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석의 '2국가론' 들은 고3의 평가, 뼈아프다
[서부원 기자]
▲ 임종석 2018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장이 19일 오후 광주 서구 김대중컨벤션센터 다목적홀에서 열린 '9·19 평양공동선언 6주년 기념식'에서 발언하고 있다. |
ⓒ 연합뉴스 |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그의 발언에 대한 한 아이의 외마디 총평이다. 그는 임종석의 주장에 또래 아이들 대다수가 동의할 거라 전제했다. "통일을 꼭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내려놓자"는 것과 "현 시점에서 통일 논의는 비현실적이며 통일이 무조건 좋다는 보장도 없다"는 주장은 더하고 뺄 것 하나 없이 요즘 아이들의 인식과 같다고 했다.
통일을 당위로 여기거나 대한민국의 발전에 필수적 요소라고 믿는 아이는 단 한 명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솔직하게 말해서, 통일에 아무런 관심이 없다는 거다. 통일은 역사 교과서의 맨 뒷부분에 부록처럼 소개되는 내용이고, 최근 들어선 수능에서 통일 관련 문항도 잘 출제되지 않는 분위기라고 덧붙였다.
통일에 관심 없다는 아이들... 몇 해 만에 바뀐 분위기
몇 해 전 1년 내내 전교생을 대상으로 통일교육을 실시한 적이 있다. 통일 관련 도서를 읽히고, 공모전을 하고, 교복 대신 입고 다닐 수 있도록 T-셔츠도 제작했다. 통일부에 요청해 북한 주민들의 생활을 담은 영화도 함께 관람했다. '도둑처럼 찾아오는' 통일이 아니라, 서로 알아가며 시나브로 가까워지는 게 유일한 길이라 여겨서다.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해 북한 주민들 앞에서 연설하고, 백두산 천지에서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손 맞잡았던 순간의 감동을 이어가려는 프로젝트였다. 아이들도 가슴 뭉클해 했고, 머지않아 통일이 될지도 모른다는 허황한 설렘마저 갖게 했다. 북한과 교류하는 모습을 TV 화면으로 보는 것만큼 더 좋은 통일교육이란 없다.
그즈음 아이들의 인접 국가별 선호도를 부러 조사한 적도 있다. 결과는 예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중국이 싫다는 대답이 압도적으로 많았고, 그다음은 일본, 미국, 러시아의 순이었다. 놀라웠던 건, 북한을 꼽는 아이가 없었다는 점이다. 북한을 '인접 국가'로 여기지 않고, 우리의 나머지 반쪽으로 여기는 듯했다. 적어도 그땐 그랬다.
불과 몇 해 만에 상황이 돌변했다. 중국을 첫손에 꼽는 건 변함이 없지만, 러시아가 뒤를 이었고, 전에 없던 북한이 일본의 바로 뒤에 자리했다. 러시아에 대한 불신은 우크라이나 전쟁에 기인한 것이고, 북한이 싫다는 건 모든 게 통제된 독재 국가라는 기존의 편견에다 연이은 무력 도발에 대한 반감이 작용한 결과다.
윤석열 정부 들어 남북 관계가 최악으로 치달으면서 북한에 대한 아이들의 인식도 롤러코스터를 탄 셈이다. 몇 해 전 통일교육을 실시했을 때, 아이들의 북한에 대한 호기심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당시 통일 관련 책을 돌려 읽고 북한 주민의 생활을 담은 영화를 보면서, 딱히 답해줄 수 없는 아이들의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곤 했다.
북한에도 대학 서열이 있을까. 북한 아이들도 수학여행을 떠날까. 북한에도 '수포자'가 있을까. 북한에도 인터넷 게임에 중독된 아이들이 있을까. 북한에도 로또 같은 게 있을까. 북한 사람들도 커피나 에너지 음료를 마실까. 북한 아이들은 체육대회 때 어떤 종목을 즐길까. 지금도 회상하면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가는 질문들이다.
이제 아이들은 북한에 대한 기대를 접고 관심마저 꺼버린 모양새다. 그저 '쓰레기 풍선' 같은 것만 날아오지 않으면 더 바랄 게 없겠다는 정도로 기대치가 낮아졌다. 휴전선 철책에 근무하는 군인들은 대형 스피커를 마주 세운 채 서로를 향해 악다구니를 쓰는 졸렬한 짓만 사라져도 좋겠다고 하소연하는 지경이다.
임종석 말에 아이가 '반은 틀렸다'고 한 까닭
그렇다면, 임종석의 발언을 두고 아이가 '반은 틀렸다'고 한 까닭은 뭘까. '이 모양 이 꼴'이 되도록 나 몰라라 해놓고선 현실 뒤에 숨는 게 지질해 보인다고 직격했다. 대놓고 흡수 통일 운운하는 윤석열 정부에서 남북 관계가 경색되리라는 건 불 보듯 환했는데, 정부의 퇴행적 발상에 맞선 진보 세력의 대안이 고작 '통일하지 말자'는 거냐고 비웃었다.
