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감 온도가 영하 15도까지 떨어졌다. '이열치열(以熱治熱)'이란 말이 있듯이 '이한치한(以寒治寒), 추위는 추위로 이겨내 보자. 단, 실제 혹한기 훈련은 너무 가혹하니 보고만 있어도 손 시리게 만드는 겨울 배경의 영화를 가져왔다. 1. 러브레터(이와이 슌지, 1995)
[사진=조이앤시네마]
히로코는 연인 후지이 이츠키가 죽은 지 2년 되던 날, 그의 중학교 졸업 앨범에서 옛 주소를 발견하고 그리운 마음에 안부를 묻는 편지를 보낸다. 며칠 후, 놀랍게도 그로부터 답장이 날아온다. 망자로부터 온 편지라니. 줄거리만 놓고 보면 호러지만 멜로 영화의 대명사다. 겨울 풍광으로 유명한 일본 홋카이도의 오타루를 배경으로 히로코가 설원에서 후지이 이츠키를 향해 절규하듯 '오겡끼데스까?('잘 지내나요'라는 뜻의 일본어)'를 외치는 장면은 수많은 매체에서 패러디 해 영화를 안 본 사람도 알 수 있을 정도다. 몇 년 전 공중파 모 방송사는 주말의 영화로 '러브레터'를 방영했을 당시 원작의 묘미를 살리기 위해 이 장면만 더빙하지 않고 내보냈다. 히로코의 절절한 외침에 감동해 따라하고 싶은 마음이 들더라도 참자. 이건 영화고 밖은 춥다. 2. 레버넌트 : 죽음에서 돌아온 자(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2015)
[사진=이십세기폭스]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장수생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구원한 바로 그 작품. 여섯 번이나 후보에 올랐지만 매번 고배를 마셔야 했던 그는 이 영화의 주인공 휴 글래스를 연기해 2016년이 되어서야 드디어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할 수 있었다. 사실 상을 받을만한 더 훌륭한 작품들이 많았지만, '이렇게까지 했는데 안 주면 정말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영화에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끝까지 간다. 한 겨울의 숲속을 배경으로 아들의 복수를 하기 위해 처절하게 나아가는 휴 글래스는 제목 '레버넌트(revenant)' 그대로 '저승에서 돌아온 사람' 같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못지않게 눈길이 가는 것은 복수의 대상 존을 연기한 톰 하디가 아니라, 인정사정 봐주지 않고 덤벼드는 어미 곰. CG이지만 얼마나 실감나는지 보고 있으면 역시 이불 밖은 위험하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3. 가디언즈(피터 램지, 2012)
[사진=드림웍스]
'겨울왕국' 전에 '가디언즈'가 있었다. 산타, 부활절 토끼, 이빨 요정, 잠의 요정과 함께 주인공 잭 프로스트가 악몽의 신에 맞서 세상을 구한다는 이야기로 애니메이션계의 명가였던 '드림웍스'가 제작했다. 안타깝게도 관객들 사이에서는 작품 자체보다 주인공 잭이 화제였다. 무엇이든 얼리고 눈을 내리는 신기한 능력은 물론 잘생겼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크리스 파인이, 한국 개봉 당시에는 이제훈이 잭 프로스트의 목소리를 연기했다. 캐릭터 설정에 모든 힘을 쏟아 부었는지 줄거리 전개가 엉성해 많은 관객을 동원하지 못했다. 이듬해 '겨울왕국'이 비슷한 설정의 주인공 '엘사'를 내세워 전 세계적으로 사랑을 받자 '가디언즈'의 팬들은 남몰래 눈물을 흘려야 했다는 후문. 그래서인지 누리꾼 사이에서는 엘사와 잭을 커플로 설정한 패러디 작품이 왕성하게 만들어졌다. 더 슬픈 사실은 확실히 잭이 대중적으로 유명해진 건 엘사와 엮인 이후로, 아직도 잭이 어디에 나오는 캐릭터인지 모르는 사람이 대다수다. 4. '투모로우'(롤랜드 에머리히, 2004)
[사진=이십세기폭스]
에펠탑, 자유의 여신상 등 전 세계 주요 도시의 상징물이 눈에 뒤덮인 포스터로 유명하다. 한국 개봉 당시는 숭례문이 눈에 뒤덮인 이미지의 포스터가 제작됐다. 이상 기후 때문에 지구 전체가 얼어버리는 거대한 재앙이 닥친다는 줄거리로, 재난 영화계의 대선배라 할 수 있다. 12년 전 영화이기 때문에 지금 보면 CG가 다소 허술하고, 아들 샘을 구하기 위한 주인공 잭의 부정(父情)이 이야기 개연성의 전부다. 가장 흥미로운 장면은 추위를 피하려다 샘이 사람들과 뉴욕 공립 도서관에 갇힌다는 설정. 너무 추운 나머지 불을 피우기 위해 도서관의 온갖 책은 물론 고서와 희귀본 등 문화재에 가까운 서적을 왕창 태워버리는데, 영화는 영화일뿐 따라하지 말자. 실제 상황이면 방화죄, 공공기물파손죄로 잡혀 갈 수 있다. 5. 남극의 쉐프(오키타 슈이치, 2009)
[사진=스폰지]
실제 남극 기지 대원으로 식사를 담당했던 니시무라 준의 에세이 '재미있는 남극요리인'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일본의 최수종 또는 김명민이라 불리는 사카이 마사토가 주인공을 맡았으며, '카모메 식당', '안경' 등의 푸드스타일리스트로 유명한 이이지마 나오미가 영화 속 음식들을 담당했다. 평균 기온 영하 54도의 극한 환경 속에서 고립되어 생활하는 남극 대원들의 이야기로 감동을 자아낸다고 하지만... 두 시간이 넘는 러닝타임 동안 관객을 자극하는 것은 주먹밥, 된장국, 라멘 등 계속해서 등장하는 음식들이다. 배우들이 연기를 어찌나 잘하는지 하정우급 먹방을 떼로 선보인다. 추운 것도 서러운데, 배까지 고프게 만드니 영화를 볼 거라면 팝콘이라도 꼭 준비해서 보길 권한다. 글=김재영 프리랜서 기자 tong@joongang.co.kr ▶10대가 만드는 뉴스채널 TONG 바로가기 tong.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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