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아의 '컬렉터의 마음을 훔친 세기의 작품들'] 인상주의 미술 거장 르누아르 '누워 있는 누드' 알고 보면 류머티즘 탓?
나이 든 한 화가가 류머티즘으로 관절 마디마디가 퉁퉁 부은 손가락에 붓을 동여맨 채 고통스럽게 붓질을 하고 있다. 그는 지금 초록색 벽지로 장식된 소박한 실내에 놓인 소파 위, 커다란 쿠션에 기대 누워 있는 여인을 그리는 중이다. 한가롭고 느긋하게 누워 있는 젊고 아름다운 그녀의 풍만한 나체가 윤기 나는 핑크 톤으로 생생하게 묘사돼 있다. 화가가 머리를 받치고 있는 그녀의 한쪽 손목에 활짝 만개한 한 송이 꽃을 그려 넣자 화사함은 절정으로 치닫는다. 이 작품은 ‘누워 있는 누드, 가브리엘(Femme nue couchee, Gabrielle, 1906년경)’로 인상주의 미술의 거장 르누아르(Pierre Auguste Renoir, 1841~1919년)가 그린 대형 누드화 중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평가받는 그림이다. 그 누가 이 매혹적인 그림에서 화가의 육체적 고통과 불편한 거동을 읽어낼 수 있을까.
몹시도 어려운 집안 형편으로 르누아르는 어려서부터 도자기나 부채에 그림을 그려 넣는 공방에서 일을 하며 생계를 도와야 했다. 반복적인 노동이 지겹고 힘들 때마다 집 근처에 있는 루브르미술관에 가서 소묘를 하는 것이 유일한 즐거움이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비록 20대가 돼서기는 하지만 미술에 대한 그의 열정과 재능 덕에 본격적으로 그림 공부를 시작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다. 그리고 이때에 시슬레, 모네 등 인상주의 미술의 소중한 동료들을 만난다. 여전히 끼니를 때우기 어려울 정도로 가난했지만, 굴하지 않고 그림을 그려서 1868년 살롱 전시에서는 작품이 판매되고 나름의 성과를 거둔다. 이후에는 후원자가 나타나 작업을 지속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

일례로 1876년 발표한 ‘물랭 드 라 갈레트에서의 무도회(Bal du Moulin de la Galette)’를 보라. 이 작품은 르누아르에게 보다 탄탄한 미래를 약속해준 초기 명작으로 평가된다. 당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야외 정원 무도회를 묘사한 작품이다. 자유롭고 활기찬 붓질로 무도회 에너지와 생동감이 고스란히 전달돼 마치 현장에 있는 듯 매료된다. 다채롭게 빛나는 색채와 순간적인 빛의 포착이 너무도 아름답다. 이런 대대적인 성공 후에도 미술에 대한 학구열은 식지 않았다. 바로크 미술 대가 벨라스케스 작품을 보기 위해 마드리드로, 존경하는 티치아노와 라파엘·루벤스의 작품을 보기 위해 이탈리아 각지를 여행하기도 했다.
작품이 인정받고 모든 것이 평탄할 것만 같았던 그에게 큰 시련이 찾아온다. 바로 류머티즘이다. 50대 초반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이 병은 더 악화돼 60대에 접어들자 붕대로 손을 단단히 동여매지 않고서는 붓을 쥘 수조차 없는 지경에 이른다. 이런 육체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르누아르는 변화를 모색해야 했다. 이전에는 빛의 묘사를 중시하는 인상주의 화가답게 주로 야외에서 그림을 그렸다. 하지만 건강 상태가 악화되자 실내화로 전향을 꾀했다. 또한 힘을 주기 어려운 손 상태를 감안, 이전보다 더 흐르듯 부드러운 붓질로 표현할 수 있는 누드화를 시도하게 됐다. 이 때문에 야외로 나가 자연과 인체의 조화를 표현하던 이전 누드화에서 실내 대형 누드화로 변모를 꾀하게 된 것이다. 이것이 ‘누워 있는 누드, 가브리엘’이 탄생한 배경이다. 그런데 오히려 이 점이 르누아르의 다른 누드화들과 차별을 이루며 이 작품을 한층 더 훌륭하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 그림은 기대 누워 있는 여인을 그린 전통 실내 누드화의 계보를 잇고 있다. 이는 티치아노, 루벤스, 고야, 앵그르, 쿠르베, 마네 등 많은 거장들이 다룬 전형적인 주제였다. 그중에서도 르누아르는 특히, 르네상스의 거장 티치아노의 누드화를 “죽음과 미스터리의 극치”라 말하며 선망했다. 그러나 정작 ‘누워 있는 누드, 가브리엘’을 걸작으로 완성시킨 것은 티치아노와는 다른 소박함과 전체 구성의 단순함이었다. 단순히 전통을 모방하기보다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주제를 새롭게 풀어낸 것이다. 이젤을 모델에게 아주 가깝게 두고 그림으로써 성취된 신속성과 직접성 같은 속성이 전통 주제에 현대적인 감각을 더하고 있다. 또한 모델과의 친밀함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가브리엘은 르누아르가 자녀들을 위해 고용한 가정교사이자 그가 가장 선호해 다년간 그려온 모델이기도 했다.

크리스티는 이전에도 미국에서 몇 차례에 걸쳐 성공적인 경매를 한 적이 있다. 하지만 이 경매가 독자적인 세일룸에서 열린 첫 번째 뉴욕 경매였다. 이 때문에 적극적인 참여보다는 관망세가 지배적이었다. 더욱이 10%에 달하는 구매자 수수료 때문에 경매에 대한 약간의 적대감마저 형성돼 있었다.
이런 예처럼 작품의 완성도와 상관없이, 특수한 시장 상황으로 인해 예기치 않은 경매 결과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운 좋게 비교적 낮은 가격에 이 작품을 구매했던 레이먼드와 그의 부인은 30년이 넘도록 이 작품을 애지중지했다. 그러나 부부가 죽자 2010년 5월 다시 크리스티 뉴욕 경매에 출품됐다. 이번에는 스타 작품으로 화제를 모았고, 높은 추정가를 웃도는 108억원(1016만2500달러)가량에 낙찰됐다. 한편, 전성기 대표작인 ‘물랭 드 라 갈레트에서의 무도회’는 경매에서 800억원이 넘는 금액에 낙찰돼 르누아르 작품 중에서 최고가를 기록한 바 있다. 그야말로 미술가의 가치는 작품 가격이 말한다고 하던 르누아르의 말에 합당한 가격이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955호 (2018.04.25~05.01일자)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매경이코노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