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추적] 결석 7번 조퇴 4번해도 몰랐다..또 '정인이' 만든 사회 시스템
정서행동 특성검사도 낮은 점수
학교 측 "학대 의심 징후 없었다"
친구들 "창백해서 걱정 많이해"
"아동, 학대 고백해도 갈 곳은 집 뿐
시설로 보내질까 두려워 참고 견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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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이법’ 첫 적용 … 남해 계모 의붓딸 살해사건
![지난달 23일 계모의 폭행으로 위중한 딸을 안고 구급차로 나오고 있는 아버지 모습. [사진 경남소방본부]](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107/07/joongang/20210707000503162racd.jpg)
지난달 22일 오후 9시 30분 경남 남해군 한 아파트. 계모 A씨(40대)가 의붓딸 B양(13·중학교 1학년)을 마구 때리기 시작했다. 덩치가 큰 A씨는 또래에 비해 왜소한 B양을 손으로 밀고 발로 차거나 복부를 밟기도 했다. 2시간 가까이 계속된 폭행은 A씨가 화장실에서 B양을 밀쳐 변기에 부딪힐 때까지 계속됐다. A씨는 경찰에서 “(딸이) 몸에 힘이 빠지고 숨을 제대로 못 쉬어 때리는 것을 멈췄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경남경찰청 여성청소년범죄수사대가 밝혀낸 B양 사망 당시 폭행 상황이다. 경찰은 A씨가 폭행 직후 B양의 몸 상태가 극도로 나빠져 사망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즉시 구호 조처를 하지 않아 사망에 이르렀다고 판단했다. 지난 3월 신설된 이른바 ‘정인이법’(상습학대 및 아동학대 살해혐의)을 처음으로 적용해 지난 1일 A씨를 검찰에 송치한 이유다.
조사 결과 A씨는 B양의 상태가 더 나빠졌는데도 곧바로 119에 신고하거나, 병원으로 옮기지 않고 오후 11시 30분에야 별거 중인 남편에게 연락을 시도했다. A씨의 연락을 받은 남편이 집에 도착한 시각은 다음날 오전 2시 30분쯤이다. 남편은 경찰에서 “(도착하니) 이미 아이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고 진술했다. 그러고도 두 사람은 실랑이 끝에 2시간이 지난 4시 16분쯤 119에 신고했다.
![이틀 뒤 계모가 창원지방법원 진주지원에서 영장 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진주경찰서를 빠져 나오고 있다. [뉴스1]](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107/07/joongang/20210707000503270viox.jpg)
A씨는 남편과 이혼 서류를 법원에 접수한 날 B양을 살해했다. 이날 오후 9시쯤 자녀 양육 문제로 남편과 전화로 크게 다투었고 그 직후 B양을 폭행했다는 것이 경찰 조사 내용이다. A씨는 현 남편과 7~8년 전쯤 결혼한 뒤 올해 3월부터 별거에 들어갔다. 경찰은 지난해 여름부터 A씨가 B양을 폭행하기 시작했고, 별거에 들어간 뒤 폭행이 심해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B양은 오랫동안 계모로부터 학대를 당하면서도 이를 알리지 못하고 견디다 결국 죽음에 이른 것으로 드러났다. 곳곳에서 학대 징후가 포착됐지만, 우리 사회 시스템은 그걸 발견해 내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B양은 ‘또 다른 정인이’가 돼 우리 곁을 떠났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앙일보는 B양이 보낸 ‘SOS(구조신호)’가 무엇인지, 왜 중학생인데도 학대 사실을 말하지 못했는지 그 내면 심리를 경찰 조사 결과와 전문가 분석을 토대로 다시 되짚어봤다.
B양이 가장 직접적으로 보낸 SOS는 지난 5월쯤이었다. 계모로부터 폭행을 당한 5월 중순 B양은 도망치듯 친척 집으로 갔다. 거기서 친척에게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취지로 말했다. 계모로부터 폭행을 당했다고 직접 말하지는 않아 친척은 단순히 어리광 정도로 여겼다. 그래서 계모가 다시 B양을 데려갔다. 돌아와서 B양은 또 계모에게 맞았다.
B양은 이전에도 가출을 했다. 지난 4월 16일 오후 8시 32분이었다. B양은 9시 50분쯤 인근 아파트 옥상에서 발견됐지만, 행적이 이상했다. “친구들과 아파트 옥상에 올라갔고, 거기서 놀다 잠이 들었다”고 했지만, 그 친구가 누군지, 왜 옥상으로 가 잠이 들었는지 등에 대해서는 제대로 답변을 못 했다. 경찰은 멍 자국 등 이상 증상이 없고, “부모로부터 맞았다”는 진술도 없어 B양을 집으로 돌려보냈다. 당시 B양을 면담했던 경찰은 “이상한 느낌은 있었지만, 학대 의혹은 B양이 여러 차례 부인해 되돌려 보냈다”는 취지로 말했다.
B양이 죽기 며칠 전에는 A씨가 밀어 문에 부딪히며 머리가 찢어지는 폭행을 당했다. 그러나 A씨는 반창고만 머리에 붙여줬다. 경찰이 병원 진료 기록과 학교 출결 상황 등을 파악한 뒤 A씨를 추궁해 실토 받은 폭행만 지난해 여름부터 최근까지 모두 4건이다.
B양이 이렇게 장기간 계모로부터 폭행을 당했지만, 학교 등은 까맣게 몰랐다. 학교 측은 “무단결석도 없고, 학교에서 실시한 정서·행동특성검사에서도 별다른 이상은 없는 등 학대 의심 징후는 없었다”고 했다.
경찰 조사 결과는 달랐다. 친구들은 걱정이 많았다고 한다. 친구들은 경찰에서 “(B양이) 평소 몸이 안 좋아 자주 엎드려 있었고 얼굴이 창백해서 걱정을 많이 했다”고 했다. 특히 B양은 올해 3월 입학 후 7일간 결석을 했고, 6월에만 4차례 병 관련 조퇴를 했다. 정서·행동 특성검사에서도 상식 밖의 낮은 점수가 나왔는데도 “전혀 이상한 점을 눈치채지 못했다”는 게 학교 관계자의 말이다.
6월 초에는 장염 증세로 병원도 갔다. B양의 사인을 조사한 부검의는 “외부 충격에 의한 장기손상”을 사인으로 꼽았다. 그러면서 “5월쯤 장기출혈이 있었던 흔적이 있다”고 말했다. 경찰은 이를 근거로 계모로부터 “5월 중순에 배를 밟는 등 폭행을 했다”는 진술을 받았지만, B양이 6월 초에 병원에 간 것이 이 때문인지는 확인을 못 했다. 계모는 “사건 발생 얼마 전 의붓딸을 씻기면서 배가 부풀어 있는 것을 봤다”는 진술도 했다.
경찰 관계자는 “아이가 계모로부터 오랫동안 폭행을 당하면서도 그 사실을 남들에게 숨기고 싶어 혼자 괴로움을 삭인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아동들은 학대 사실을 다른 사람에게 말해도 다시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고, 아니면 집이 아닌 다른 시설로 가야 한다는 두려움 때문에 폭행 사실을 말하지 못하고 견디는 경우가 많다”며 “결국 학교 등 사회가 아동학대에 대해 더욱 민감해져야 이런 위기 아동들을 제때 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위성욱 기자 we.sung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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