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S'라인 변기 'I'라인으로 바꾸는 서울대 '빗물 박사'
"1년이면 교체 비용 보다 더 절감"..외국선 연구 활발
'빗물박사' 한무영 교수 "전체 물 사용량 25%가 변기용"
“예상했던 대로 효과가 엄청나요. 물이 엄청 절약됐어요.”
지난 15일 서울대 연구실에서 만난 한무영(62) 건설환경공학부 교수가 설레는 목소리로 말했다. ‘물 전문가’로 유명한 한 교수는 서울대 본부에 “물을 아끼기 위해 화장실 변기들을 물이 적게 들어가는 일자형으로 교체하자”고 권유했다. 이에 서울대는 1년 전인 지난해 2월 우선 467개의 변기를 일자형으로 교체했다.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지난해 상반기(1월~6월) 서울대 관악캠퍼스의 물 사용량은 4.8% 감소했다. 6개월 동안 약 8670만원이 절감됐다. 한 교수는 “500대 정도 바꿔서 효과가 이렇게 큰데 수천 대에 달하는 서울대의 변기 전부를 교체하면 엄청난 양의 물을 아낄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1년 전체로 보면 2016년보다 물 사용량이 약 6% 줄어들었다.
우리나라는 대부분 ‘S자형 변기’를 사용한다. 한 교수 연구팀이 학교 안의 변기들을 측정해보니 물을 한 번 내릴 때 약 12L가 사용됐다. 한 교수는 “S자형은 모양상 필연적으로 물을 많이 사용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외국에선 일자형과 공기 흡입식 등 다양한 변기들이 많은데 우리나라는 물을 아끼려는 관념이 별로 없기 때문에 S자형만 계속 사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S자형 변기는 1775년 영국에서 수세식 변기가 처음 만들어질 때부터 사용됐다. 변기와 긴 S자형 관에 물이 꽉 차면 일시에 물이 내려가는 ‘사이펀 원리(Siphonage)’를 이용한 것이다. 긴 관의 물을 거치면서 악취를 줄여주는 효과도 있었다. BBC월드서비스는 지난해 ‘현대 경제를 가능하게 한 50가지 발명품’의 하나로 이 변기를 뽑기도 했다.
최근에는 성능은 그대로 유지하고 물은 적게 소비하는 다양한 기술과 제품들이 등장했다. 하지만 아직 우리나라에선 거의 사용되지 않고 있다고 한다.
서울대에 설치된 일자형 변기를 만든 ‘현돈 여명테크’ 관계자는 “일자형 변기를 만들려면 설비 비용을 많이 들여 기존 공정을 전부 바꿔야 하다 보니 많은 기업이 계속 S자형을 만들고 있다. 설비 업체 사람들도 ‘변기는 수십년간 쓰던 S자형이다’는 인식을 아직 많이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 변기의 가격은 비슷한 크기의 S자형 변기보다 4만 원 정도 비싸다. 한 교수는 “계산해보니 교체 공사를 하는 비용까지 고려해도 1년이면 충분히 본전을 뽑을 수 있다. 물을 아낄 수 있는 어려운 방법을 찾으려 하지 말고 이렇게 쉬운 일부터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 교수에 따르면 미국·호주·독일 등에서 많이 사용하는 이런 일자형 변기 제작 기술은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다.
수도법에 따르면 공중화장실이나 숙박업·목욕장업·체육시설업에 해당하는 건물들에는 한 번 사용 시 6L 이하의 물을 사용하는 변기가 설치돼야 한다. 물을 아끼기 위해 정부가 의무화한 것이다. 하지만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대부분의 절수형 변기들은 설치할 때만 6L 이하로 설정되고, 이후에는 다시 수압을 올리는 식으로 운영된다. 관리자들이 세척 효율을 높이고 막힘 현상을 줄이기 위해 밸브를 조절해 물의 양을 다시 늘린다는 것이다. 설치는 절수형 변기로 됐지만, 사용은 일반 변기로 사용되는 셈이다.
실제로 한 교수가 2016년 절수형 변기가 설치돼야 하는 곳 중 10곳을 무작위로 방문해 실험한 결과 6L 이하가 사용되는 곳은 한 곳도 없었다. 많게는 17L를 사용하는 화장실도 있었다. 한 교수는 “이렇게 말로만 절수형 변기를 설치한 곳을 환경부가 적발한 사례는 없다. 물을 아껴야 한다는 생각 자체가 없기 때문에 발생하는 안타까운 일이다”고 말했다.
이 계획의 일환으로 서울대는 지난해 노후 수도 계량기 64대를 새것으로 바꾸고, 370m 길이의 노후관을 교체하는 공사를 했다. 물 사용량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할 수 있는 시스템도 구축 중이다. 서울대는 화장실의 일자형 변기 교체 작업도 추가로 진행할 계획이다.
■ '물 전문가'이자 '변기 전문가'…한무영 서울대 교수
「 한 교수는 세계적인 ‘빗물 전문가’다. 빗물을 자원으로 여겨 활용해야 한다는 여러 패러다임을 새롭게 주장했다. 최근에는 변기에 대한 연구도 활발하게 하고 있다. 한 교수에게 직접 물었다.
Q : 서울대 화장실의 변기를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 계기가 뭔가. A : “‘물 부족 국가’라고 말은 하면서 아무도 물을 아끼려고 하지 않는다. 변기에 아까운 물들이 낭비되고 있는데, 그걸 막기 위해 힘든 연구를 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이미 상용화 돼 있는 기술에 조금만 관심을 가져도 엄청난 비용을 아낄 수 있는데, 안 하는 게 더 이상하지 않나. 전체 물 사용량의 25%가 변기에서 사용된다.”
Q : 절수형 변기를 만드는 게 어렵지 않은 기술인 건가. A : “미국 환경보호청 홈페이지에 가보면 4L 이하의 물을 사용하는 변기 모델 소개가 3000개가 넘는다. 4.8L 이상은 아예 소개되지도 않는다. 전혀 어려운 기술이 아니다. 우리나라 기업들이 특허를 가진 기술들도 있다. 그럼에도 우리의 가정과 사무실에서 매번 소중한 물이 낭비되고 있다는 것은 참 안타까운 일이다.”
Q : 우리나라의 모든 변기가 바뀌어야 한다고 보나. A : “그렇게 생각한다. 한 번에 13L의 물을 사용하는 변기를 한 사람이 하루에 10번 사용한다고 치자. 그럼 1년에 약 50t의 물이 사용된다. 10t 짜리 물을 저장하는 대형 소방차 5대 분량을 한 사람이 사용하는 것이다. 전국의 모든 변기가 4.5L 짜리로 바뀐다고 가정하면, 엄청난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 물이 절약되면 하수 처리장 규모도 줄어들고, 물을 옮기는 데 쓰이던 막대한 양의 에너지도 아낄 수 있다. 태양광처럼 신기술을 연구하는 것도 좋지만, 이런 간편한 에너지 절약 방안에도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야 한다.”
Q : 원래부터 변기에 관심이 많았나. A : “서울대 교수가 빗물이나 변기 연구를 한다고 이상한 소리도 많이 들었다. 지금도 학계와 업계에서 ‘패러다임 바꾸려 하지 말라’는 방해를 받기도 한다. 하지만 전문가일수록 가장 쉽고 실용적인 연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1일 물 사용량은 1인당 282L 정도로 미국, 일본에 이어 세계 3위 수준이다. 독일·덴마크는 우리의 절반 정도를 사용한다. 앞으로 많은 시민들이 물에 대해 관심을 가지면 좋겠다.” 」
송우영 기자 song.wooy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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