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화유산 '제주도', 그러나 4.3의 뼈아픈 역사가 묻힌 곳
[오마이뉴스 김동이 기자]

2013년 12월 발간한 제주 4.3사건 진상조사 보고서에 적힌 4.3의 정의다.
그동안 제주도를 5~6차례 방문하면서도 단 한번도 방문하지 않았던 곳, 바로 제주4.3평화공원이다. 어쩌면 제주4.3평화공원은 제주 관광코스를 계획하면서 단 한번도, 일행 누구도 언급하지 않았던 곳이었기에 관심조차 두지 않았던, 쉽게 접근하기에는 무거운 곳이었다.
또한 제주4.3을 대한민국의 아픔이라고 하지만 뭍이 아닌 섬 이야기이기에 그동안 도외시했던 것도 사실이다.
이번에 기회가 생겼다. 제주4.3사건 70주년을 앞두고 한국언론진흥재단 광주지사에서 제주4.3사건만을 주제로 한 현장연수가 마련됐기 때문이다. 낯설었던 제주4.3사건을 배운다는 설렘과 함께 아픈 역사를 살아온 유족과 아픔이 깃든 역사현장을 찾아야 한다는 의무감도 생겼다.


특히, 제주발전연구원의 문순덕 책임연구원의 다크투어리즘에 강의에 이은 허호준 한겨레팀장의 제주4.3의 전반적인 이해와 관련된 강의에서는 제주4.3으로 학위까지 받았다는 허 팀장의 박진감 넘치는 사건전개와 더불어 제주4.3에 대한 진지한 토론도 전개됐다.
골자는 제주4.3이 '사건'이냐 '항쟁'이냐, 또는 '사태', '봉기'냐는 개념 정립의 문제였다. 사건의 성격을 규정하는 일은 역사를 바로 세우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함께 연수에 참가한 전남타임즈 김양순 기자가 질문을 던졌다.

그는 "민주화 투쟁 이후에 잠깐 4.3항쟁으로 불리기도 했었고, 진보 역사학계에서는 제주4.3을 항쟁이라는 논리를 펴고 있다"면서 "한편에서는 폭동, 항쟁, 학살 세 가지를 놓고 지난해에 제주4.3 평화재단에서 설문지를 돌렸는데, 제주도 그렇고 전국적으로도 '학살'이 가장 많이 나왔다"고도 덧붙였다.
허 팀장은 또한 "광주와는 결이 다른 게 제주4.3에서는 제주의 현장연구자들과 서울의 연구자들의 의견이 조금씩 다른데, 서울에서는 역사가의 눈으로 볼 때는 당연히 항쟁이 될 수밖에 없다"면서 "사건의 원인을 보면 오래 지속적이고 탄압에 맞선 항쟁이었지 않냐. 그걸 단지 남로당위원회가 좌파그룹이 무장봉기를 일으켜서 그런 것이지 그걸 당연히 항쟁이라는 논리를 편다"고도 했다.
허 팀장은 또 "범국민위원회라든가 4.3 70주년을 계기로 뭉쳐진 단체들이 역사의 정명찾기에 나서고 있는데 정명에서는 탄압에 맞섰던 싸움이었지 않느냐며 항쟁이라는 표현들이 설득력을 많이 얻고 있다"면서 "당장 오늘, 내일 4.3항쟁이다, 4.3학살이다 라고 결론을 내릴 수는 없을 것이다. 동학도 동학농민전쟁으로 정형화되기까지 100년이 걸렸다"며 성격 규정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했다.
제주4.3 특별법 개정안에 대한 논의도 이어졌다.
기자는 "2000년도에 4.3특별법이 제정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최근 특별법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특별법 개정안의 핵심 요구안은 무엇인가"라고 질문을 던졌다.
이에 허 팀장은 "특별법 개정의 핵심은 피해배상"이라고 전제한 뒤 "특별법에 피해배상이 빠져 있다. 피해배상이 가능할까에 대해서는 여야를 막론하고, 진보보수 대통령 후보를 막론하고 피해 배보상을 하겠다고 했다. 심지어 홍준표 대표까지도"라면서도 "하지만 피해 배보상 하겠다는데 천문학적인 예산이 문제다. 희생자가 1만5000명, 유족으로 결정된 게 5만명이 넘는다, 희생자에 대한 피해 배상이 특별법 개정의 가장 핵심적인 사항이지만 지금 현재 이번 특별법 정부개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이다"라고 말했다. 사실상 개정안 통과가 어려워 보인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제주4.3평화기념관부터 섯알오름까지… 아픔의 현장을 가다

'4.3 백비, 이름 짓지 못한 역사'. "언젠가 이 비에 제주4.3의 이름을 새기고 일으켜 세우리라"라는 글귀와 함께 백비를 설치한 이유가 적혀 있다. 백비란 어떤 까닭이 있어 글을 새기지 못한 비석을 일컫는다.


