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아의 '컬렉터의 마음을 훔친 세기의 작품들'] '절망의 아이콘' 뭉크..여성에 대한 공포심 섹시한 '마돈나(성모마리아)'로 승화
고통에 찌들어 좌절하는 인간의 모습을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그림이 있다. 바로 에드바르트 뭉크(Edvard Munch, 1863~1944년)의 유명한 작품, ‘절규(The Scream, 1893~1910년)’다. 신비로운 미소 하면 다빈치의 ‘모나리자’가 즉각 떠오르듯, 절망 하면 누구나 망설임 없이 이 작품을 떠올린다. 왜 그럴까. 생의 근원적 고통을 표현한 예술가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런데 유독 뭉크의 이 그림이 인간의 비통한 심정을 대변하는 아이콘처럼 된 이유는 무엇일까.
서양미술사를 통틀어 뭉크만큼 자화상을 많이 그린 화가는 없을 것이다. 거의 모든 작품에 자신이 등장하니. 고흐를 포함해 자화상을 많이 그린 경우는 대부분 모델료를 지불할 돈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뭉크는 다르다. 젊은 시절부터 죽기 직전까지 정말이지 쉬지 않고 자신을 그렸다. 무엇이 그의 시선을 그토록 자신에게 향하도록 했을까. 바로 끝 간 데 없는 자기 연민이다. 사실 그는 여러 면에서 못난 남자의 표본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의 인물이었다. 허약 체질로 태어나 선천적으로 소심하고 겁이 많았다. 게다가 극도로 예민해 의심이 많고, 매사를 지나치게 과장되게 받아들였다. 심각한 우울증과 신경쇠약증, 그리고 알코올 중독에서 비롯된 잦은 싸움과 끊이지 않는 소동들….

뭉크는 군의관 아버지와 예술적 소양을 갖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는데, 어린 시절부터 불운이 몰아쳤다. 다섯 살 어린 나이에 사랑하는 어머니의 죽음을 지켜봐야만 했고, 몇 년 후에는 어머니를 대신해줬던 다정한 큰누이마저 사망했다. 어린 여동생은 정신병 진단을 받았고, 점점 종교에 의존하게 된 아버지는 아이들에게 경건함을 강요하며 광신도처럼 변해갔다. 노르웨이 오슬로의 춥고 음침한 날씨와 궁핍하기 짝이 없는 데다가 숨 막히는 집안 환경까지. 게다가 뭉크는 몸이 약해 학교에 가지 못하는 날이 많았다. 그가 찾은 유일한 탈출구는 그림이었다. 그리고 또 그리며 어두운 현실을 잊고 견뎌내는 것….
끔찍하게 힘들었던 어린 시절을 제외하면 그의 인생이 줄곧 나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어두운 색조의 침울한 그림들은 무척이나 고통스러웠을 뭉크의 삶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사실 탄탄한 데생 실력과 타고난 재능 덕에 그는 당대에 초상화가로 상당히 인기가 높았다. 자기 그림을 끔찍이 아꼈기 때문에 그림을 거의 판매하지 않았는데도 넉넉하게 생계를 꾸릴 수 있었다. 초상화 주문이 끊이지 않았고 판화도 인기가 높았던 덕분이다.

‘마라의 죽음 1(The Death of Marat I, 1907년)’은 더욱 극단적이다. 제목에서 유추하건대, 그는 암살당한 위대한 프랑스 혁명가 마라에 자신을 빗대고 있다. 전라로 관객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그녀에 의해 살해당한 듯 뭉크는 피를 낭자하게 흘리며 침대에 누워 있다. 이처럼 그는 여성에 의한 희생자로 묘사되고는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이 그림 속 여인은 뭉크가 4년여 동안 교제했던 툴라다. 그녀는 결혼을 요구했고 그는 필사적으로 도망쳤다. 그러자 그녀가 자살하겠다고 뭉크를 협박했고 우발적으로 그는 권총으로 자신의 왼손을 쏘았다.
작품에 묘사된 비장함이라고는 전혀 없는 한낱 유치한 연애 스토리. 게다가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렇게 화가 난 순간에도 뭉크의 총구는 자신에게 치명상을 입힐 부위를 향하지 않았다. 자신이 겪은 어떤 에피소드든 그에게는 그림의 중대한 소재가 됐고 결과물은 상당히 성공적이었다. 다시 말해, 뭉크는 그림 속에서 자신의 경험을 과대 포장하는 경향이 강했다. 과장을 통해 비통함을 자아내는 놀라운 재주가 있었던 셈이다.

여성에 대한 그의 공포심도 사실 모든 남성의 심경을 대변한 것에 다름없다. 현대 심리학 이론에 따르면, 잉태가 불가능한 남자는 자궁에서 자신을 키우고 낳은 어머니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여자와의 성교 과정에서 무의식적 거세 공포를 겪는다고 한다. 따라서 남자는 태생적 심약함을 감추기 위해 끊임없이 인위적인 강함으로 자신을 무장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남성 우월주의가 지배적이었던 시절에는 누구도 그런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어찌 보면 본능에 충실한 뭉크는 시대를 앞선 심리학자 같은 화가였다고도 말할 수 있다.
한참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의 어둡고 절망적인 그림들이 사실은 죽음을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생에 대한 강렬한 의지와 에너지를 담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이것이 뭉크의 치명적인 매력이다. 어둡지만 한없이 밝은 것이다. 작품을 거의 팔지 않고 자기 집에 간직했던 탓에 나치에 의해 전 작품이 몰수될 처지가 되자 그는 나치에 동조하고 말았다. 하지만 그를 나약하다고 비난할 수만 있을까. 강한 척 단명하거나 요절한 동시대 천재 예술가들과 달리, 자기 연민으로 똘똘 뭉친 못난 남자 뭉크는 여든이 넘도록 장수하면서 인간이 짊어져야 하는 태생적 고뇌를 줄기차게 표현했다. 그리고 그 어떤 굴욕적인 상황에서도 자기 작품을 목숨처럼 지켜냈다.
그렇게 그는 죽음을 통해 역설적으로 생을 노래한 위대한 예술가가 됐다. 이 점이 우리가 인간의 고통을 생각할 때 즉각적으로 ‘절규’를 떠올리는 결정적인 이유가 아닐까.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948호 (2018.03.07~2018.03.13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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