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 웹소설] (5) 신뢰의 부재

사도시 2018. 2. 10. 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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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김회룡.
다음날 나는 생각을 정리할 겸 옥턴 도서관에 들어선다.

“굿모닝.”

사서의 말에 나도 웃으며 인사한다.

“굿모닝.”

긴 머리를 땋아 내려뜨린 할머니의 모습은 특이했다. 머리를 거의 안 자른 것인지 머리카락이 거의 무릎까지 닿아 보인다. 컴퓨터에서 검색하고 몇 권의 책을 찾아 탐독했다. 1991년 미국의 벨코어 연구소의 스튜어트 하버가 만든 블록체인 기술 외에 웨이 따이(Wei Dai)의 암호화 가상화폐 관련 비-머니(b-money) 제안과 닉 재보(Nick Szabo)의 비트골드(Bitgold) 제안에 관한 문헌을 대출 목록에 넣었다. 인터넷이 생긴 후 달러나 다른 통화를 대체할 전자화폐를 만들려는 노력은 늘 있었다. 1990년대 초반부터 암호화 기술을 이용해 정치와 사회 혁신을 도모하려는 노력 역시 시도되었다. 문제는 경제성이나 신뢰성 차원에서 혹은 반정부적이라는 점에서 번번이 실패했다는 점이다. 여러 문헌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와서 전반적인 내 구상과 앞에 있었던 연구 결과들을 조화시키며 여러 가지 상상을 해봤다. 내가 떠올린 키워드는 암호화의 제대로 된 원리, 탈중앙화, 신뢰였다. 여기서 탈중앙화는 정부나 공신력 있는 중앙 집권적 기구에서 벗어나 개인과 개인이 거래를 중개 기관 없이 안심 있게 하는 것을 말한다. 해커들의 침입에서 안전한 거래 시스템을 개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구체화 되지는 못했지만 나는 무언가 원대한 꿈을 꾸고 있었고 기폭제가 필요했다. 범 세계화 추세에서 저 멀리까지 비용 없이 거래하는 세상은 얼마나 이상적인가? 슈퍼마켓에서 만난 온두라스 점원이 환전 수수료를 걱정하면서 환전 수수료가 저렴해야 한다고 말한 기억이 떠올랐다. 그런 말을 기억하며 이 생각 저 생각을 하고 있는데 해가 어느새 지고 있었다. 저녁 무렵이 되어 아버지가 앞으로의 삶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셨다. 빙그레 웃는 아버지는 언제나 나를 믿어 주신다.

“아버지. 그 옛날 아버지께서 말씀하신 화폐이야기 참 재미있었어요. 특히 노벨경제학상을 탄 밀턴 프리드먼의 그 믿음 이야기요. 제게 어려울 때 항상 힘이 되는 이야기예요. 저도 그런 신조를 가지고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남태평양 아프 섬에는 돌을 화폐로 생각했다. 누군가 큰 돌을 운반하는 과정에서 그 돌을 떨어뜨렸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그의 부를 인정했다. 그 돌이 바다 어딘가에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런 신뢰의 사회를 지금 살고 있는가? 서로에게 믿음을 주는 지구 공동체 건설. 내 죄를 씻기 위해서 그런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누군가 내게 왜 신뢰의 대상이 돈이 되어야 할까하고 물을 수 있다. 그건 현대를 사는 모든 이의 관심이 돈에 몰려 있기 때문이다. 돈만큼 사람을 울리고 웃기는 것이 어디 있나. 내가 꿈꾸는 신뢰의 지구 공동체를 돈을 통해서 실현하는 것이야말로 월가의 비겁함을 체험했기에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럼 어떻게? 나는 중앙은행도 아니고 발권력도 없다. 그냥 빌 스미스란 한 인간이 만든 무엇을 모든 사람이 믿어 준다면 그야말로 가능한 것 아닐까? 우리가 지금 지폐를 돈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나 300년 전에 지폐는 단지 종이에 불과 했다. 영국의 경제학자 존 로(John Law)는 국가 권력을 등에 업고 지폐를 만들었다. 그게 지금 지폐의 유례이다. 아버지는 내 이야기를 듣더니 씩 웃으셨다.

“너 월가의 세계에 엄청 신물이 났나 보구나. 너 정도면 무슨 일을 다시 할 수 있으니 머리도 식힐 겸 세상 구경을 하는 것도 좋겠다. 아빠하고 농구나 한번 할래. 누가 슛을 더 많이 넣는지. 이래 뵈도 나도 체력은 왕성해.”