1948년 11월 17일 참혹한 초토화작전에 불을 당긴 '제주도지구 계엄선포에 관한 건'이라는 당시 이승만 대통령 명의의 계엄령 관련 문서도 아픈 역사의 한 켠을 장식하고 있었다.
그리고, 초토화 작전과 민간인 대량학살을 표현한 원통형의 하얀방. 죽음의 다양한 형상들이 벽에 부조물로 표현되어 있는데 보기만 해도 학살의 고통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가까이서 보니 '제주4.3에 대한 미국과 UN의 책임 있는 조치를 촉구'하는 서명운동이었다. 그 이유는 제주4.3이 미군정 시기에 일어난 사건으로 당시 미군이 모든 진압작전을 지휘했기 때문이다. 이에 미국의 공식사과와 더불어 4.3당시 미군정의 책임규명을 위한 진상조사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또한 "유족들은 뭘 바라는 것보다 따뜻한 말 한마디로 위로를 받고 싶어 한다"면서 "배상보다 따뜻한 말 한마디에 응어리진 한이 풀릴 것이다. 후보 시절 찾았던 문재인 대통령도 올해는 꼭 올 것 같다. 70주년이 뜻깊은 해가 될 것 같다"고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이러한 비행기 격납고 등과 관련해 제주 모슬포 일대 4.3유적지를 안내한 문화관광해설사는 "대정읍 상모리 알뜨르 비행장 등 일본이 패망 후 남기고 간 땅을 제주도로 돌려줘야 하는데 국방부 땅이 돼 버렸다면서 "지금도 투쟁 중인 가운데 정부는 빌려 줄 테니까 사용하라고 하는데 제주에서는 땅을 되찾기 위한 노력을 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특이한 점은 위령비 상단에 태극기를 새겼는데, 이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자 해설사는 "유족들이 이제라도 국가의 보호를 받고 싶다는 의미로 태극기를 새겨 넣었다"고 설명했다.
일제의 흔적에서부터 제주 민간인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제주4.3사건에 이르기까지 제주도는 이를 다크투어리즘이라는 신개념 관광패턴을 추진하고 있다.
모슬포 일원 4.3유적지 등 제주도의 다크투어리즘을 연구하고 있는 제주발전연구원 문순덕 책임연구원은 "여행의 새로운 주제로 떠오른 다크투어리즘은 단순히 비극적 사건과 장소를 확인하고 기억하는 방문으로 접근하는 것을 지양하고 역사적, 교훈적 의미알기에 초점을 두어 경건한 마음자세로 접근할 수 있도록 주변시설과 공간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하기도 했다.
올해로 70주년을 맞는 제주4.3사건의 현장연수를 마치면서 무고한 민간인 학살의 대현장이었던 제주의 아픔을 새롭게 조명할 수 있었다는데 큰 의미를 찾고 있다. 그리고 지금 이 시간에도 가슴에 달린 동백꽃 배지를 바라보며 제주4.3의 진상규명과 미국의 사과, 그리고 특별법 개정을 통한 피해유족들의 피해배상 문제까지 하루빨리 해결되기를 기대해본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덧붙이는 글 | 제주4.3 유적지 탐방은 지난 21일부터 23일까지 한국언론진흥재단 광주지사의 현장연수 프로그램으로 진행됐습니다. 제주4.3사건 특별법 개정과 진실규명이 하루빨리 실현되길 기대해봅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4.3 70주년에 문 대통령 온다니 춤이라도 추고 싶다"
- '난징대학살'에 이용당한 제주도.. 벌써 잊었나
- 자살특공대 전투기 흔적, 제주에 아직 남아 있네
- "4·3이요? 모르쿠다"
- 제주4·3 사건 막을 변곡점.. 몇 번 있었다
- '한국인 환영한다'면서 일본 식당 사장이 케첩으로 써준 말
- 교복 총구입비 13만 3천원...'등골 브레이커' 사라진 서울 신서고 화제
- 노조가 날 배신했다... 월급 깎는데 동의한 그 사람, 어떻게 할까?
- 이 대통령 국정 지지율 67%, 취임 이래 최고치 찍었다
- 국힘 중진들, 장동혁에 "우리가 나라 무너지는 빌미 제공... 용서 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