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현의 '인물로 보는 차 이야기'] (27) '은시옥로'는 어떻게 '10大 명차'가 되었나

2021. 12. 10.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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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옛날 스타일의 녹차 '은시옥로'

오래전 중국 윈난성의 한 농가를 방문했다. 직접 차나무를 심고 차를 만들어 파는 농가였다. 농부가 자기 집 차를 맛보여주겠다며 밖으로 나가더니 금방 차나무 가지를 꺾어 돌아왔다. 그는 먼지가 뽀얗게 덮인 차나무 가지를 땅바닥에 내려놓은 채 장작불을 지피고 주전자에 물을 끓였다. 물이 끓자 차나무 가지를 (씻지도 않고) 곧바로 주전자에 넣었다. 잠시 후 이 빠진 대접에 차를 따라줬다. 다소 비위생적이기는 했지만 품을 들여 끓여준 차를 마다할 수 없어 받아 마셨다. 그런데 차는 의외로 달달하고 시원했다.

윈난성에는 또 독특한 방식으로 차를 마시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차나무 잎을 따다 그늘에 널어 놓는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산나물을 뜯어 장기 보관하려고 그늘에 말리는 것과 똑같다. 잎이 바삭하게 마르기를 기다렸다 바구니에 담아 놓고 필요할 때마다 한 움큼씩 주전자에 넣고 끓여 마신다. 장기간 저장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차나무 가지를 꺾어 물에 바로 끓여 마시는 방법보다는 더 발전했다.

윈난성은 차나무의 원산지로 꼽히는 곳이다. 이곳 사람들은 아주 먼 옛날부터 차를 마셨다. 이처럼 원시적으로 차 마시는 스타일은 조상으로부터 전해온 것으로 보인다.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이런 방식이 지속됐을 것이다.

그러다 누군가가 새로운 시도를 한다. 나무에서 따온 찻잎을 뜨거운 물에 한 번 데쳤다가 말린 것이다. (끓고 있는 물에 실수로 찻잎이 떨어지는 우연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역사에 기록으로 남아 있지는 않다.) 결과는 놀라웠다. 말려보니 이파리 색이 예쁜 초록이 됐다. 그냥 말렸을 때는 거무튀튀하고 예쁘지 않은 색이었다. 맛도 훨씬 좋아졌다. 이로써 인류의 차 가공은 완전히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었다.

은시옥로차는 짙은 초록색, 바늘처럼 길고 가는 모양을 갖고 있다. 유리잔을 이용해 우리면 차를 감상하며 즐길 수 있다. 일본의 옥로차.
찻잎을 뜨거운 물에 데치는 기술이 정식으로 적용되면서 비로소 차다운 차를 만들 수 있게 됐다. 찻잎을 따 오면 솥에 물을 끓이고 찜통을 올려 수증기로 쪄냈다. 이 방법이 점점 정교하게 발전해 녹차를 만들어냈다. 중국인들은 아주 오랜 세월 동안 수증기로 찐 녹차를 마셨다.

명나라가 들어서면서 새로운 가공법이 유행했다. 수증기로 찌는 대신 뜨겁게 달군 무쇠솥에 찻잎을 덖었다. 이렇게 하니 차향이 훨씬 좋아졌다. 수증기로 찐 차에서는 찐 옥수수 냄새, 찐 고구마 냄새가 났지만 무쇠솥에 덖은 차는 훨씬 매력적인 난초 향기와 고소한 향기가 났다. 차를 즐기는 사람들은 새로운 가공법에 열광했다. 문인들이 이 차를 맛보고는 “비로소 차의 참맛을 알았다. 너무나 자연스럽고 훌륭하다”며 감탄했다.

전국의 차 가공자들은 재빨리 가공법을 바꿨다. 그들은 속속 찜통을 버리고 무쇠솥에 차를 덖었다.

그러나 후베이성 은시에서는 여전히 옛날 방법을 고수했다. 후베이성은 중국에서도 아주 일찍부터 차를 마셨던 곳이다. 삼국시대 사람 장읍은 중국 사람으로는 최초로 차 만드는 법을 기록했는데 그때 배경이 된 곳도 바로 후베이성이었다. 차의 전통이 이렇게 오래됐기 때문일까. 그들은 찜통에 차를 찌는 전통을 버리지 않았다.

