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치된 폐가였는데 이젠 50만명이 넘게 찾는다

이돈삼 2024. 9. 16.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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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합문화공간 나주 '39-17마중' 남우진·기애자 공동대표

[이돈삼 기자]

 나주 '39-17마중' 목서원. 오래된 은목서와 어우러진 옛집이다.
ⓒ 이돈삼
오랫동안 방치된 폐가였다. 인적도 끊긴 집이었다. 지나는 주민들이 눈살을 찌푸린 건 당연지사.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명소가 됐다. 연간 50만 명 넘게 찾는다. 지역의 핫플레이스(hot place)다.

행정기관이 만든 곳이 아니다. 돈 많은 기업이 투자한 것도 아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개인이 가꿨다. 주인공은 남우진·기애자씨 부부다.

고택을 활용한 복합문화공간 나주 '39-17마중' 이야기다. 1939년에 지어진 집을 2017년에 마중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옛집의 정취를 고스란히 살린 현대식 문화공간이다. 전라남도 나주시 교동(校洞)에 있다. 지명 그대로 나주향교 옆에 자리하고 있다.

홀리듯 끌린 고택
 남우진 39-17마중 공동대표. 지금의 마중을 만든 당사자다.
ⓒ 이돈삼
 나주 39-17마중의 여름 풍경. 고즈넉한 멋과 낭만이 흐르고 있다.
ⓒ 이돈삼
"절실함,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었죠. 4000평 넘는 공간의 관리비와 직원 인건비, 거기에다 금융비용까지 다 제 몫이었습니다. 금리도 높잖아요. 살아남으려면 고민해야 했습니다. 늘 새로운 기획을 하고, 도전도 하고. 방법이 없었어요. 저희 부부한테는 여기가 치열한 삶의 현장입니다. 생존을 위한…"
남우진 대표의 말이다. 폐가를 지금의 공간으로 변신시킨 비결을 물은 데 대한 답변이었다. 날마다 고민하고, 무엇인가를 만들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었다는 말에 더 이상 질문을 잇지 못했다.
 난파고택의 옛 모습. 39-17마중으로 변신되기 전 모습이다.
ⓒ 남우진
 개보수 과정을 거친 난파고택. 나주 '39-17 마중'을 대표하는 숙박시설 가운데 하나다.
ⓒ 이돈삼
남씨 부부가 전라남도 나주와 인연을 맺은 건 2015년이다. 그때까지 이들은 전라북도 전주에 살고 있었다. 직업은 기업 컨설팅. 속된 표현으로 남의 회사 잘 되게 조언해 주는 일을 했다. 이제는 '남의 일' 아닌 '내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던 터였다.

기회는 우연히 왔다. 그해 봄 어느 날 지인을 따라 나주를 찾았다. 나주곰탕 한 그릇 먹고, 방치된 집과 마주했다. 묘하게 끌렸다. 점점 빠져들었다. 무엇엔가 홀린 것 같았다.

"예사롭지 않게 보였어요. 보존 가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방치돼 있었지만, 오래된 나무가 많고 특색도 있었어요. 돌담을 사이에 두고 보이는 나주향교도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문화공간을 만들면 멋지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 대표의 말이다.

나주의 다양한 기반시설도 도전정신을 부추겼다. 오랜 역사와 문화를 지닌 나주도 매력적이었다. 교통편도 괜찮았다. 전주보다 더 조건이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자신의 경험 부족이 걸림돌이었다.
 나주 39-17마중의 여름 풍경. 옛집과 나무가 한데 어우러져 멋스럽다.
ⓒ 이돈삼
"제가 그런 일을 해봤다면, 사업가 마인드를 지녔다면 나주에 안 왔을지 모르겠어요. 아무것도 몰랐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그냥 저질렀어요. 경험이 없었기에, 다른 눈으로 볼 수 있었고요. 이런 걸 운명이라 하는가 봅니다."

남 대표의 말이다.

목표는 '옛것을 살리되 촌스럽지 않게'였다. 세대를 아우르며 모두가 좋아하는 공간, 힐링을 주는 공간, 시간이 지날수록 빛나고 가치가 더해지는 공간을 만들려고 노력했다. 흙돌담은 살리고, 벽돌 담장은 모두 없앤 이유다.

