딩’을 본 뒤부터입니다. ‘패딩이 고작 2000원이라고? 이게 어떻게 가능하지?’ 궁금증을 따라 간 곳엔 패션산업의 어두운 그림자가 있었습니다.
글로벌 패션기업은 개발도상국의 값싼 노동력을 착취하면서 무서운 속도로 옷을 찍어내기 시작했습니다. 한 해 동안 지구에서 생산되는 옷은 약 1000억 벌. 전 세계 인구 80억 명의 10배가 넘습니다. 무엇보다 환경에 끼치는 영향이 지대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전 세계 농약 사용량의 10%가 면화를 생산하는 데 쓰이고 산업 폐수 중 20%는 염색 과정에서 발생합니다. 글로벌 탄소배출량의 약 10%가 의류산업에서 나온다고 했습니다.

“값싼 옷 가격 뒤엔 패션산업의 잔혹한 현실이 있었어요. 합리적 소비라고 생각했던 게 전혀 합리적이지 않았던 거죠.” 더 이상 새 옷을 사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결심한 것이 7년째. 직접 패션산업을 취재한 뒤 2년 전 책도 펴냈습니다. 저서 ‘옷을 사지 않기로 했습니다’엔 패션업계가 왜 속도와 물량 경쟁에 골몰할 수밖에 없는지, 엄청난 의류 폐기물이 어떻게 환경을 파괴하는지, 패션 플랫폼이 왜 생산과 유통을 극단적으로 이용할 수밖에 없는지 등의 내용을 자세히 담았습니다.

패션이 개인의 정체성 표현의 수단이 된 시대. 옷을 사지 않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온라인 중고거래 플랫폼에서 콘텐츠 에디터로 일하고 있는 이 씨는 동료, 친구들과 ‘옷 교환 파티’를 자주 연다고 했습니다. 새 옷을 사지 않고도 ‘멋’을 포기하지 않는 그만의 노하우입니다. 이 씨는 “옷을 사지 말자는 것은 멋을 내지 말자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라고 말했습니다. “옷장 속을 깊이 들여다보면 옷을 물건 이상으로 존중하게 되고 나에 대해서도 똑바로 보게 된다”는 게 그가 옷을 사지 않은 뒤 얻은 깨달음입니다.

자료 유엔환경계획(UNEP)
미국에서 본 ‘1.5달러 패딩’이 새 옷 사지 않기의 시작이 됐다고.

패딩을 팔던 쇼핑몰까지 가는데 지하철 요금이 3달러였습니다. 그런데 패딩이 지하철 요금의 반값이었습니다. 라벨에는 ‘메이드 인 방글라데시’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아시아에서 생산된 옷이 미국까지 건너와 고작 1.5달러에 팔릴 수 있는 걸까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각종 자료를 찾아보고 관련 산업계 종사자들을 인터뷰하며 패션산업을 들여다보기 시작했습니다.

값싼 옷의 비밀은 뭐였나?

먼저 원단값이 매우 저렴해졌습니다. 과거 동물이나 식물에서 원단을 얻기 위해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했지만 지금은 농약과 살충제를 대량으로 살포해 면화 재배 등을 손쉽게 합니다. 다음은 값싼 노동력입니다. 내가 몇 번 입고 버릴 옷을 위해 방글라데시의 10대 소녀는 몇 백 원의 시급을 받고 하루 종일 재봉틀 앞에 앉아 있어야 합니다. 글로벌 패션기업들이 개발도상국의 값싼 노동력을 착취하고 있는 겁니다. 마지막으로 환경오염을 외면한 결과입니다. 대표적인 예로 의류 염색공장이 많은 동남아시아에서는 공장 인근의 강물 색깔만 봐도 그해 전 세계 패션의 유행 컬러를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원단 염색 과정에서 엄청난 폐수가 발생하는데 환경규제가 느슨한 저개발국가에서 옷을 만들면서 마땅히 치러야 할 비용을 자연에 전가합니다. 이처럼 기업이 부당하게 절감한 비용 덕에 우리는 갈수록 저렴한 가격표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사진 C영상미디어
옷을 많이 만드는 것 이상으로 많이 버리는 것도 문제라고.

