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우승 못하니까 WBC 7월에 열자고? KBO·구단들 "말 같지도 않은 소리" "지긋지긋한 미국 중심주의"
-미국은 이번에도 중도 이탈·제한 등판…전력 투구 의지 없어
-KBO "현실적으로 불가능"…구단들 "S급 선수 못 보낸다"

[더게이트]
다음 WBC는 7월에 하자고? 메이저리그(MLB)와 미국 야구계에서 다음번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개최 시기를 여름으로 옮겨야 한다는 주장이 진지하게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KBO와 구단들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펄쩍 뛰는 분위기다.
이전까지만 해도 WBC 7월 개최론은 일부 선수나 언론에서 흘러나오는 아이디어 수준이었다. 그런데 대회가 끝나자마자 롭 맨프레드 MLB 커미셔너가 직접 입을 열었다. 19일(한국시간) AP통신에 따르면 맨프레드 커미셔너는 "다음 WBC는 2029년 또는 2030년 개최할 예정"이라면서 "WBC를 시즌 중반 토너먼트로 치르는 방안을 논의해 왔고, 지금이 기회"라고 밝혔다. 커미셔너 입에서 나온 이상, 더는 농담으로 넘길 수 없게 됐다.
발단은 이번 대회 미국 대표팀 에이스 타릭 스쿠발(디트로이트 타이거스)의 발언이었다. 아메리칸리그 사이영상을 두 차례 거머쥔 스쿠발은 조별리그 영국전 단 한 경기만 던지고 스프링 트레이닝으로 복귀했다. 정규시즌 개막 준비와 WBC 일정이 겹치자 소속팀을 택한 것이다. 비판 여론이 부담됐는지, 스쿠발은 언론 인터뷰에서 "대회 시기가 바뀌어야 한다.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선발 투수 전체에 힘든 일정"이라고 주장했다.

개최 시기가 문제인가, 미국 선수들의 태도가 문제인가
그런데 여기서 잠깐, 따져볼 게 있다. 미국에선 3월 개최시기가 문제라며 전력을 다하지 못했다고 하는데, 과연 다른 나라 선수들은 사정이 달랐나.
스쿠발을 시작으로 라이언 야브로, 마이클 와카, 클레이 홈즈, 매튜 보이드까지, 이번 대회에서 스프링 트레이닝 복귀를 이유로 중도 이탈한 선수들은 대부분 미국 대표팀에 몰려 있었다. 마무리 메이슨 밀러(샌디에이고 파드리스)는 대표팀과 소속 구단의 합의 아래 세이브 상황에서만 등판했다. 시즌 준비 과정의 일환으로 대회에 임한 셈이다.
반면 도미니카공화국, 베네수엘라 등 중남미와 한국, 일본 선수들은 달랐다. 리그 개막을 코앞에 두고도 대표팀 유니폼을 끝까지 입었다. 다소 무리다 싶은 등판 일정과 출전도 마다하지 않았다. 몸값이 1조원에 달하는 후안 소토, 블라디미르 게레로 주니어는 한 점을 위해 슬라이딩하고 다이빙하며 몸을 사리지 않았다. 그 결과, 우승 트로피는 베네수엘라가 가져갔다.
그러자 미국 야구계에서 "3월 경기가 문제"라는 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한 야구인은 "미국은 이번 대회에서도 자기들에게 유리하게 대진 일정과 대회 규정을 정해서 치르지 않았나. 그래놓고도 우승을 못 했는데 또 더욱더 자기들에게 유리하게 하겠다는 건가. 그런다고 자기들이 우승할 수 있을 것 같나"라고 꼬집었다.
또 다른 야구인은 "현재 대회 세팅 자체가 미국 외 국가들에는 정말 불리하게 돼 있다. 한국 선수들의 경우 촉박한 일정 속에 8강전을 치르러 미국으로 가서 시차 적응도 제대로 안 된 상태로 경기를 치르지 않았나. 선수들이 거의 비몽사몽 속에 경기했다고 하더라. 미국은 지금도 바로 스프링 트레이닝 훈련장 옆에서 대회를 치르는 환경 아닌가. 뭘 더 얼마나 유리하게 만들겠다는 건가. 미국인들 정말 지긋지긋하다"고 비판했다.

KBO·구단 "실행될 가능성 없다"
한국 야구계의 반응은 대동소이하다. KBO 고위 관계자는 "7월 개최에 대해서는 아직 전혀 공식적인 채널을 통해 들은 바가 없다"면서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이야기다. KBO리그가 한창 진행 중인 상황에서 WBC를 7월에 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이야기"라고 잘라 말했다. "일본 야구계에서도 마찬가지 생각일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구단들의 반발은 더 거세다. 한 프로구단 관계자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면서 "7월에 WBC를 한다면 S급 선수를 대표팀에 보내기는 더 어려울 것 같다. 스타급 선수들 빠진 팀으로 경쟁력 있는 대회를 치를 수 있겠나"라고 반문했다. 다른 구단 관계자도 "시즌이 한창 진행 중인데 WBC 일정에 맞춰 리그를 중단하고 선수들을 차출해 미국에 보내는 게 가능한 이야기인가. 실행될 가능성이 없다고 본다"고 선을 그었다.
또 다른 KBO 관계자는 "미국이 많은 돈을 투자하고 주도해서 진행하는 대회니까 대회 시스템이 미국 중심으로 돼 있는 건 어느 정도 감수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면서도 "하지만 시기를 7월에 하자는 건 정말 너무 심한 소리"라고 했다.
지방구단 관계자는 "지금도 WBC를 너무 자주 여는 느낌이 있다"고 불만을 토로한 뒤 "7월에 WBC를 하자는 미국쪽 사람들은 KBO나 NPB는 전혀 안중에도 없는 것 같다"고 일갈했다. 7월은 한국과 일본, 타이완 리그 모두가 순위 싸움으로 가장 뜨겁게 달아오르는 시기다. 이때 리그를 멈추고 미국으로 날아가 공을 던지라는 요구는 아시아 야구를 MLB의 하위리그나 들러리고 취급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대회 시기를 바꾼다고 미국 선수들이 대표팀을 소속팀보다 먼저 생각하게 될까. 그럴 리 없다. 7월이 됐든 3월이 됐든, 미국이 WBC를 대하는 방식이 바뀌지 않는 한 이 논쟁은 반복될 것이다. 베네수엘라가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린 이 대회가 진정한 세계 야구 축제가 되려면, 대회 일정을 바꿀 게 아니라 이 대회를 대하는 미국 선수들의 마음가짐을 바꾸는 게 빠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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