기존 쌀 창고는 한옥카페로 복원했다. 정원 가운데에 고택을 두고, 근대가옥과 금목서·은목서도 어우러지도록 했다. 고즈넉한 나주향교와 흙돌담을 돋보이게 신경도 썼다. 풀 한포기, 꽃 한송이, 조명등 하나까지 부부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이 과정에서 행정기관의 지원이나 간섭은 일절 받지 않았다. 지원을 받았다면, 원도심에서 가끔 보이는 시설물이나 카페 정도 되지 않았을까?

전남관광 플랫폼 역할 하고파
 나주 39-17마중 풍경. 고즈넉한 옛집과 버무려진 현대식 건물. 카페로 쓰이고 있다.
ⓒ 이돈삼
 나주 39-17마중 남우진·기애자 공동대표. 지금의 마중을 만든 당사자다.
ⓒ 이돈삼
"무작정 어디론가 가고 싶을 때, 마음이 답답해 바람이라도 쐬고 싶을 때, 혼자서 차 한잔 마시며 멍- 때리고 싶을 때, 좋은 사람과 잠깐 드라이브하고 싶을 때, 그럴 때 찾고 싶은 편안한 공간이면 좋겠습니다."

기애자 대표의 말이다.

방문객은 지역과 외지를 가리지 않는다. 가족, 친구, 연인이 많이 찾는다. 혁신도시 공공기관 방문객은 필수 방문코스다. 각급 기관·단체 회의와 워크숍 공간으로도 쓰인다. 선진 사례를 배우겠다고 벤치마킹 오는 사람도 많다. 미술작품 전시, 공연도 한다. 말 그대로 복합문화공간이다.

"나주스러움, 나주다움을 담으려고 노력해요. 우리만의 콘텐츠를 만들려고요. 나주배로 음료와 다과를 개발하고 브랜딩한 연유입니다. 나주시 관광상품 공모전에서 대상 받았어요. 체험을 포함한 6차산업으로, 관광 융복합 플랫폼을 만들었습니다. 고택 목서원은 전라남도 유니크베뉴에, 39-17마중은 전라남도 민간정원에 지정됐습니다."

기 대표의 말이다. 차와 디저트는 방문객을 대상으로 판다. 입장료 대신이다. 나주배로 만든 주스, 스무디, 양갱, 스콘, 비스킷 등도 있다.
 나주 39-17마중이 선보인 나주배양갱. 나주관광 기념품으로 개발해 판매하고 있다.
ⓒ 이돈삼
 나주 39-17마중의 해질 무렵 풍경. 흙돌담 너머 나주향교가 배경으로 자리하고 있다.
ⓒ 이돈삼
홍보는 입소문 마케팅을 활용했다. 나주하면 곰탕과 홍어만 아는 사람을 불러 하룻밤 묵게 했다. 조금씩 입소문이 나더니 유튜버가 찾아왔다. 신문과 방송기자가 찾고, 텔레비전 예능팀과 드라마 촬영팀도 찾고 있다.

요즘 나주를 찾는 발길이 예년보다 부쩍 늘었다. 곰탕거리와 금성관에 머물던 방문객 동선도 39-17마중과 나주향교로 이어졌다. 금성산 권역까지 확대됐다. 원도심에도 활력이 생겨났다. 39-17마중 덕분이다.

"전남관광 플랫폼 역할을 하려고요. 저희 같은 로컬기업이 성장할 수 있도록 도울 겁니다. 배 상품 매출의 1%를 나주시에 기부하면서 선한기업으로 당당히 서고 싶습니다. 나주시도 이제 부담없이 숟가락 얹고, 함께하길 바랍니다. 나주에 있고, 나주에 도움되는 공간이니까요. 설사 저희가 여기를 떠나더라도, 공간은 나주에 남는 거 아닌가요?"

남 대표의 말에서 앞날에 대한 자신감이 묻어난다.
 39-17마중의 도시재생 현장을 보려는 사람들. 남우진 공동대표가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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