후베이성 은시시에서 생산되는 옥로차의 가장 큰 특징은 찻잎을 여전히 수증기로 찐다는 것이다. 잎을 따 오자마자 찔 준비를 한다. 솥 위에 찜기를 얹고 물이 펄펄 끓을 때까지 기다렸다 찻잎을 올린다. 작업자는 뜨거운 김 속에 손을 넣고 매우 조심하며 찻잎을 골고루 펴 넣는다. 어린잎으로 만드는 차라 더욱 조심해야 하는데, 부주의하게 다루면 부드러운 어린잎에 상처가 나거나 부러져서 상품 가치가 매우 떨어진다. 시간도 오래 끌면 안 된다. 시간을 너무 오래 끌면 나중에 완성한 차가 예쁜 초록색이 아니라 누런색이 된다. 역시 상품 가치가 떨어진다. 고온에서, 재빨리, 그러면서도 잎이 다치지 않게 하려다 보니 극도로 조심스러운 동작이 요구되는데, 무엇보다 뜨거운 수증기가 올라오는 찜기 위에 손을 올리고 이 동작을 하는 것이 고통스럽다고 한다. 이들은 남들보다 크고 뜨거운 것을 잘 만지는 손을 가진 사람이 더 좋은 차를 만든다고 말한다.

힘들게 데쳐낸 찻잎은 물을 뒤집어쓴 모양새다. 이 수분을 날려보내기 위해 불이 들어오는 구들장 위에 올려놓고 비빈다. 잎을 비비는 사이 밑에서 올라오는 열에 수분이 마른다. 이렇게 만들어진 차가 ‘은시옥로차’다.

일본에서는 옥로차 잎 색을 더욱 진하고 산뜻한 초록색으로 만들기 위해 차나무에 그물을 쳐서 햇빛을 가려준다.
▶은시옥로차 만드는 방법 일본으로 고스란히 건너가

은시옥로차는 바늘처럼 길게 일자로 뻗은 것이 특징이다. 이런 모양을 만들기 위해 매우 오랫동안 찻잎을 앞뒤로 비벼준다. 무작정 비비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복잡하고 어려운 10여가지 동작을 연속해서 해줘야 한다.

몇 년 동안 봄이면 은시옥로차를 구해서 마시고 있다. 아주 짙은 초록색의 가는 바늘 같은 은시옥로차를 마실 때는 유리잔을 준비한다. 다른 차를 우릴 때는 전문적인 도구를 사용하지만 아주 어린싹으로 만든 녹차를 마실 때는 유리잔을 많이 쓴다. 그래야 차를 마시는 동안 건조한 잎이 수분을 만나 펴지는 아름다운 모습을 관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긴 유리잔에 뜨거운 물을 붓고 (80도 정도로 식힌 물이 적당하다.) 은시옥로차를 물 위에 올려 놓는다. 가벼운 찻잎은 물 위에 떠 있다가 물을 머금으면 이윽고 아래로 천천히 내려간다. 찻잎은 위아래로 흔들리면서 몸을 편다. 잎은 금방 차나무에서 따 온 것처럼 싱싱한 초록색으로 보인다. 뜨거운 수증기에 들어갔다 나온 시간이 짧기 때문에 본래 잎의 엽록소를 많이 보존하고 있는 까닭이다. 탕색도 초록색이다. 잘 만든 은시옥로차에서는 난향이 난다. 은은한 난향을 풍기는 아름다운 초록색 은시옥로차를 마시면 비로소 봄이 온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중국 전역의 차 가공자들이 찜통을 버리고 무쇠솥으로 갈아탈 때 왜 은시의 가공자들은 찜통을 고수했는지 알 것도 같다. 전통을 지키겠다는 의지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렇게 버틴 결과, 은시옥로차는 이제 매우 특별한 차가 됐다. 중국에서 만들어지는 녹차가 무려 1000종이나 된다고 한다. 그 많은 녹차들이 봄철마다 시장에 쏟아져 나온다. 아무리 대단한 차 애호가라도 평생 이름도 들어보지 못하는 녹차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은시옥로차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은시옥로차는 중국 10대 명차다. 모든 차를 통틀어 가장 유명한 10가지 차에 들어가는 것이다. 이쯤 되면 뜨거운 수증기에 손을 데어가며 차를 만들어도 가치가 충분히 있는 것이 아닐까, 기를 쓰며 은시옥로차를 구해 마시며 행복해하는 스스로를 보며 ‘이것이 은시옥로차의 전략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한편, 은시옥로차를 만드는 방법은 이후 고스란히 일본으로 건너갔다. 일본 사람들은 중국에서 배워간 방법 그대로 찻잎을 따다 수증기로 쪄서 차를 만든다. 일본 사람들도 이 차를 옥로차라고 부른다. 그러니까 일본 사람들은 수증기로 쪄서 차 만드는 방법은 물론 이름까지 통째로 가져간 것이다.

[신정현 죽로재 대표]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37호 (2021.12.08~2021.12.14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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