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주가 뭐길래 ②] "몇 살에 돈 벌까요?" 이 질문이 부질없는 이유
[오마이뉴스 글:이정혁, 편집:이주영]
혹시 호기심에 역술인에게 생년월일시를 슬쩍 건네거나, 신문 속 '오늘의 운세'를 조용히 펼쳐본 적 있나요? 왜 우리는 '그런 거 안 믿어' '운명은 만들어가는 거야' 하면서도 미래를 궁금해하는 걸까요? 사주에 울고 웃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편집자말>
누구나 한 번쯤은 겪어봤을 것이다. 부지런히 내 갈 길 가고 있는데, 갑자기 앞을 막아서는 정체불명의 여인.
"인상이 참 좋아 보이시네요. 잠깐 시간 좀 내주시겠어요?"
첫눈에 호감을 느낄 만한 외모가 아님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직감적으로 느낌이 온다. '도를 아십니까'의 확장 버전이구나. 멈칫하는 사이, 그녀는 훅 치고 들어온다.
"운명을 믿으세요?"
이런 일이 반복을 거듭하다 보면(만만한 얼굴에 약간의 수심이 있으면 더 자주 당한다) 저절로 운명을 믿지 않게 된다. 필자도 혈기 왕성한 청춘의 시절에는 운명이니 사주니 하는 것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열심히 노력하면 타고난 팔자도 바뀐다. 소처럼 개미처럼 일하고 노력하자. 인간은 의지를 지닌 고등동물이다. 그런데 나이가 쌓이다 보니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아무리 애써도 안 되는 일이 분명 존재했다.

관상에 천부적 자질이 있다고 기고만장하던 어느 날, 모임에서 어김없이 설을 풀고 있는데 누군가 사주 앱을 들이대며 모든 이들의 관심을 앗아갔다. 사주풀이는 한 개인의 삶을 훨씬 더 세밀하게 짚어나갔다. 연월일시 사주의 통계를 통해 자신이 타고난 팔자를 분석하고 운명을 예측하는 학문. 눈짐작으로 대강 운명을 때려 맞추려던 사이비에게 명리학은 하늘이 열리며 빛을 내리는 신학문이었다.
명리학. 운명의 이치를 다루는 학문. 과연 운명에도 특정한 법칙이 존재할까? 사주에 대한 공부가 시작되었다. 수능 1세대는 한문이 시험과목에 포함되지 않았다. 한자 읽는 것부터 버거웠다. 내 운명을 읽어내고 말겠다는 기대와 의지로 밀고 나갔다. 공부는 그렇게 본인이 원할 때 해야 능률이 오르는 법이다.
물론 돗자리 깔고 부업으로 사주풀이를 할 생각은 아니었다. 그저 내 사주팔자를 짚어 나의 운명을 미리 예습하고 길흉에 대비하는 게 목적이었다. 중년에 들어서며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의 본질에 한 발짝 더 접근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나의 근원은 무엇이며, 나는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가.
시중에 출간된 수많은 사주 관련 책들과 인터넷 강의들은 저마다의 특색과 장단이 있다. 몇 권 비교해서 읽어보고 혹은 무료 강의를 들어보고 취향에 맞게 선택하시면 된다. 참고로, 내가 집중해서 읽은 책 <명리>의 저자 강헌은 자신의 사주를 푸는 데만 3년이 걸렸다고 서문에서 고백하고 있다. 그만큼 날것으로 먹을 수는 없다는 뜻이다.
![강헌 [명리, 운명을 읽다] ⓒ이주영](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1804/10/ohmynews/20180410100300962lbtu.jpg)
공부를 하다 보면 사실 궁금해진다. 내가 분석하고 있는 게 맞는 거야? 독학하다 보니 마땅히 질문할 곳도 없고... 결국 철학관을 찾아가서 확인해 볼 수밖에. 사주에 눈을 뜨고 주위를 둘러보면 깜짝 놀랄 것이다. 우리 주변에 얼마나 많은 점집과 철학관이 존재하는지. 아, 인간이란 운명 앞에서 나약할 수밖에 없는 존재였던가? 홍도는 오빠가 없어서 우는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지나가다 사주풀이 하는 곳이 눈에 띄면 들어갔다. 대략적인 내 사주를 알고 있으니 당신의 노하우를 내게 전수해 달라는 게 본심이었다. 이것이 생생한 현장학습 아니겠는가? 혹자가 보면 '도장 깨기'처럼 비칠 수 있겠으나 내겐 아직 그럴 만한 실력이 없다. 배움의 겸손한 자세로 명리학의 선구자들 앞에 조신하게 무릎 꿇었다. 그리고 그들에게서 내 사주의 다양한 변주를 들을 수 있었다.

명리학을 공부한다고 하면 물어보는 질문들은 너무 빤하다.
"언제쯤 좋은 사람 만날 수 있을까요?"
"몇살 쯤 돈을 벌 수 있을까요?"
이러한 것들은 자신의 본질이 아닌 껍질에 막연한 기대를 거는 것이다. 스스로 공부할 용기와 시간이 도저히 부족한 사람이라면 적어도 질문은 바꾸어보자.
"나는 어떠한 사주를 타고 났으며, 앞으로 어떠한 점은 살리고 어떤 부분은 조심해서 살아야 할까요?"
고백하건대 필자는 명리학 심화과정에서 손을 들었다. 독학의 한계를 절실히 느꼈다. 여러 사람들에게서 들은 내 사주의 다양성이 오히려 독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언젠가 여건이 닿아서 누군가에게 체계적인 지도를 받는다면 다시 한번 도전해 볼 요량이다. 자신의 운명을 들여다보고 자신과 대화를 나누는 일만큼 흥미진진한 일도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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