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江南人流] 샤넬 스타일? 한국엔 데무 스타일이 있다

- 새로운 아이디어의 출발점은. “처음 데무를 만들 땐 핑크색·꽃무늬처럼 여성스러운 옷들이 인기를 끌었는데 난 그게 싫었다. 여자 옷이지만 남성복 같은, 남자 옷이지만 여성스러운 이미지가 더해진 중성적인 느낌의 옷이 좋았다. 무채색을 메인으로 하고, 남성복에 주로 쓰는 남색 바탕에 가는 줄이 들어간 스트라이프 원단으로 여성용 재킷을 만들었다. 그게 유행하니 나중엔 원단업자가 스트라이프 원단을 들고 와서 ‘데무 스타일 원단’이라고 하더라.”
- 디자인의 영감은 어디서 얻었나. “없다. 그냥 ‘박춘무의 취향’일 뿐이다. 옷이란 게 깔끔하게 입을 수만 있으면 됐지 고정된 형태를 꼭 지켜야할 필요가 있나. 망사에 털을 달고, 여름 원단과 겨울 원단을 붙이고, 옷깃을 뒤집어 달거나, 봉제를 하다 만 것처럼 시접을 밖으로 튀어나오게 만들었다. 매일매일이 실험의 연속이었다.”
![2012년 가을겨울 시즌 뉴욕컬렉션(아래)과 2018 년 봄 시즌에 선보인 데무의 옷. [사진 데무]](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1803/08/joongang/20180308002727497waxo.jpg)
- 공들여 만든 옷인데 상처가 됐겠다. “잠시 속상했지만 처음부터 내가 좋아하는 옷을 만들려고 브랜드를 만든 거라 크게 신경 쓰진 않았다.”
- 악평을 받았던 그 스타일이 30년째 사랑받고 있다. “리듬이 있다. 여성스러운 무드가 유행일 때는 가라앉았다가 시간이 지나 중성적인 무드가 각광받기 시작하면 함께 인기가 올라간다.”
그는 전라북도 김제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아버지는 아동복 제조공장을 했다. 고교 졸업 후 가족이 모두 서울로 올라와 엄마의 쌈짓돈으로 명동에 작은 옷가게를 냈다. 남대문 도매상가에서 옷을 떼다가 파는 양품점이었는데 장사가 너무 잘됐다. 당시 20대였던 박 디자이너가 고른 옷은 날개 돋친 듯 팔렸다. 구제품 가게에서 사 입은 박 디자이너의 옷까지 사고 싶다는 손님이 많아지자 구제 옷도 사다 팔았다. 사업은 날로 번창해 명동에 가게 3곳을 열었고, 남대문 청진도매상가에 직접 디자인한 옷을 만들어 파는 도매점도 운영했다. 스스로 ‘돈을 많이 벌었다’고 할 만큼 잘 됐지만, 30대 초반 그는 하루아침에 사업을 접었다.
- 잘 되던 가게를 접은 이유가 뭔가.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서였다. 돈은 그만큼 벌었으면 됐다 싶었다. 새벽시장 일을 하니 밤낮이 바뀌어 체력이 한계에 부딪혔고, 또 아이가 크는 걸 보면서 제대로 된 옷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부모님께 말하곤 바로 사업을 정리했다. 디자인 공부를 위해 홍익공업전문대 도안과에 들어가 공부를 마친 뒤 바로 데무를 시작했다.”
- 뒤늦게 학교에 간 이유는. “배움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 졸업 후에도 뉴욕·파리·오사카 등 세계 도시를 찾아다니며 쇼란 쇼는 다 봤다. 일반인이 들어갈 수 없는 곳은 백화점 바이어에게 부탁해 초청장이나 표를 얻어서 들어갔다.”
- 새로운 일에 뛰어드는 게 두렵지 않았나. “사실 만만했다. 해외 쇼에서 옷을 보면 볼수록 나도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내가 가진 유통 노하우와 비즈니스 감각까지 더하면 브랜드를 운영하는 게 어려울 것 같진 않았다.”
- 한국 패션 시장에서 한국 디자이너가 살아남기 힘들다고 한다. “사실이다. 한국 사람들은 한국 브랜드를 잘 안 입는다. 백화점도 해외 브랜드를 넣기 위해 한국 디자이너 숍을 뺀다. 결국 한섬 소속의 브랜드들을 제외하고는 국내 패션 브랜드도 몇 개 안 남았다.”
- 디자이너 브랜드의 비싼 가격을 문제 삼는 사람도 많다. “내 신념 중 하나가 옷값이 쓸데없이 비쌀 필요가 없다는 거다. 멋있게 입을 정도로만 비싸면 된다. 디자이너 옷이 턱없이 비싸지는 이유 중 하나는 소량생산이다. 좋은 원단을 쓰면서 사람들이 살 수 있는 가격을 맞추려면 기본 생산량이 있어야 한다. 데무의 해외 진출 이유도 여기 있다.”
![1988년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에 문을 연 데무의 첫 매장. 이름 데무는 ‘~로 부터’란 뜻의 프랑스어 ‘de’와 박 디자이너를 의미하는 한자 ‘무(無)’를 결합한 것이다. [사진 데무]](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1803/08/joongang/20180308002727646bltc.jpg)
- 앞으로 계획은. “데무는 가격대가 높다 보니 젊은 층이 입기엔 한계가 있다.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하면서도 디자인이 좋은 Y라벨로 젊은 층에 다가갈 계획이다.”
- 후배 디자이너들을 위한 조언은. “실패의 경험에서도 분명 배울 점이 있다. 모두가 힘들다, 안 된다고 말하지만 되는 사람은 분명히 있다. 나도 그랬다. 악평과 실패를 두려워 말고 도전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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