우리는 밖으로 나갔다. 나이는 못 속인다. 드리볼을 하는 아버지는 숨이 가빠 보였다. 큰 키의 잘 생긴 아버지의 젊은 시절은 뭇 여성의 마음을 들뜨게 했을 것이다. 지금의 아버지는 슛을 넣을 때 점프가 예전만 못했다. 나는 일부러 미스 슛을 하였다. 아버지에게 져 주기 위해서였다. 아버지는 그런 내 마음을 이해하고 있었고 모른 체 했다. 아버지와 다이닝 룸에 앉아 맥주를 들이켰다.

“아버지, 달러가 기축통화로 영원한 것일까요. 2차 대전 이후 파운드화를 대체해서 지금까지 그 위상을 유지하고 있는데 그게 계속될까요?”

아버지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다소 괴로운 듯 말했다.

“세상에 영원한 것이 어디 있겠니. 중국의 부상도 그렇고. 그러나 최근 유로화와 중국 위안화의 영향력이 커지긴 했지만 누가 뭐래도 지금의 기축통화는 미국의 달러다.”

아버지는 미국의 힘을 여전히 굳게 믿고 있었다.

“미국이 달러를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은 미국이 곧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는 증거지. 미국은 달러 덕에 경제적으로 결코 망하지 않는 불멸의 제국을 건설했어. 지금 어수선한 분위기이지만 미 정부는 달러의 위상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할 거야.”

나는 공직자인 아버지의 신분을 망각한 듯 막말을 하고 만다.

“미국은 돈을 빌린 뒤 갚지 않아도 망하지 않는 것 아닌가요. 돈을 찍어 갚으면 되잖아요. 물론 기축통화로서의 위상을 유지할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 때 여기 종이 쪼가리에 새겨진 벤자민 프랭클린이 하늘에서 슬퍼 울까요?”

아버지는 나를 한참동안 쳐다보더니 맥주를 다 들이키며 말했다.

“세상은 요지경이야. 그래도 미국이 달러를 풀어서 세상이 돌아가는 거야. 달러가 미국으로 흡수될수록 세계 시장에서 사용되는 달러가 사라지잖아.”

하긴 그렇다. 그런 모순 속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게 딜레마이긴 하다.

“그렇게 되면 당연히 각 나라들이 달러로 결제하는 데 불편함을 느끼고 달러 대신 다른 기축통화를 찾을 수도 있는 것이지. 익숙함에 의문을 가지는 것은 좋으나 조롱은 안 된다. 특히 미국 역시 세계 평화와 번영을 위해 많은 희생을 한 거다.”

역시 그는 미국을 사랑하는 천상 미 재무성 공무원이다.

“과거처럼 달러가 금에 연동되는 것도 아닌데 달러를 그렇게 무분별하게 찍어도 되나요? 그것이 세계평화를 가져온다는 것은 지나치게 미국적인 사고가 아닌가요? 물론 월가의 사람들은 미국의 힘이 영원할 것을 믿었어요. 그런데 입장을 바꾸어 생각하면 그건 공평한 게임이 아닐 수도 있잖아요.”

아버지의 말에 다소 반기를 들고 흥분하며 말했다. 나도 내가 왜 변했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아마 그건 돈 벌고 난 뒤에 온 죄책감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버지. 불은 미국에서 났는데 죄 없는 다른 나라에 불길이 번져요. 불을 끄려고 달러를 흡수하니 달러가치가 오히려 올라가는 아이러니가 발생하죠. 이건 모순이죠. 그리고 달러를 풀면 그 돈들이 먹이감을 찾아 떠나죠. 돈 냄새를 맡고 다른 나라로 사냥 갈 것이란 건 월가의 삼척동자라면 다 아는 사실인데요.”

아버지는 약간 화를 내듯 내게 말했다.

“빌. 너 취했니.”

“아뇨. 사실 역사가 말해주잖아요. 달러가 종이쪼가리에 그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조건이 있어야 해요. 금과 달러가 연동되었을 때는 신뢰가 있었죠. 정부는 보유한 금의 양만큼만 달러를 찍어내야 한다는 조건을 두었잖아요. 이젠 그런 시스템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잖아요.”

내 말에 아버지는 의아해 하는 모습이었다. 거침없이 말하는 내 이야기를 아버지는 들어주셨다.

“그런 시스템이 유지되었다면 달러는 분명히 정직한 돈이지요. 미국 연방정부에 저장된 금의 양만큼만 달러가 발행됐고요. 각 나라에서 달러를 미국에 내밀면, 그에 상응한 금을 내주었죠. 지금은 그렇지 않잖아요.”

“그건 세계 경제 규모가 커지고 달러에 대한 수요가 많아진 이유도 있는 거야. 너무 세상을 편협하게 보는 것 아니니? 세상은 원래 자기 나라 국익을 우선시 할 수밖에 없어.”

잠시 침묵이 흘렀다.

