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집에서 몸테크해볼까..20년 넘은 아파트, 신축보다 상승률 2배
서울에서 준공 20년 넘은 노후 아파트가 1년 6개월여 만에 가장 높은 매매 가격 상승률을 기록했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 부여된 ‘실거주 2년’ 의무를 피하려 재건축 사업에 속도를 내는 단지가 늘어났고, 서울시장 선거 이후 정비사업 규제 완화 바람이 불면서 투자 기대감이 커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런 분위기 속에 재건축을 기다리며 노후 주택에 투자하고 직접 거주도 하는, 이른바 ‘몸테크’가 주목받는다.
몸테크는 몸과 재테크(財tech)의 합성어다. 재건축 또는 재개발을 기대하며 오래된 주택에서 불편함을 감수하고 사는 것을 의미한다. 당장 새집을 살 뭉칫돈을 끌어오기 어렵다면 낡고 저렴한 재건축 추진 아파트에서 몸으로 때워가며 미래의 새집을 노리는 재테크의 일환이다. 최근 부동산 규제가 강해지자 재건축 가능성이 큰 아파트를 매입하는 1주택자의 몸테크가 확산되고 있다.
몸테크가 주목받는 이유가 있다. 통상 부동산 시장에서는 신축 아파트값 상승세가 더 가파르고 노후 아파트값은 더디게 오르는 게 정석으로 통했다.
다만 재건축 연한(30년)이 가까워지는 20년 초과 노후 아파트는 미리 사뒀다 재건축 사업을 거치면 곧 새 아파트로 거듭날 수 있기 때문에 사업 추진에 탄력이 붙으면 가격이 껑충 뛰는 특성이 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지난해 신축 아파트를 중심으로 가격이 많이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덜 올랐던 구축 아파트값이 뒤따라 오르며 가격이 키 맞추기한 영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한국부동산원의 6월 2주(14일 기준) 주간 아파트 가격동향에 따르면 서울의 20년 초과 아파트 매매 가격 상승률은 0.17%를 기록했다. 주간 단위로는 2019년 12월 셋째 주(16일) 상승률 0.25%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최근 서울 아파트 가격 상승은 20년 초과 아파트가 주도하는 모양새다. 20년 초과 아파트는 4월 둘째 주(12일) 상승률 0.11%를 시작으로 10주 연속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 중이다.
6월 1주(7일)를 기준으로 보면 서울에서 준공 20년 초과 아파트값은 올해 들어 지난주까지 누적 기준 2.4% 오른 것으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준공 5년 이하인 신축이 1.2% 오른 것과 비교하면 2배 높은 수준이다.
서울 5개 권역별로 보면 20년 초과 아파트값은 동남권(강남·서초·송파·강동구)이 3.08%로 가장 많이 올랐다. 이어 동북권 2.35%, 서남권 2.07%, 서북권 1.63%, 도심권 1.21% 등의 순이었다. ‘강남권’으로도 불리는 동남권에는 압구정·대치·서초·잠실동 등의 주요 재건축 단지가 몰려 있는데, 이들 단지가 전체 아파트값 상승을 견인한 셈이다.

▷재건축 규제 완화 기대감에 ‘급등’
특히 압구정 등 재건축 단지의 경우 최근 구역마다 사업 추진이 속도를 내면서 분위기를 주도한 것도 노후 아파트 상승세에 한몫했다. 지난해 정부가 6·17 대책을 통해 재건축 아파트를 조합설립인가 이후에 구입하면 입주권을 주지 않기로 하자 압구정 현대아파트 등 재건축 대장주 단지들이 이 규제를 피하려 서둘러 조합설립인가를 받는 등 사업을 서둘러 추진했다.
지난 4월 보궐선거 과정에서 주요 후보들이 부동산 규제 완화를 공약한 것도 재건축 아파트값 상승을 부추겼다. 재건축 아파트값이 과열되는 양상을 보이자 서울시가 압구정·여의도·목동 등을 1년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었지만 재건축 규제 완화 기대감은 사그라지지 않고 있고, 오세훈 시장은 재건축 규제를 하나하나 풀고 있다.
