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사랑 상대가 내 친구를 좋아한다?.. 대만 청춘영화의 시초
[김형욱 기자]
▲ 영화 <남색대문> 포스터.? |
ⓒ 오드 |
대만 영화는 우리에게 알게 모르게 친숙하다. 허우샤오시엔, 차이밍량, 에드워드 양처럼 대만을 넘어 세계를 호령한 예술영화 감독들이 있고 2000년대 들어 청춘과 멜로와 로맨틱 코미디가 주류를 이뤄 한국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다. 2020년대인 지금까지도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대만 특유의 분위기와 시대상과 캐릭터들이 모두 한국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대만 청춘 멜로의 시초, 정확히 말하면 한국에서도 큰 인기를 끈 대만 청춘 멜로의 시초라고 하면 단연 2007년작 <말할 수 없는 비밀>이다. 주걸륜이 연출했고 주걸륜과 계륜미가 주연을 맡았다. 그런데 그보다 5년 전인 2002년에 대만 청춘 멜로의 진정한 새로운 시작을 알린 작품이 있었다. 계륜미의 데뷔작이기도 한 <남색대문>이 그 작품이다. 20여 년만에 처음으로 우리를 찾아왔다.
세 청춘의 찬란하고 혼란했던 시절
17살 소녀 시대를 지나고 있는 멍커로우, 그녀에겐 절친 린위에전이 있다. 린위에전의 주된 관심사는 장시하오다. 린위에전과 같은 학교 학생인 장시하오는 한밤중에 몰래 홀로 수영장을 이용하는데, 린위에전이 그 사실을 알고 멍커로우에게 같이 가자고 꼬드긴다. 멍커로우는 린위에전을 대신해, 린위에전이 장시하오를 좋아한다고 장시하오에게 말한다.
처음 마주친 멍커로우와 장시하오, 멍커로우는 장시하오에게 전혀 관심이 없는 것 같은데 장시하오는 적극적으로 자기소개를 하며 멍커로우에게 다가간다. 이후 계속해서 부끄러워하는 린위에전을 대신해 장시하오에게 린위에전의 마음을 전하는 멍커로우, 그래서 계속 마주칠 수밖에 없다. 그럴수록 장시하오는 멍커로우를 더 좋아하는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장시하오에게 보내는 린위에전의 편지에 멍커로우의 이름이 써 있는 게 아닌가? 그 때문에 멍커로우와 린위에전은 멀어지고, 멍커로우는 자신의 마음을 알아보고자 장시하오에게 다가간다. 하지만 그녀는 장시하오를 좋아할 수 없다는 자신의 마음을 다시금 확인하는데. 그녀는 왜 장시하오를 좋아할 수 없는 걸까? 장시하오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린위에전은 왜 그렇게 행동했던 걸까? 세 청춘의 찬란했던 고등학교 시절이 펼쳐진다.
현재를 고민하고 미래를 상상하는 청춘들
'청춘'이라는 말, 만물이 푸른 봄철이라는 뜻으로 인생의 젊은 나이 또는 시절을 가리킬 텐데 정작 청춘은 청춘을 잘 모르고 청춘이 지난 이들이 청춘을 잘 안다. 청춘이 청춘에 만족할 리 만무하고 하루빨리 시간이 지나 안정적인 어른이 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남색대문>은 대만 청춘 영화의 색깔을 정의한 작품이다. 영화 속 고등학생 청춘들은 현재를 고민하고 미래를 상상한다.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고민하고, 성 정체성이 뭘지 고민하며, 끊임없는 반복으로 진실 또는 진짜에 가닿으려고 한다. 고통에 매몰되거나,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거나, 찬란할 것 같은 미래만 꿈꾸지 않는다.
지극히 평범한 이야기 속에 심오한 고민이 담겨 있다. 그러며 청춘의 모습을 그리는 것 자체로 하염없이 아름답고 찬란하기에, 이 사실을 아주 잘 아는 듯한 감독은 자연스러운 연기와 연출이 주를 이루게 했다. 계절이 여름인 점도 아주 탁월한 선택으로 보인다.
다분히 청춘의 입장에서
어른이 되면, 해야 할 것도 생각해야 할 것도 챙겨야 할 것도 들여다봐야 할 것도 많아지기 마련이다. 그런 어른의 시선과 관점으로 청춘을 들여다보면, 참으로 보여 줘야 할 게 많을 테다. 그렇지만, 정작 청춘의 입장에서 세상은 단순할 것이다. 이 영화는 그중에서도 친구 관계만을 보여 줬다. 두 주인공 또는 세 주인공의 학교 생활이나 가정 환경을 보다 조금이라도 세세하게 보여 주려 하지 않았다.
철저하게 친구 관계만을 보여 주는 한편, 이상하리만치 반복적인 말과 행동이 보인다. 이상 행동으로까지 비춰질 수 있을 정도인데, 조금만 달리 생각해 보면 당연하다 싶다. 궁금하고 고민스러우며 혼란스러운 나 그리고 우리를 있는 그대로 표현하면서, 숨김없이 보고 싶다는 생각의 발로이기도 한 것이다. 같은 말과 행동을 반복하다 보면 맥락이 잡히고 보이지 않던 게 보일 때가 있지 않은가.
혹자는 이 영화를 보고 요즘 느낌, 세태와 동떨어져 의미가 퇴색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테다. 또는 매우 전형적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상당히 서투르다고 말할 수도 있을 테고. 하지만, '전형'의 시작을 돌아보는 건 의미 있는 일이다. 더불어, 이 영화를 보며 의미 부여만 하지 않을 테니 재미와 감동도 한껏 느끼고 받을 게 분명하니 실망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여름이 끝나가는 지금, 아니 언제나 돌아올 여름이면 <남색대문>이 생각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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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김형욱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singenv.tistory.com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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