곧, 진단은 맞은데, 처방이 틀렸다는 뜻이다. 그는 북한에 대한 혐오가 확산되고 통일이 요원해져만 가는 원인을 '중국의 사례'에서 찾았다. 요즘 아이들은 예외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중국을 '극혐'한다. 10대뿐 아니라 20~30대에서도 열에 예닐곱일 정도로 압도적이다.
과거엔 공공의식이 부족하다거나, 시끄럽다, 더럽다, 상대국의 문화를 무시한다, '돈지랄'한다 등의 이유를 댔지만, 지금은 '그냥 싫다'를 넘어 중국이라는 말만 들어도 기분 나쁘다고 말하는 경우마저 있다. 근거 없는 이야기는 아닐 테지만, 유독 중국에 가혹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기실 거론된 행태들은 국가의 차이라기보다 개인별로 '케바케'인 경우가 훨씬 많다.
"중국이 요즘 아이들에게 '공공의 적'으로 낙인찍힌 이유는 거의 매일이다시피 TV나 인터넷 포털, 유튜브 등을 통해 접하게 되는 악의적인 이미지 때문이에요."
아이들 사이에서 중국은 '짱깨'로 통한다고 했다. 중국도, 중국인도, 중국 음식도, 중국 제품도 죄다 그렇게 불린다는 거다. 이제 일본인을 향한 '쪽발이'라는 조롱은 거의 사라졌지만, '짱깨'라는 혐오 표현은 여전히 기세등등하다.
그는 최근 중국과 관련된 뉴스 중에 호의적인 내용의 기사가 있었는지 반문하면서, 중국에 대한 극단적인 혐오는 유튜브와 언론 등에서 부추긴 결과라고 단언했다. 14억 인구의 일상에서 세계적으로 귀감이 될 만한 미담 사례 하나 없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말을 이었다. 나아가 중국에 대한 '색안경'이 우리 정부와 언론의 '빅 픽처'일지도 모른다는 추측까지 덧붙였다.
"시진핑과 '소분홍(少分紅)'이 14억 중국인들을 대표할 수는 없잖아요. 마찬가지로 김정은을 통해 북한 사회 전체를 이해하는 건 위험하지 않을까요?"
그는 '중국의 일베'로 불리는 '소분홍'의 행태가 중국 혐오의 새로운 진원지가 되고 있다면서도, 이를 마구잡이로 퍼 나르는 일부 유튜버와 기사화하는 언론의 책임이 크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우리나라의 일베처럼 '소분홍' 역시 애국주의에 경도된 중국 내 극소수 청년들의 망동일 뿐이라는 걸 유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작 화살은 그들을 활용해 정치적 이익을 도모하는 극우 세력을 향해야 한다는 거다.
임종석은 이참에 헌법을 개정하고, 국가보안법과 통일부도 폐지하자는 '화끈한' 대안을 제시했지만, 고등학생인 그는 북한 주민들의 삶을 진솔하게 전해주는 뉴스가 늘었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바람을 전했다. '쓰레기 풍선'과 미사일, 경제 제재와 탈북자, 핵무장과 권력 투쟁 이런 뉴스 말고 북한의 문화 공연, 스포츠 경기, 자연경관 등을 자주 접할 수 있기를 바랐다.
임종석의 대안보다 제자의 바람에 귀가 더 솔깃해진 건, 최근의 낭보 탓이다. '2024 국제축구연맹(FIFA) 콜롬비아 U-20 여자 월드컵'에서 북한의 여자 축구대표팀이 우승 후보 0순위였던 미국을 꺾고 결승에 올랐다는 뉴스였다. 신문의 스포츠면 한 귀퉁이에 단신 기사로 실린 걸 봤다.
그도 기사를 봤던지, 전의를 내보이며 건넨 말에 그의 진심이 가득 담겨 있었다. 북한의 여자 축구대표팀 결승 진출 소식이 우리나라 신문의 1면에 실리는 날, 다시 통일의 불씨가 되살아날 거라고 했다. 과연 그런 날이 오긴 올까.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계엄은 정말 망상일까? 아무도 몰랐던 '청와대 보고서'
- 체코 언론이 김건희 여사 보도하면서 사라진 단어 '사기꾼' '거짓말'
- 자식 잃은 부모보다, 20억 물려주는 부모 걱정하는 세상
- "도이치 2심 판결문에서 김건희 87회 언급, 그 의미는..."
- "극우 논리에 따르면 김건희 여사도 간첩"
- 나라 곳간이 위태롭다, 윤석열 대통령이 봐야 할 드라마
- '바가지요금' 안 쓰고 '진짜 제주'를 즐기는 법
- [손병관의 뉴스프레소] 명태균이 김영선에게 빌려줬다는 6000만 원, 차용증 있을까?
- 윤석열 정부의 내밀한 정보, 자꾸 샌다
- 황색 벽돌에 새겨진 제국의 상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