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남시'의 '아수라'..망작의 역주행, 영화 아닌 다큐 찍었나 [안혜리 논설위원이 간다]

영화 '아수라'(2016)는 개봉 당시 희대의 망작으로 통했다. 황정민·정우성·주지훈·곽도원에 정만식·김원해까지, 스타성과 연기력을 두루 갖춘 배우들을 한데 모은 초호화 캐스팅으로 화제가 된 대작(제작비 120억원)이었고, 이 배우들이 전부 최고 인기 예능 '무한도전'(MBC)에 나와 몸을 불사르며 주말 동시간대 시청률 1위(13.8%)를 기록했다. 하지만 정작 영화는, CJ의 막강한 배급력으로 개봉 4일 만에 관객 100만을 넘겼으나 흥행은커녕 손익분기점(관객 300만명)에도 한참 못 미쳤다.
개봉 전 기대감은 개봉 후 급전직하했다. 개연성, 그러니까 김성수 감독이 직접 쓴 각본이 가장 큰 문제로 꼽혔다. "요즘 시대에 맞지 않는 올드한 느낌"(이동진 평론가)이라는 평은 그나마 점잖은 축이었다. 배우 황정민이 연기한 빌런(악당) 중의 빌런인 안남시장 박성배라는 인물이 특히 극에 몰입하는 데 방해가 된다는 혹평이 평론가뿐 아니라 관객들 사이에서 이어졌다. 주민 투표로 당선된 민선 시장인데 회칼 휘두르는 깡패 전주(錢主)와 어울리며 현직 경찰을 충견 삼아 부동산 개발 비리로 뒷돈 챙기는 건 기본이고 자기 머리에 커터칼을 들이대는 자해에다 자신의 충성스런 최측근을 없애라는 살인교사까지 서슴지 않는 폭력적인 행동은 조폭 두목과 다를 바 없어 현실성이 떨어져도 너무 떨어진다는 반응이 지배적이었다. 차라리 그냥 악당이기만 했으면 또 모르겠다. 독기서린 눈빛과 사이다 같은 돌발 행동으로 시의회 의원들을 제압하고 언론플레이로 검찰을 압박하며, 화려한 언변으로 시민 지지를 이끌어내는 유력 정치인다운 모습까지 섞은 캐릭터이다 보니 대중이 "도저히 공감할 수 없다"며 외면했다.
안남시라는 공간도 문제였다. 정치인과 경찰·철거민·범죄자가 뒤엉켜 불법과 비리, 폭력이 난무하는 무법 도시로 묘사된 가상의 안남시는 근대화 이전도 아닌 2016년 대한민국의 도시라고 하기엔 너무 시대착오적이었다. 아니, 그땐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취재를 열심히 했다는 감독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현실성 제로(0)'라고 조롱받았던 '아수라'가 지금 역주행 흥행몰이 중이다. 코로나 19 와중에도 극장을 달궜던 일본 애니메이션 '귀멸의 칼날'을 비롯해 신작이 즐비한 와중에 2016년작 '아수라'가 4일 현재 넷플릭스의 '오늘 한국의 톱10 영화' 4위를 기록하고 있다. 매일 1위 영화는 바뀌어도 '아수라'는 상위권에 계속 머물고 있다. 검색량으로는 전 세계적 화제작 '오징어 게임'과 '종이의 집'(스페인 드라마)에 이어 가장 많다. 개봉 5년 만의 역주행은 개봉 당시 비현실적이라고 외면받았던 스토리가 그 어떤 다큐멘터리보다 더 사실을 담고 있는 게 아니냐는 입소문이 나면서부터다. 재밌는 건 '아수라'의 역주행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2년 만에 손익분기점 넘기며 재평가
배우 황정민은 지난 2018년 신작 '공작' 개봉 당시 "최근 '아수라'가 손익분기점을 넘겼다"며 "개봉 당시 이런 반응이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조금 아쉽다"고 말했다. 실제로 '아수라'는 IPTV 다운로드 1위에 오르는 등 VOD 수익에 힘입어 개봉 2년 만에 손익분기점을 넘겼다. 통상 개봉 직후 영화에 관심이 쏠리는 걸 고려할 때 개봉한 지 2년 지난 영화가 주목받는 건 상당히 이례적이었다. '아수라'의 깜짝 인기엔 TV 시사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그알·SBS)'가 있었다. 그알 취재진은 이재명 경기지사가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던 시절 성남 국제마피아파 조직원의 변호를 맡았고 이후로도 계속 인연을 이어오는 등 지역 조폭과 연루·유착한 의혹이 있다고 보도했다.

![김은혜 의원(국민의힘)은 대장동 주민들에게 공익감사청구 서명을 받았다. [김은혜 의원실]](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110/05/joongang/20211005061808574tihr.jpg)
실제 정치인 사진 건넨 감독
지금 SNS에선 '아수라'와 현실의 연결고리를 찾는 숨은 퍼즐조각 찾기라는 놀이 아닌 놀이가 진행 중이다. 이미 지난 2018년 그알 방영 당시 화제가 된 몇몇 장면 외에 대중을 놀래킨 건 박성배 시장이 자신을 집요하게 좇던 검사 김차인(하필 배우 이름이 '곽'도원이다)에게 "사건을 묻어달라"며 뇌물 50억원(영화 속 정확한 표현은 "앞에는 5")을 제시하는 장면이다. 공식적으로는 2002년 분당 파크뷰 사건으로 이 지사와 처음 악연을 맺었던 곽상도 의원의 아들이 이 지사와 가까운 사람들이 포진된 화천대유 직원으로 입사 7년만에 50억원의 퇴직금을 받았다는 게 묘하게 겹쳐지기 때문이다.
박성배 시장의 최측근이었지만 검찰의 감시망이 좁혀오자 결국 자살을 위장해 살해당한 은충호 비서실장 상갓집에 서 있는 조화 중 하나인 '한성급유 이성한'이라는 이름도 화제다. 화천대유를 연상시키는 회사 이름에다 화천대유 자회사 천화동인의 대표이자 이화영 의원 보좌관 출신인 이한성 대표 이름과 너무나 유사해서다. 영화 마지막엔 물론 “모두 허구적으로 창작된 것…만일 실제와 같은 경우가 있더라도 이는 우연에 의한 것”이라는 자막이 달려 있다.
![‘아수라’ 주연 배우들과 함께한 김성수 감독(맨 오른쪽). [중앙포토]](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110/05/joongang/20211005003233502dqyh.jpg)
다시 영화로 돌아와서. 영화 도입부에서 박성배 시장은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기소돼 벌금 350만원을 받고 시장직이 박탈될 뻔했으나 항소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아 시장직을 유지해 반전의 기회를 잡는다. 그리고 마치 현실을 예견이나 한듯 몇년후 똑같은 장면이 재연된다. "사법부가 정의로운 판결을 해 줘서 다행"이라는 영화 속 대사가 “공정하고 올바른 판단을 내려주신 대법원에 감사드린다”로 바뀌었지만. 그렇다면 "갈 때 가더라도 줄줄이 싹 다 엮어서 같이 가려고"라며 끝내 피비린내 나는 아수라판으로 끝나는 결말도 과연 같을까. 지켜볼 일이다.
안혜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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