“유로화의 탄생 배경도 봐. 독일 경제가 왜 잘나가겠니. 전쟁의 상처에서 완전히 벗어나고 유럽 내수시장을 확대하고 통일 독일의 위상을 제고하기 위한 그 나름대로의 시대적 목적도 있었어. 그리스 경제가 요즘 안 좋다고 하는데 희생양이 되지 않기를 기도하고 있다.”

정확히 몇 년 후 그리스 사태는 발생했다. 아버지는 세상의 원리를 간파하고 있었다. 아버지와의 다툼을 할 이유는 없었다. 아버지는 나를 이상한 눈초리로 보았을 것이 틀림없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미국인임을 자랑스러워해야 했고 매일 매일 국가에 대한 충성을 맹세했었다. 그냥 헛소리를 지껄이며 아버지에게 백기투항 했다.

“그래요. 아버지. 제가 독일 마르크화와 영국 파운드화 사이에서 마르크화의 승리에 베팅을 하는 투자의 귀재 조지 소로스는 아니지요.”

그 해 미국의 경제 시스템은 거의 붕괴 상태였다. 그러나 얼마나 행운인가. 달러는 기축통화였다. 내 나라 미국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엄청난 양의 달러를 찍어냈다.

“달러가 기축통화인 한 미국은 위기 때마다 종이돈을 찍어내기만 하면 거뜬히 그 위기를 돌파할 수 있을까?”

혼잣말을 하며 문득 회의감이 들었다. 내가 베팅한 서브프라임 모기지와 달러 지폐가 오버랩 되면서 내 눈을 어지럽게 했다. 맥주 한 캔을 따서 단숨에 들이켰다. 위기 극복을 위해 미국이 달러를 마구잡이로 찍어대면 전 세계에 인플레이션(물가상승)을 수출할 수 있다. 아니나 다를까 이후 유가는 150불을 상회했고 많은 신흥국에서 식품가격은 급등했다. 양적완화. 2001년 일본에서 처음 시행된 제도였으나 중단된 적이 있었다. 미국에서는 2007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초래한 금융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2008년 시행되었다. 미국발 세계 금융 위기 이후 미국의 기준금리가 0%대로 떨어지면서 더는 금리를 내릴 수 없는 상황이었다. 양적완화는 정부가 발행한 국채와 회사채를 연방준비위원회가 매입하고 유동성을 시장에 공급하는 정책이다. 양적완화를 추진한 당시 벤 버냉키 연반준비위원회 의장은 어쨌든 용기 있는 사람으로 불렸다. 그 천문학적 돈이 결국 미국을 살렸고 그 와중에 많은 나라는 고통을 받기도 하였다.

그날 밤 도서관에서 가져온 여러 논문을 읽으면서 어떤 패권국가에도 종속되지 않는 공정한 결제수단을 개발하는 꿈을 꾸었다. 그리고 컴퓨터 공학을 전공한 릭을 찾아가야겠다는 생각을 굳게 하게 되었다. 릭은 톰이 말한 린다와 결혼을 하여 정보통신 관련 소프트웨어 프로그램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릭을 만나는 게 껄끄러운 것은 사실 내가 린다의 첫사랑이었던 것이다. 그녀의 처녀성을 훔친 사람이 바로 다름 아닌 나였기에 어색한 느낌을 지울 수는 없다. 하지만 10년도 더 된 일을 기억하고 싶지는 않다. 이제 우리는 각자의 삶을 살고 있을 뿐이지 않는가!

「 용어사전 > 존 로(John Law, 1671~1729)

john law
프랑스에서 활동한 영국의 재정가. 프랑스의 루이지애나회사를 설립하여 서인도회사로 발전시켰다. 이와 같은 로의 재정체계는 프랑스에서 일대 붐을 일으켰다. 조폐권과 무역독점권을 둘러싸고 ‘로 체제’를 확립하였다. 결투로 살인하고 암스테르담으로 도망쳐 은행경영에 대하여 공부하였다. 1710년 후 영국으로 돌아와 은행개혁안을 제출했으나 거부당했다. 그러나 그의 개혁안이 1716년 루이 15세로부터 받아들여져 프랑스 총은행(總銀行)과 서방회사(西方會社:루이지애나회사)의 설립 허가를 얻었다. 1717년 루이지애나회사를 서(西)인도회사로 발전시켜, 북아메리카 미시시피강(江) 유역의 광대한 프랑스령(領)의 개발을 기도하였다. 이와 같은 로의 재정체계는 프랑스에서 일대 붐을 일으켰다. 조폐권(造幣權)과 무역독점권을 둘러싸고 ‘로 체제’를 확립하였다.

1720년 재정총감(財政總監)이 되어 프랑스 재정의 중심인물이 되었으나, 지폐의 남발과 투기확대의 결과 경제공황을 일으키게 되었다. 그 때문에 사직하여 프랑스를 떠나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가난하게 죽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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