재건축 아파트값 상승은 해당 지역 전체의 집값 상승도 견인했다. 올 들어 서울 아파트값은 6월 첫째 주까지 1.79% 올랐다. 구별로는 송파구가 2.89%로 가장 많이 올랐고, 노원구(2.82%), 서초구(2.58%), 강남구(2.4%), 마포구(2.14%), 양천구(2.08%) 등이 상승률 6위 안에 들었다. 모두 주요 재건축 단지를 품은 지역이다.
실제로 서울 대표 재건축 단지로 꼽히는 송파구 ‘잠실주공5단지’는 올해로 준공 44년째를 맞았다. 이 아파트 전용면적 82.51㎡는 지난 5월 13일 28억1100만원(13층)에 신고가로 거래되며 1월 23억원(3층)보다 5억원 넘게 올랐다. 이어 6월 4일 저층인 2층 매물이 27억원에 계약서를 쓰기는 했지만 최근 시장에는 28억5000만원에 매물로 나오고 있다. 강남구 압구정동에서는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 이후 아파트 매매가 뚝 끊겼다. 규제 직전인 4월 26일 한양1차 전용 91.21㎡가 31억원(7층)에 매매됐는데, 지난해 12월 25억원(5층)과 비교하면 4개월 새 6억원이나 올랐다.
1973년 준공해 재건축을 앞둔 서초구 반포주공1단지 전용 106.25㎡의 경우 지난해 12월 37억원(2층)에서 지난 5월 말 45억9000만원(3층)으로 5개월 사이 9억원 가까이 올랐고, 올 2월 재건축을 위한 1차 안전진단을 통과한 양천구 ‘목동신시가지3단지’ 전용 145.13㎡는 1월 19억8000만원(7층)에서 4월 27억2000만원(5층)으로 값이 뛰었다.

▷중저가 재건축 단지 몰린 강북行
신축 아파트 가격이 부담되는 젊은 층이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하고 재건축 가능성이 있는 노후 아파트를 선택해 ‘몸테크’에 나섰다는 분석도 설득력 있다. 올해 30대 젊은 층은 노원구·도봉구·성북구 등 재건축 기대감이 활발한 서울 북부권 아파트를 주로 매수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중저가 아파트가 많은 노원구에서 올 1~4월 이뤄진 아파트 거래 1953건 가운데 30대가 차지하는 비중은 42%(820건)로 집계됐다. 성북구 역시 30대 거래가 전체 1029건 가운데 42.2%(434건)로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반면 40대는 상대적으로 가격이 높은 강남구·서초구 등에서 활발하게 거래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 노원구 ‘상계주공3단지(고층)’ 전용 73㎡는 지난 6월 7일 10억3500만원에 신고가를 썼다. 지난해 10월 같은 면적 아파트가 8억9000만원에 실거래된 후 올 들어 10억원 안팎에 거래되기 시작하더니 1억5000만원 가까이 시세가 올랐다. 상계동 A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는 “서울시장 선거를 기점으로 이 일대 재건축 아파트는 부르는 게 값이 됐다”며 최근에는 매물도 많이 줄었다”고 말했다.
낡은 아파트 몸테크는 비교적 적은 금액으로 새 아파트 갈아타기를 노려볼 수 있는 수단으로 꼽히지만, 무조건 큰 차익을 내겠다는 기대는 섣부르다. 사업 초기에 매입할수록 기대 수익이 크지만, 그만큼 장기간 자금이 묶일 각오도 해야 한다.
일례로 1978년 준공된 잠실주공5단지는 2017년 단지 내 일반주거지역을 준주거지역으로 용도 상향하는 서울시 일부 심의를 통과해 최고 50층으로 재건축을 추진 중이다. 기존 3930가구를 6402가구로 확대하고 이 중 427가구를 임대주택으로 공급하기로 서울시와 협의했다. 하지만 서울시는 주민 의견을 보강해 재상정하라며 이를 반려했다. 잠실주공5단지 정비계획안이 보류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7년부터 송파구는 서울시에 관련 공문을 보냈으나, 시는 부동산 시장 과열 등을 우려해 번번이 이를 보류해왔다.
김광석 리얼하우스 대표는 “사업 초기 단지일수록 재건축이 언제 성사될지 장담할 수 없다”며 “몸테크에 투자한 시간과 불편함의 기회 비용을 잘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정다운 기자 jeongdw@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16호 (2021.07.07~2021.07.13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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