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마는 괜찮아” 미국 유학 10대, 그렇게 마약에 빠졌다

김용현,백재연 2023. 3. 13.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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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고등 켜진 10대 마약>
①너무 가까운 위험한 유혹
10대 마약사범 10년 전 비해 12배 급증


20대 중반인 A씨가 마약을 처음 접한 건 17번째 생일날이었다. 미국에서 유학 생활을 하던 그에게 친한 형이 불쑥 대마초를 건넸다. 옆에 있던 다른 친구들이 하나둘씩 대마를 피우자 A씨도 호기심이 일었다. ‘한 번쯤은 괜찮겠지’ 하면서 이성의 끈을 놓고 손을 내밀었다. 그 순간 이후 평탄했던 그의 삶은 점차 마약에 잠식당해 갔다. A씨는 13일 “부모님 돈까지 훔쳐가며 마약을 했다. 당시 나는 마약을 위해 살고, 살기 위해 마약을 했다”고 후회했다.

마약에 빠져드는 10대들이 급증하고 있다. 마약 투약뿐 아니라 마약을 직접 운반하다 적발된 10대도 등장했다. 최근엔 14세 여중생이 집에서 필로폰을 투약했다가 모친의 신고로 경찰에 붙잡히기도 했다. 국민일보가 최근 만난 마약중독자 8명 중 2명도 10대 때부터 마약에 손을 댔다. 이들은 “(10대 마약 문제가) 이제야 수면 위로 올라온 것”이라고 한 목소리로 말했다. 20대에 마약사범으로 붙잡히는 이들 상당수가 이미 10대 때부터 마약에 노출된 상태였다는 얘기다.

이들인 공통적으로 처음 손댄 마약은 대마였다. 미국, 캐나다 등 몇몇 국가의 일부 지역은 대마가 합법이다. 이 점이 이들에겐 ‘대마는 마약이 아니다’는 자기합리화의 근거가 됐다. 하지만 대마는 정신적 중독이 강한 약물이다. 대마로 시작한 이들은 결국 더 강한 마약으로 옮겨갔다. 대마가 마약에 대한 심리적 장벽을 낮추는 ‘관문 마약(Gateway drug)’ 노릇을 한 것이다. 17세 때 대마를 접한 20대 B씨도 “나도 이렇게 될 줄 몰랐다. 가랑비에 옷 젖듯 서서히 마약이 삶에 침투했다”고 토로했다.

A씨 역시 필로폰 등 다른 마약을 할 기회가 생기면 마다하지 않았다.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기도 했다. 성인이 돼 한국으로 돌아온 뒤 그가 가장 먼저 달려간 곳은 서울 용산구 이태원 클럽가였다고 한다. 일부러 ‘대마의 날’(4월 20일)에 클럽 주변을 전전하며 마약을 구했다. 마약 거래의 주요 루트가 텔레그램 등 비대면 방식으로 바뀐 뒤에는 거의 눈만 뜨면 마약을 찾을 정도였다.

민간 중독재활센터 인천다르크의 최진묵 센터장은 “약물 중독의 개념이 육체적 금단 현상에만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는데 심리적 금단이 더 큰 위험”이라며 “(마약 중독자들은) ‘하고 싶다’고 스스로 생각하게끔 뇌가 자극에 중독돼 있다. 자극에 무뎌져 더 많은 양의 마약을 하다가 혼자서는 절대 회복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고 설명했다.

10대 마약 사범 검거는 해마다 늘어나고 있지만, 여전히 꼬리만 드러나 있다는 분석이 많다. 대검찰청의 ‘마약 동향’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한 해 동안 검거된 10대 마약류 사범은 모두 481명으로, 10년 전인 2012년(38명)보다 12.6배나 늘었다. 15~18세가 291명으로 집중됐는데, 이는 불과 2년 전인 2020년보다 54%(160명) 증가한 것이다.

박성수 세명대 경찰행정학과 교수가 2019년 발표한 ‘마약류 범죄의 암수율(드러나지 않은 범죄비율) 측정에 관한 질적 연구’를 보면 국내 마약류 범죄 암수율은 28.67배로 예측됐다. 이 계산식에 따르면 지난해 10대 마약 사용자는 1만3742명가량으로 추정할 수 있다. 다른 마약 전문가는 “28.67배는 최소치일 뿐 100배가 넘는다고 추정도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최 센터장은 “실상은 엄청나게 더 많은데도 드러나지 않는 거다. 부모가 자녀의 마약 투약 사실을 알게 됐어도 숨기는 경우도 많다”고 전했다.

마약에 노출된 10대의 공통점은 마약에 빠진 20대들과 어울리게 된다는 점이다. 이들 20대 역시 10대 때부터 마약을 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마약에 대한 경각심은 더욱 무뎌진다. 마약퇴치운동본부 자문위원으로 활동하는 박진실 변호사는 “마약 사범들은 10대 때 한 번도 안 걸렸기 때문에 자신들은 ‘걸리는 일이 오히려 드물다’라고 얘기할 정도”라고 말했다.

탈선을 겪은 이들은 또 다른 범죄에도 노출되기 쉽다. 한 마약 상담사는 “마약에 중독된 10대 여성을 이용해 20대 말단 유통책들이 ‘상선’에 성접대를 시키고 마약을 얻어오게 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고 전했다. 마약 사건 전문 김희준 변호사는 “4년 전 30대가 마약사범의 주요 연령층이었다면 2021년에는 20대가 주요 연령층이 됐다. 마약을 이용하는 연령층이 더 어려지는 경향을 보이는 것”이라며 “지금이라도 바로 잡지 않으면 10대 마약사범은 더 빠르게 번져나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김용현 백재연 기자 fac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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