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태껏 미궁에 빠진 WRC 역사상 최악의 사고

조회수 2017. 2. 4. 09:2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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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C, 짧지만 불꽃같았던 그룹B가 남긴 유산
사고직후

[황욱익의 플랫아웃] 현실에서 불가능할 것 같은 출력을 가진 경주차, 화끈한 드라이버, 겁 없는 관중들까지 영원할 것 같았던 월드랠리챔피언십(WRC)의 그룹B는 1986년 막을 내렸다. 고삐 풀린 망아지 같은 경주차에 몸을 실은 드라이버들은 매 순간 삶과 죽음의 기로에 섰으며, 관람객은 이런 모습을 즐기고 있었다.

600마력에 이르는 경주차들을 속속 선보인 아우디와 푸조를 필두로 란치아와 르노와 포드, 토요타에 이르기까지 워크스팀들의 출력 경쟁은 계속되었다. 안전에 대한 인식은 둘째 치더라도 드라이버들은 매 경기마다 경주차의 안전성에 대해 의문을 재기했지만 이미 흥행에 맛을 들인 WRC 주관사(FISA)는 귀 기울여 듣지 않았다.

가장 과감한 선택을 선보인 팀은 란치아로 1985년 선보인 델타 S4는 그룹B 역사상 가장 괴물 같은 경주차였다. 그룹B 재패와 아우디 타도를 외치던 란치아는 헨리 토이보넨이 개막전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라이벌들을 압도하기 시작했다.

포드RS200

1986년 첫 사망 사고는 3라운드인 포르투갈 랠리에서 발생했다. 요하킴 산토스가 몰던 포드 RS200이 완만한 좌측 코너 구간에서 미끄러지면서 그대로 관중석을 덮쳤다. 당시 사상자는 부상 31명에 사망 3명으로 WRC가 출범한 이후 가장 큰 사고였다. 다행히 드라이버와 코드라이버는 목숨을 건졌지만 필요이상의 출력 경쟁에 지친 아우디와 포드는 랠리 포르투갈 사고를 계기로 WRC를 떠나게 된다. 푸조와 란치아, 토요타, 르노 등은 WRC 잔류를 결정했지만 5라운드인 프랑스 랠리에서는 WRC 역사상 최악의 사고라 불리는 헨리 토이보넨의 사망사고가 발생하면서 그룹B는 폐지가 결정된다.

1956년 핀란드 태생인 토이보넨은 1968년 핀란드 랠리 챔피언인 파울리 토이보넨의 아들로 그의 동생인 해리 토이보넨까지 레이서로 활동 중인 레이스 집안의 장남이었다. 토이보넨은 1980년 WRC 역사상 최연소 우승자에(24살 86일) 이름을 올린 유망주로 그의 이 우승 기록은 2008년 야리 라트발라가(22살 87일) 깨기 전까지 무려 28년 동안 유지됐다.

헨리토이보넨

5월 1일 코르시카에서 열린 프랑스 랠리(Tour de corse) 직전까지 토이보넨은 그룹B 경주차의 안정성에 대해 불만을 토로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더군다나 비포장이 아닌 타막(아스팔트)에서 펼쳐지는 경기인 만큼 고출력을 감당하기 위해 드라이버에게 가해지는 스트레스가 더욱 높아진다는 점도 주장했다. 란치아 입장에서는 개막전 우승 이후 2승을 노릴 기회가 프랑스 랠리였다. 아우디와 포드가 빠지긴 했지만 개막전 이후 이렇다 할 활약이 없었던 란치아에게 프랑스 랠리는 시즌 챔피언으로 가는 가장 중요한 길목이었다.

토이보넨의 사고는 둘째 날인 5월 2일 SS18 7km 부근의 산악 구간에서 발생했다. 좌측 코너를 돌던 토이보넨의 란치아 델타 S4 경주차가 그대로 미끄러지면서 낭떠러지 아래로 굴렀고 나무와 충돌하면서 화재가 발생해 드라이버와 코드라이버가 차 안에 갇혀 사망했다. 토이보넨의 사고는 목격자가 없어 많은 의혹을 남겼다. 나중에 갤러리가 찍은 비디오 영상이 공개됐지만 사고 원인과 과정에 대해서 어떠한 결론도 내릴 수 없었다.

란치아델타s4

단순한 사고로 치부될 수 있었던 이 사건은 그룹B가 폐지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그전에도 드라이버와 갤러리의 사망 사고가 있었지만 토이보넨의 사고가 주목 받게 된 건 그룹B 운영에 대한 문제점이 불거졌기 때문이다. 란치아 측은 SS18 경기가 끝날 무렵까지 토이보넨의 경주차가 들어오지 않은 것을 확인 한 후 ‘연기를 보았다’는 운영 요원의 말에 사고 소식을 알았다. 사고 지역이 외진 곳으로 운영 요원도 없는 곳이긴 했지만 경주 중인 경주차, 드라이버의 통신이 완전히 두절된 상황에서 란치아가 토이보넨의 사고 소식을 전달 받고 현장에 긴급 자동차가 투입되었을 무렵에는 완전히 전소되어 뼈대만 남은 경주차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참고로 현재 WRC 팀이 한 경기 당 기록하는 데이터는 약 4테라바이트 분량 이상이다. 각 팀들은 GPS와 첨단 통신 장비를 이용해 경주차의 현재 위치부터 경주차의 상태, 드라이버의 상태, 코스 상황, 사고 구간, 위험 구간 등을 실시간으로 꼼꼼하게 기록한다.

사고 후 운영사(FISA)와 란치아 측은 현장조사에서 여러 가지 의혹을 재기했지만 지금까지 명확하게 밝혀진 것은 없다. 다만 비포장에 비해 높은 속력을 낼 수 있는 타막 랠리에 적용되지 않았던 연료 탱크 보호 장치 미부착과 인후염에 시달리던 토이보넨이 감기약을 먹었다는 사실만 밝혀졌을 뿐이다. 사고 조사 중 운영사인 FISA는 1986년을 마지막으로 그룹B 폐지를 결정하고 그룹B 위 클래스로 준비 중이던 그룹S까지 전면 백지화 시킨다. 그룹B 출전을 타진 중이던 페라리와 포르쉐는 경주차 개발을 로드버전으로 전환한다. 페라리 288 GTO 같은 경우 애초에 그룹B 출전을 목표로 개발되었지만 레이스에는 한 번도 출전 못한 비운의 스포츠카로 기록되었다. 란치아와 토요타, 오펠, 아우디, 포드 역시 그룹S용으로 개발 중이던 ECV와 MR2, 카데트 랠리 4X4, 002 콰트로 개발을 중단한다.

푸조205T16에보2

시즌을 마지막까지 마친 메이커는 푸조와 란치아 뿐이었다. 이미 시즌 포기를 밝힌 포드와 아우디가 빠진 상황에서 푸조는 유하 칸쿠넨이 드라이버 챔피언에 올랐고 매뉴팩처러 챔피언까지 차지하면서 한 시대를 풍미했던 그룹B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그룹B 폐지 이후 FISA는 연간 최소 생산량 2,500대에 4개의 좌석을 갖춘 차들이 출전할 수 있는 그룹A 규정을 WRC 최고 클래스로 결정한다. 또한 드라이버 안전 장구를 비롯해 팀 본부와 경기 중인 드라이버의 통신 장비를 포함한 안전 규정 등 강화한 세부 규정을 내놓는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황욱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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