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노년엔 한 동네서 친구들과 텃밭 일구며 살고 싶다
[더,오래] 김현주의 즐거운 갱년기(71)
“나이 들고, 애들 독립하면 한 동네에 모여 살자. 텃밭도 같이 일구고, 운동도 같이 하고. 서울이 아닌 흙 밟고 살 수 있는 곳에서.”
친구들과 종종 해오던 이야기다. 백 살까지 산다는데, 도대체 뭘 하면서 어떻게 지내야 하는건지 걱정이 앞선다. 마음 맞는 친구들끼리 한동네에 살면서 시간을 보내야 하지 않을까란 생각을 막연하게 해 볼 뿐이다. 마침 지난주 ‘세 할머니의 유쾌한 동거’란 제목으로 KBS에서 다큐멘터리가 방송됐다. 68세 동갑내기 세 여성이 함께 거주하며 공간을 공유하고 서로를 돌보는 모습을 담았는데, 좋은 대안을 찾은 것 같아 흥미롭게 지켜봤다.
자신들이 마련한 공간을 ‘노루목 향기’라고 이름 붙이고 4년째 함께 살아오고 있는 이들은 젊은 시절부터 오랜 시간 알고 지낸 직장동료, 친구 사이다. 이전에는 몰랐는데 막상 함께 지내니 사소한 것에 많이 부딪쳤다고 기분 좋게 웃어넘기는 이 친구들은 공간을 구분하고, 안팎의 일을 나누며, 역할을 새로이 만들어간다. 돌봄의 범위도 확장한다. 마을 내 노인들을 집으로 초대해 문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등 더 많은 이들과 즐겁게 사는 방법을 시도하고 실천한다. 잠깐 화면을 통해 보았지만 이 세 친구의 표정에는 불안하거나 외롭거나 무료한 느낌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젊은 시절 가졌을 만한 에너지가 엿보인다. 물론 그때와 달라진 건 분명히 있을 것이다. 조급함 없이 주어진 시간을 온전히 느끼며 즐기고 있다는 것! 나도 저럴 수 있어야 할 텐데, 부러웠다.
중년이 되니 이후 시간이 더 가까워 보인다. 10년 전 나는 오십 이후의 나를 떠올려 본 적도 걱정해 본 적도 없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5년 뒤, 10년 뒤, 아니 그 이후 시간까지 가늠해 보고 그때를 위해 지금부터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건지 생각해보곤 한다. 분명 생의 주기를 볼 때 큰 분기점을 넘었고, 그래서 변화가 생긴 게 틀림없다.
‘인생 4계절론’을 펼친 심리학자 다니엘 래빈슨은 인생주기 중 세번 째에 해당하는 성인 중기(중년)를 40~65세로 본다. 40대는 성인 전기(청년기)에서 중기로 전환되는 시기, 즉 중년의 인생구조로 첫발을 떼는 때이며, 50세부터 65세까지는 다음 세대의 인생(성인 후기) 즉 노년을 준비하기 위한 기초와 기반을 마련하는 시기라고 설명한다. 물론 중년의 시간 안에서도 자신을 탐색하고 목표를 세우며 성취해가며 그 시기의 절정을 맞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 시기에 경험하는 확실한 것은 생물학적 능력은 감소하고 사회적 책임은 커진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전보다 힘들다고는 말하지는 않는다. 이미 여러 생의 경험을 통해 상황에 몰두하는 방법, 그것을 판단하고 해결해 나가는 지혜가 생겼기 때문이다.
얼마 전 출간된 책인데, 제목이 눈에 띄어 한참을 들여다봤다. 세계의 싱크탱크라 불리는 브루킹스 연구소의 수석연구원이 쓴 『인생은 왜 50부터 반등하는가』(조너선 라우시 지음/김고명 옮김/부키)인데, “청춘은 최고의 시절, 중년은 위기의 시간, 노년은 최악의 시기”라는 통념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경제학, 심리학, 신경생물학, 신경과학, 정신의학, 사회학 등 각 분야의 연구와 석학과의 만남, 중년 이상의 성인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를 통해 차근차근 설명해 낸다. 인생의 만족도는 ‘∩’가 아닌 ‘U’자 모양으로 변한다는 것이다. 책 제목은 중년은 만족스럽게 인생을 느끼는 노년을 위한 전환기이며 리부팅의 시기라는 그의 연구를 그대로 적어낸 것이다.
그러고 보니 50대가 되니 정서적으로 안정이 얻은 듯하다. 큰 변화도 있었고 상심에 빠졌던 일도 생겼지만 이전만큼 감정에 휩싸이거나 오랜 시간 스트레스에 빠져 있지 않았다. ‘벌어질 수 있는 일이다’,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거다’라는 마음을 갖고 지금 내가 함께하는 사람과 내가 경험하는 일의 가치에 더욱 몰두하게 됐다.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이 준 지혜가 조금씩 발현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50대의 내 모습을 두고 생각해 보면 이후 맞이하게 될 60대와 70대도 기대가 된다. 더 많은 경험을 바탕으로 상황을 판단하고 대안을 제시해가며 살아갈 수 있으리라.
“우리는 노년을 어디서 누구와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할까”. 다큐멘터리에 등장한 여성이 전한 문장을 되새기며 급하지 않게 하나씩 준비해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전 코스모폴리탄·우먼센스 편집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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