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죽였던 野 잠룡 기지개… 李 1심 선고에 향배 달렸다
경기도정 기반 활동 폭 넓히는 김동연
지난달 광복절 특사로 복권된 김경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일극체제’ 아래서 숨죽이던 야권의 잠재적 대선 주자들이 추석을 전후로 기지개를 켜고 있다. 김부겸 전 국무총리는 오랜 정치 경륜을 바탕으로 주요 현안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고, 김동연 경기지사는 도정을 기반 삼아 활동 폭을 넓히는 중이다. 지난달 광복절 특사로 복권된 김경수 전 경남지사도 귀국하는 대로 ‘친노(친노무현)·친문(친문재인) 적자’라는 정통성을 앞세워 정치적 공간 확보를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야권 잠룡 가운데 최근 가장 활발한 정치 행보를 보이는 건 김 전 총리다. 4·10 총선 이후 잠행해 온 그는 야당 원로들로부터 “정치가 엉망인데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된다”는 고언을 듣고 활동을 재개했다.
김 전 총리는 언론 인터뷰와 대학 강연 등을 통해 여야 모두에 쓴소리를 던지고 있다. 그는 지난달 26일 CBS라디오에 나와 민주당에 대해 “언제까지 강성 지지층만 바라보고 대한민국 공동체를 책임지겠다고 할 것인가”라고 날을 세웠다. 이 대표를 향해서도 “정부·여당에 도와줄 건 도와주겠다고 하는 유연한 리더십을 보여야 한다”고 주문했다. 김 전 총리 측 관계자는 20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윤석열 대통령이든, 이재명 대표든, 여당이든, 야당이든 잘못된 것에 목소리를 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전 총리는 금융투자소득세 등 세제 개편 논의가 정쟁화되는 상황에도 우려를 표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에는 서울 광화문에 새 사무실도 마련했다. 싱크탱크 격인 생활정치연구소를 활성화하려는 목적에서다. 김 전 총리 측은 그간 강조해 온 ‘공정과 상생’의 의미를 드러낼 수 있도록 연구소 명칭 변경도 고민 중이다. 김 전 총리는 외곽 조직인 새희망포럼을 통해서도 노무현·문재인 전 대통령을 계승하는 정책 비전을 다듬어 나갈 계획이다. 김 전 총리 측은 “당장 대권과 연결 짓는 건 무리한 해석”이라면서도 “국민이 김 전 총리의 지적에 동의해 지지를 보내준다면 그때 가서 고민해 보겠다”며 여지를 남겼다.
김 지사는 경기도정을 무기로 정치 영역 확장을 꾀하는 모습이다. 친문·친노 및 비명(비이재명)계 인사들을 적극적으로 끌어안고 있다. 경기도가 ‘친문·비명 집결지’가 됐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
친문 핵심 전해철 전 민주당 의원이 지난달 26일 경기도 정책 자문기구인 도정자문위원장에 위촉됐다. 전 전 의원은 위촉장을 받은 뒤 “김 지사가 제안한 도정자문위원장직을 수락하고 함께 일하게 된 정치적 의미에 대해 전혀 부정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김 지사의 대권 도전 여정에서 역할을 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김 지사는 앞서 지난 7월 강민석 전 문재인정부 청와대 대변인을 경기도 대변인으로 임명했다. 김남수 정무수석, 신봉훈 정책수석, 안정곤 비서실장도 친노·친문 인사로 꼽힌다. 민주당 내 동교동(DJ)계 세력들과의 접점도 넓혀가는 중이다.
기획재정부 장관 출신인 김 지사는 ‘전 국민 25만원 지원금’ 등 현안에 대해서도 자기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는 최근 한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전 국민 25만원 지원법을 두고 “모든 국민에게 나눠주는 것보다 어려운 사람에게 두텁고 촘촘하게 더 지원해 주는 것이 맞는다고 생각한다. (필요한 재원) 13조원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돈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김 지사 측 관계자는 “이 대표와 각을 세우는 건 아니다”면서도 “경쟁력 있는 (대선) 후보들이 여럿 나올수록 좋다는 당내 의견이 많다”고 말했다.
김 전 지사는 아직 향후 정치 행보에 대한 뚜렷한 청사진은 제시하지 않고 있다. 독일 베를린에 체류 중인 그는 지역균형발전과 기후환경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 ‘공부’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오는 11월 말 또는 12월 초 귀국이 예정돼 있다.
김 전 지사 측 관계자는 “정치 활동에 대해 아직 상의한 바 없다”며 “두 달 넘게 시간이 남은 만큼 1년여의 공부를 마무리하면서 고민해 볼 것”이라고 말했다. 김 전 지사와 가까운 한 민주당 의원은 “귀국한 뒤 이래저래 사람도 만나고, 공부한 것을 얘기하면서 어떤 역할을 할지 모색하지 않겠느냐”며 “(정치 활동 재개는) 자신의 판단과 여러 가지 상황이 맞아떨어져야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 전 지사가 본격적으로 일선 정치에 복귀하면 정계에 미칠 파급력이 상당할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정치권 관측이다.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관이자 ‘친노·친문 적자’로서 갖는 정통성과 상징성 때문이다. 친문계가 강하게 결집할 경우 김 전 지사가 구심점이 될 가능성도 있다.
다만 실제적인 영향력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대법원 확정판결에 따른 흠결을 극복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김 전 지사는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으로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2022년 12월 특별사면됐고, 지난달 복권됐다.
야권 잠룡들의 행보는 이 대표 사법리스크의 결과에 좌우될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이르면 다음 달 이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과 위증교사 재판 1심 선고가 나올 수 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차기 대권 주자들의 행보는 이 대표의 사법리스크가 현실화될 때를 대비한 움직임에 가깝다”며 “10~11월 사법리스트가 어떤 방향으로 전개되느냐에 따라 상황이 달라질 것”이라고 관측했다.
박장군 기자 genera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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