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찬수의 에코파일] 항생제 내성균 내게 맡겨 .. '마법의 탄환' 박테리오파지
항생제 등장하며 한때 연구 주춤
내성균에 한 해 70만 명 희생되자
부작용 작은 새 치료법으로 각광
2001년 12월 추운 겨울날 흑해 연안의 조지아(그루지야) 공화국에서는 세 명의 남자가 땔감을 줍고 있었다. 이들은 페인트 통 크기의 금속 용기를 발견했다. 금속 용기 주변만 눈이 다 녹아있어 쉽게 눈에 띄었다. 남자들은 이 뜨거운 금속 용기를 캠프로 가져가 난로처럼 사용했다.
금속 용기는 구소련 시절 임시변통으로 만든 히터였고, 그 속에는 스트론튬-90이란 물질이 들어있었다. 반감기가 28년인 방사성 동위원소였다. 몇 시간 뒤 두 명이 어지럼증과 구토 등 방사선 노출 증세를 보였고, 피부도 벗겨지기 시작했다. 황색포도상구균(Staphylococcus aureus)이 상처 부위에 침투했다. 상처가 깊은 탓인지 항생제도 말을 듣지 않았다.
![대장균 표면에 붙어있는 T1 박테리오파지. 박테리오파지는 세균을 공격하는 바이러스다. [중앙포토]](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1804/11/joongang/20180411004223921lkbk.jpg)
항생제를 투여해도 죽지 않는 세균, 특히 인류의 골칫거리인 항생제 내성균을 박테리오파지로 다스리는 새로운 치료법이 주목을 받고 있다. 일부에서는 박테리오파지 요법을 항생제 내성균을 잡는 ‘마법의 탄환’이라고까지 부른다. 알고 보면 박테리오파지 요법은 100년의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미생물학자들이 바이러스를 발견한 것은 19세기이고, 박테리오파지도 1880년대에 존재가 알려졌다. 하지만 공식적으로 박테리오파지를 발견한 것은 영국의 프레더릭 트워트(1915년)와 프랑스계 캐나다 사람인 펠릭스 데렐(1917년)이다.

데렐은 박테리오파지를 발견하자마자 세균 감염병 치료에 사용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는 1919년 여름 프랑스에서 살모넬라균에 의한 가금(家禽)티푸스가 발생했을 때, 닭에게 박테리오파지를 투여, 치사율을 낮췄고, 발병 기간도 줄이는 데 성공했다.
몇 년 후 데렐은 세균성 이질을 앓고 있는 12세 소년에게 박테리오파지를 투여했고, 2~3일 뒤 소년은 회복했다. 다른 세 명에게도 투여해 치료에 성공했다. 이에 앞서 데렐은 안전성을 증명하기 위해 자신과 가족들, 동료 연구진들에게 박테리오파지를 주사하기도 했다.
하지만 박테리오파지 요법은 1940년대부터 점차 시들해졌다. 박테리오파지 자체에 대한 과학적인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치료 현장에서 박테리오파지를 다루기가 쉽지 않았다. 더욱이 편리하게 쓸 수 있는 항생제가 등장하면서 박테리오파지 치료법은 관심에서 멀어졌다.

동구에서 진행된 박테리오파지 요법은 1989년 소련이 무너진 뒤 서구에 알려졌고, 이제는 서구에서도 비교적 활발하게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현재까지 미국이나 유럽연합(EU)에서 박테리오파지를 직접 인체에 투여하도록 허가한 사례는 없다. 다만 치즈나 육류 가공 공장 청정실 등에서 식중독을 일으키는 리스테리아(Listeria) 균을 제거하는 용도로 사용된다.

항생제 등과 비교했을 때 박테리오파지 요법의 장점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우선 ‘특이성(specificity)’을 들 수 있다. 모든 세균을 공격하는 게 아니라 특정 종류의 세균, 특정 병원균만 골라 공격한다는 점이다. 또 박테리오파지가 증식하는 곳이 바로 감염이 일어난 바로 그 장소라는 점이다. 박테리오파지가 필요한 곳에서 계속 세균을 죽이면서 숫자를 불리기 때문에 금방 효과를 볼 수 있다.
물론 박테리오파지 요법에 대한 우려도 없지 않다. 세균 자체가 돌연변이를 일으켜 박테리오파지에 대한 저항성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박테리오파지가 사람 몸 안에 너무 많이 돌아다닐 때 예상치 못한 면역반응이 나타날 수도 있다.
한편에서는 박테리오파지가 만드는 특정 단백질, 즉 세균 세포를 파괴할 수 있는 단백질을 대량 생산해 박테리오파지 대신에 단백질만 감염 부위에 투여하는 방법도 연구하고 있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kang.chan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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