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인들에겐 전쟁터인데.. 연예인의 '방송용 절실함'

노진호 2018. 1. 26.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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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진호의 이나불?] 영세상인 욕 뵈는 연예인의 방송용 간절함

SBS '백종원의 골목식당' [사진 SBS]
백종원의 전성시대가 이어지고 있다. 방송을 통해 대중적 레시피를 전파하던 프랜차이즈의 대가는 전국의 숨은 맛집을 소개하더니, 이제는 푸드트럭과 골목식당 상권 돕기에 나섰다. 지난 5일 시작한 SBS 예능 '백종원의 골목식당'은 밤 11시 20분이라는 늦은 시간대 편성에도 불구하고 6% 시청률을 기록하며 화제가 되고 있다. 앞서 SBS '백종원의 푸드트럭'이 특정 개인을 도왔다면, 골목식당은 특정 '공간'으로 범위를 넓혀 죽은 골목의 상권 자체를 살리는 게 목표다.

첫 소생 대상은 이대 앞 삼거리 꽃길. 화려했던 과거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지금은 후미진 분위기가 역력한 이대 앞 삼거리 꽃길의 영세 가게 4곳이 프로그램에 동참했다. 라멘, 소바, 백반, 수제버거와 같이 각양각색 메뉴를 가진 이들은 백종원의 조언과 자문을 바탕으로 음식 조리법과 효율적이면서도 친절한 서비스를 배우며 '맛집'으로 거듭나고 있다.

━ "나도 간절하다"며 장사 뛰어드는 연예인 그런데 조금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부분이 있다. 절박한 영세 소상공인들 사이로 자꾸 "나도 간절하다"고 주장하는 연예인이 끼어든다. 요리와 그다지 큰 인연이 없던 이들은 뒤늦게 백종원으로부터 요리를 배우고 장사에 뛰어든다. 이들은 '간절하다'거나 '생활이 힘들다'거나 '진심으로 할 마음이 있다'며 자신의 곤궁한 처지를 호소한다. 현재 '골목식당'에 출연해 식당을 운영하는 고재근(Y2K 리더)은 방송에서 "모아놓은 돈도 없다"거나 "지금 절실한 상황이다"고 말했다. "내가 하면 잘할 수 있을까 생각을 하며 백종원의 '푸드트럭'을 많이 봤었다"고도 말했다. '백종원의 골목식당'에는 이들에 이어 조만간 걸그룹 피에스타 멤버 차오루와 작곡가 겸 가수인 돈스파이크도 합류할 예정이다.

SBS '백종원의 골목식당' [사진 SBS]
물론 연예인의 인지도·화제성을 이용해 골목 전체 상권을 살려보겠다는 목적을 보자면 이해할 부분이 없는 건 아니다. 다만 그곳은 영세한 소상공인들의 생존이 걸린 '전쟁터' 같은 곳이다. 그만큼 절박하기에 방송을 통해 부끄러운 주방도, 자신의 얼굴도 공개하고 공개적으로 쓴소리를 듣는다. 그런 곳에서 하는 연예인의 장사가 얼마나 절실하고, 또 진정성이 있는지 좀처럼 와 닿지 않는다.

━ '간절함'의 유효기간은 방송 끝날 때까지?

연예인이 골목상권을 살리는 데 도움 된다는 단순한 접근도 100% 동의하긴 힘들다. 앞서 '백종원의 푸드트럭'에서도 자신의 절실함을 호소하며 실제로 해볼 마음이 있다고 말했던 차오루와 방송인 이훈은 방송이 끝난 후 슬그머니 장사를 접었다. 절실함의 유효기간은 너무나 짧았다. 특히 차오루를 향해 "푸드트럭은 어떻게 하고 또 장사하겠다며 '골목식당'에 나오느냐"는 비판이 적지 않은 건 시청자가 느낀 배신감이 그만큼 크다는 얘기다. (*방송이 결국 '젠트리피케이션'을 야기해 상인들이 내쫓길 것이란 비판도 있으나 여기서는 다루지 않기로 한다. 임대료 상승이 두려워 죽은 상권을 그대로 두자는 주장은 생산적이지 못하다.)

SBS '백종원의 푸드트럭'에 출연한 차오루 [사진 SBS]
결국 방송이 끝난 후 그 골목 상권은 그곳에 남겨질 영세 소상공인들의 몫이다. '골목식당'의 목표가 '방송할 동안'만 골목의 상권을 살리겠다는 게 아니라면, 연예인이 아닌 영세 가게들만의 변화로 사람이 몰리게 되고 상권이 살아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맞지 않을까. 연예인의 방송용 '절실함'이 행여 프로그램과 참여자의 선한 취지를 방해하고 왜곡시키진 않을지 우려돼서 하는 얘기다.

노진호 기자 yesno@joongang.co.kr

※[노진호의 이나불?]은 누군가는 불편해할지 모르는 대중문화 속 논란거리를 생각해보는 기사입니다. 이나불은 ‘이거 나만 불편해?’의 줄임말입니다. 메일, 댓글, 중앙일보 ‘노진호’ 기자페이지로 의견 주시면 고민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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