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가족] 대화 중 멍 때리고 집중력 부족 의지 문제 아닌 '조용한 ADHD'일 수도

이민영 2021. 11. 1.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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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진단되는 성인 환자 증가

"'부주의함 우세형' 발견 쉽지 않아
잦은 성취 좌절로 우울·불안 증상
약·상담, 행동 교정 등 활용해 치료"


김모(27)씨는 대학 졸업 후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지만 연달아 떨어지면서 자존감이 낮아졌고,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며 우울감에 시달리다 병원을 찾았다. 돌이켜 보니 어린 시절부터 책 읽기가 힘들고, 한 문장을 여러 번 반복해서 읽어야만 간신히 이해되는 편이었다. 부주의한 실수가 잦아 물건을 잘 잃어버리고 일정을 깜빡하는 일이 잦았다. 친구 관계에서는 하고 싶은 말을 조리 있게 전달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김씨의 주치의인 서울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유재현 교수는 “김씨는 진료와 검사에서 ‘주의력 결핍 과다 행동 장애(ADHD)’와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현재 약물과 상담치료를 병행하며 점차 나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ADHD는 소아청소년기에 산만하고 부주의한 행동으로 문제를 일으키는 질환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최근 김씨와 같은 성인 ADHD 환자 진단이 증가하면서 20~30대에서 질병에 대한 관심이 높다. 전체 ADHD 환자 중 20~30대의 비율은 2016년 9.6%에서 2020년에는 27%로 증가했다. 유재현 교수는 “그동안 ADHD와 관련해 산만함과 과잉행동 증상이 강조됐다면 최근엔 주의집중을 잘하지 못해 늘 한계에 부딪히고 성취가 좌절되면서 반복적으로 어려움을 느끼는 젊은 층에서 뒤늦게 진단되는 경우가 많아지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유 교수는 이어 “ADHD는 뇌 신경 발달장애의 일종으로, 성인이 된 이후에 갑자기 발생하는 질환은 아니다”고 덧붙였다.

폭음·과소비 등 충동조절 문제도

ADHD의 특징적인 증상은 ‘부주의함·주의산만’과 ‘충동성·과잉행동’이다. 이 두 가지가 함께 나타나는 유형이 가장 흔하다. 그다음으로 ‘부주의함 우세형’이 흔한데, ‘조용한 ADHD’로 불리는 이 유형일 땐 어린 시절에 ADHD인 줄 모르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 성인에서는 말을 빠르게 많이 하거나 가만히 있는 것을 힘들어하는 ‘과다행동’은 빈번하지 않은 편이다. 유 교수는 “부주의함 우세형의 경우 공상에 빠지거나 집중을 잘하지 못하는 행동을 보이는데, 주변 관찰자들은 이를 ‘멍 때리는’ 정도로만 보고 크게 문제없다고 평가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주의가 산만하고 집중이 안 되는 증상 때문에 본인이 성취할 수 있는 폭에 비해 성취 경험이 적어지면서 문제가 발생한다. 주변에서는 의지의 문제라고 생각해 ‘고쳐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낮은 성취감과 주변의 부정적인 평가가 반복되면 자존감에 영향을 받으면서 우울·불안 증상을 보인다. 폭음이나 과소비 같은 충동조절 문제를 동반할 때도 있다. 유 교수는 “충동적인 성향이 있으면 우울·불안을 해결하기 위한 다른 방법을 검토하지 못하고, 과소비하거나 알코올에 의존하는 간단한 해결책으로 잠시 기분을 좋게 하는 방법을 사용한다”고 말했다.

본인이 좀 부주의해도 인지 기능이 높아서 수행능력이 뒷받침되면 ADHD로 인한 어려움이 뒤늦은 시기에 나타나기도 한다. 유 교수는 “인지 기능은 단순히 학업 성취만을 뜻하는 건 아니고, 환경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의 총체적인 집합”이라며 “ADHD가 있으면 점차 처리해야 할 복잡한 업무와 대인관계로 인해 자신의 보완 노력만으로는 한계를 느끼는 시기가 올 수 있다”고 말했다.

반복적인 성취의 실패로 학업·직업, 대인관계가 힘들면 치료가 필요하다. 하지만 성인은 ADHD여도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의 증상에 익숙해져 성격으로 여기고, 문제를 낮게 평가하기도 한다. 유 교수는 “환자 중엔 지속적인 관계 형성을 어려워하는 경우가 많다”며 “대화할 때 집중하지 못해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못하고 사회적인 신호를 잘 읽지 못하는 게 반복되면 깊이 있는 인간관계 형성이 힘들다”고 말했다.

어린 시절 과거력 있어야 진단

성인 ADHD는 다양한 증상이 공존하고, 질환에 따른 증상이 명확히 구별돼 있지 않다. 집중의 어려움과 충동성을 이유로 성인 ADHD를 의심하고 왔지만 우울증·불안 장애로 진단을 받기도 한다. 이런 질환들도 인지 기능에 영향을 주고 집중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

ADHD가 증상의 원인인지 의심될 땐 어렸을 때 상황을 객관적인 증거를 기반으로 되짚어 봐야 한다. 유 교수는 “ADHD로 인한 과거력이 있었는지 부모님·본인의 기억과 생활기록부 등을 참조해 가면서 퍼즐 조각을 맞춰 나가듯 검토해 봐야 한다”며 “어린 시절부터 주의산만 문제가 시사되고, 어려움을 경험했다고 보이면 치료를 통해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성인 ADHD 치료에는 약 복용과 상담치료, 행동 교정 등을 복합적으로 활용한다. 유 교수는 “특수 코팅된 치료 약은 하루 7~12시간 효과가 지속하는 데 내성이 크게 문제되는 건 아니지만, 부작용으로 영향을 받으면 주말엔 약을 먹지 않는 식으로 조절해도 된다”며 “약물치료와 함께 증상을 조절하는 생활습관을 실천해야 한다”고 말했다.

시간·일정을 관리하는 게 힘들면 핸드폰 애플리케이션과 알람을 활용해 시간에 맞춰 행동하는 습관을 익힐 수 있다. 충동으로 분노가 올라올 땐 호흡을 하며 이완시키거나 머릿속으로 숫자를 세면서 잠시 주의를 분산시키는 방법으로 감정적 대처를 줄인다. 충동성으로 인한 불이익을 감소시킬 수 있다. 유 교수는 “ADHD는 본인의 의지로 선택한 문제가 아니다”며 “자신감을 갖고 치료하면 증상을 조절할 수 있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거쳐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꾸려 나갈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민영 기자 lee.mi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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