전 세계 인구가 80억 명인데 지구에서 한 해 생산되는 옷의 양이 약 1000억 벌에 달합니다. 그런데 이 중 73%가 매립되거나 소각됩니다. 1초마다 약 2625㎏, 트럭 한 대 분량의 옷이 버려지는 셈입니다. 그중엔 팔리지 못한 새 옷도 무척 많습니다. 더 큰 문제는 버려진 옷 대부분이 개도국으로 넘겨진다는 사실입니다. 인도네시아, 캄보디아, 케냐 등 헌옷 수입국들은 산처럼 쌓인 ‘옷 무덤’에 마을 전체가 환경오염으로 시름합니다.

‘지속가능한 패션’이 화두다. 기업들이 달라질 가능성도 있지 않나?

영리 추구가 목적인 기업이 스스로 달라질 가능성은 없다고 봅니다. 기업이 가장 두려워하는 건 소비자입니다. 예를 들어 합성섬유를 쓰니까, 환경규제를 안 지키니까, 동물학대를 하니까 등의 이유를 들어 소비를 안하겠다고 하면 기업은 곧장 전략을 수정할 것입니다.

그럼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얘기해보자. 새 옷을 사지 않고도 멋있게 입을 수 있는 방법은 뭘까?

지인들과 주기적으로 옷을 교환합니다. 가장 애용하는 것은 ‘다시입다연구소’의 ‘21%파티’입니다. 옷장 속에 잠들어 있는 21%의 안 입는 옷을 바꿔 입자는 취지로 전국에서 계속 행사가 열립니다. 참가비 3000원을 내면 내 옷 다섯 벌을 다른 옷 다섯 벌과 바꿀 수 있습니다. 회사 송년회, 신년회 등에선 동료들과도 옷 교환을 합니다. 안 입을 옷을 바꿔 입으며 파티처럼 즐깁니다. 유행이 지났거나 안 맞는 옷은 수선해 입습니다.

옷장을 정리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옷장에 옷이 쌓여 있으면 무슨 옷이 있는지 알 수 없고 그러면 계속해서 옷을 사게 됩니다. 어떤 옷이 있는지 한눈에 파악하려면 계절이 지난 옷은 개어서 보관하고 자주 입는 옷은 되도록 모두 옷걸이에 걸어두는 게 좋습니다. 저 옷을 안 사면 잠을 못 잘 것 같다고? 당장 옷장을 열어보세요. 비슷한 옷이 분명히 있습니다.


이소연 씨가 알려주는 ‘옷 오래 입는 법'
옷을 지나치게 자주 세탁하는 것은 옷감을 손상시킵니다.
외출 후 통풍이 잘되는 곳에 걸어두기만 해도 먼지와 냄새를 제거할 수 있습니다.

세탁은 반드시 케어라벨에 표시된 대로 해야 합니다.
세탁기의 ‘빠른(쾌속)세탁’ 기능을 활용하면 낮은 온도에서 적은 회전수로 세탁해 옷감 손상을 줄일 수 있습니다.

무릎이 늘어난 바지는 젖은 수건을 올린 뒤 다리미로 눌러주면 쉽게 펴집니다.

니트는 접어서 수납장에 보관하고 옷걸이에 걸 땐 팔과 밑단을 옷걸이 위로 말아올려 옷감이 처지지 않도록 관리합니다.

같은 신발을 매일 신으면 금방 닳습니다. 최소 두 켤레 이상을 번갈아 신는 게 좋습니다. 신지 않는 신발은 신문지를 넣어둬 땀과 습기가 제거되도록 합니다.

하얀색 티셔츠에 얼룩이 묻었을 땐베이킹소다와 식초를 섞어 살살 문지르면 쉽게 제거할 수 있습니다. 땀을 많이 흘린 날엔 물에 담가두면 누렇게 변하는 것을 막을 수 있고 햇볕에 자연건조하면 흰색을 오래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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