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 90세에 문인의 삶 찾아 나선 할머니 의사
![현대백화점 문화센터 옆에 있는 레스토랑. 이 사진은 내 엉망인 손글씨를 타이핑 해 주는 우리반 반장에게 고맙다고 큰딸이 점심을 사준 날. 딸이 꽃을 보면서 소녀처럼 웃어보라고 하면서 '찰칵'. [사진 김길태]](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1802/28/joongang/20180228162712696gagp.jpg)
처음엔 그저 문화센터에 와서 젊은 친구들과 같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그렇게 시작한 글쓰기가 매일 쌓여 작년엔 자식들 덕분에 책도 출판하고, 문인으로 등단했다. 얼마 전엔 잡지사에서 인터뷰해 가더니, 이젠 중앙일보에서 내 글을 연재하겠단다.
![90세 생일잔치겸 출판기념회. 큰딸이 운영하는 회사에서 네 딸 부부와 손자손녀들, 가까운 친구들이 모두 모였다. [사진 김길태]](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1802/28/joongang/20180228162714227svql.jpg)
병원도 그만두고, 무릎이 아파 마음대로 다닐 수도 없게 돼 아무 할 일 없이 의자에 앉아있는 시간이 많아진 어느 날. 갑자기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그거야. 내가 생각하고, 느끼고, 경험한 것을 글로 써보자.’ 지금 할 수 있는 일이 이것뿐인 것 같았다.
━ 눈코 뜰 새 없었던 병원 일 나는 항상 바삐 움직여왔다. 긍정적인 사고방식과 태평한 성격, 항상 생활의 중심에 내가 있기를 원했기에 매일 매일 일에 매달려 바쁘게 돌아가는 삶을 살아왔다. 병원에 찾아오는 환자를 돌보며 딸 넷을 키웠다.
![남편이 국회의원이 되어 서울에 집을 얻어 이사 온 기념으로 찍은 사진. 이제는 이 딸들도 60이 되었다. 내 마음 속에는 언제나 어린 딸들이다. [사진 김길태]](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1802/28/joongang/20180228162715736hznb.jpg)
활기 넘치는 30, 40대는 남편과 아이들을 위해 봉사하고 50, 60대부터는 나의 삶을 찾는답시고 여유만 생기면 외국으로 여행을 떠났다. 그것도 지금의 젊은이처럼 취향에 맞춰 또는 사업이나 경제적으로 자기에게 필요한 분야의 지식을 얻고자 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막연한 호기심과 내 삶에 대한 보상으로 여행사의 맞춰진 프로그램에 따라 미지의 세계를 보러 가는 것이 전부였다.
70, 80대에 접어들면서는 해외여행은 힘들어져 국내 방방곡곡을 누볐다. 하지만 이 역시도 그 지역의 역사나 특성을 공부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곳은 어떻게 생겼을까?' '어떤 과일이나 나물이 나오는가?' '어떤 음식을 먹어보는 것이 좋을까?' 하는 등의 아주 단순한 목적으로 그냥 그렇게 무작정 떠나는 여행이었다.
스트레스도 풀고 맛있는 것도 먹을 겸, 집을 떠나서 누리는 자유와 즐거움을 맛보면서 기차를 타곤 했다. 재미로 그렇게 여행을 즐기며 삶을 보내다 보니 어느덧 늙어 그것마저도 어렵게 되었다. 비행기나 기차를 타기도 쉽지 않고, 여행지에 가서 이곳저곳 돌아다보는 것도 힘들었다. 구경을 가려면 가까운 곳이라도 아이들 힘을 빌려야 해서 더더욱 어려웠다.
![일제시대 교육을 받은 나는 한글 맞춤법을 제대로 배운 적이 없고 악필인데다가 경상도 사투리도 심해 내 노트는 알아보기 힘들 정도이다. 글로 쓰고싶은 이야기가 생기면 종이에 써보고 고치면서 옮겨적고, 또 다시 옮겨적고를 몇번씩 한다. [사진 김길태]](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1802/28/joongang/20180228162715885bmay.jpg)
내가 문인이 되거나 좋을 글을 쓰고자 하는 것이 아니니 지금 이대로의 내 생각과 경험을 가식 없이 써보는 것도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닐까. 나름대로 생각하며 용기를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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