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 얕잡아봤다.."옥상 탈출 없다"던 바이든의 오판

박현영 2021. 8. 16. 19:0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바이든, 7월 기자회견서 "카불과 사이공 달라"
한달 뒤 대사관에서 헬기로 미국인 실어날라
아프간군 과대평가하고,탈레반은 과소평가
정보기관·국방부, 탈레반 장악 예측 빗나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AFP=연합뉴스]


#1. "아프가니스탄에 있는 미국대사관 옥상에서 사람들을 실어나르는 것을 보는 상황은 없을 겁니다."

지난 7월 8일 미국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은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 철수 상황이 베트남전 당시 미군의 '사이공 탈출'과 유사점이 있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그로부터 약 5주 뒤 바이든 대통령이 볼 수 없을 것이라고 장담한 상황이 그대로 벌어졌다.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이 수도 카불을 함락시킨 15일(현지시간) 네드 프라이스 국무부 대변인은 "모든 대사관 인력의 안전한 탈출이 완료됐다"고 밝혔다.

이날 온종일 헬기가 대사관을 오가며 인력 전원을 미군이 지키고 있는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 내 부지로 이동시켰다.

#2. "탈레반이 모든 것을 제압하고 국가 전체를 소유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같은 기자회견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탈레반이 아프간을 손에 넣을 가능성을 일축했다. 하지만 이 역시 바이든 말대로 재연됐다. 탈레반은 이달 초 주요 도시 공략에 나선 지 열흘도 채 안돼 모든 주도(州都)를 장악하면서 20년 만에 아프간을 탈환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희망한 "질서 있고 안전한 철수"가 실패로 돌아가면서 언제부터 무엇이 잘못됐는지 되짚어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우선 바이든 행정부가 아프간 정부군을 과대평가하고, 탈레반을 과소평가한 것을 주요 패인으로 꼽는다. 미국은 외형적인 조건을 토대로 아프간 정부군이 탈레반을 물리칠 충분한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주장해왔다.

바이든 대통령은 "아프간군은 세계 어느 군대보다 좋은 장비로 무장한 군인 30만 명을 보유하고 있는데, 이들이 맞서는 탈레반은 7만5000명"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지난 20년간 아프간군과 경찰에 각종 무기를 제공하고, 이들을 훈련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1조 달러(약 1170조원) 가까이 들었다"고 했다. 게다가 탈레반이 갖추지 못한 공군을 보유해 방어 능력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작 아프간군에게 가장 필요한 정신력과 의지가 결여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탈레반은 카불에 진입한 당일 대통령궁까지 접수하는 데 몇 시간 걸리지 않았다. 정부군은 저항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의 한 전직 장성은 공영라디오 NPR 인터뷰에서 "아프간군을 탈레반처럼 키웠어야 했는데, 미군처럼 키운 게 패착"이라고 지적했다. 아프간군을 재건할 때 미군처럼 외부 적으로부터 국경을 보호하는 데 초점을 맞췄으나, 이는 탈레반 같은 내부 반란군과 싸우는 데는 부적절했다는 것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15일 대통령 별장 캠프 데이비드에서 화상으로 국가안보 참모들과 회의를 했다. [AP=연합뉴스]


바이든 행정부는 미군이 떠난 뒤 탈레반이 아프간을 점령하는 데 걸릴 시간 예측 또한 완전히 빗나갔다. 미군 철수가 완료된 뒤 탈레반이 아프간을 점령하리란 것은 예견했지만 그 시점을 오판했다.

미국 정보기관들은 당초 미군이 철수하고 18개월이 지나 카불 함락을 예상했다. 그러다 최근에는 카불이 90일 이내에 무너질 것으로 예상했다고 ABC뉴스가 보도했다.

당초 바이든의 철군에 반대한 국방부는 ”연내에 함락 가능성“을 경고했다. 철수 목표 시한인 8월 말을 기준으로 최대 4개월 후로 예측한 것이다.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은 지난 6월 하원 외교위원회 청문회에서 탈레반의 점령에 대해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일어나는 그런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공교롭게 탈레반은 금요일부터 기치를 올리더니 일요일에 카불에 진입해 나라를 접수했다.

탈레반과 협상을 담당한 잘메이 칼릴자드 국무부 아프간 특별대표는 지난 5월 하원에 출석해 "아프간군이 곧바로 무너질 것이라는 예측은 맞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며 아프간 정부의 총체적 몰락에 대한 공포는 잘못됐다고 언급했다.

국무부는 불과 지난주에 카불 주재 미국대사관은 철수하지 않는다고 말할 정도로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했다. 때문에 ”탈레반이 이렇게 빨리 반격할지는 누구도 예상할 수 없었다“는 반응만 되풀이하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아프간에 있는 미국인 공수작전 시점을 잡는 데도 어려움을 겪었다. 미국인과 미국에 협조한 아프간인을 항공기를 이용해 철수시키는 작업을 개시할 시점을 못 잡다가 순식간에 카불 함락을 맞닥뜨렸다.

뉴욕타임스(NYT)는 구출 작전을 일찍 시작하면 아프간 정부군이 상실감에 너무 빨리 무너질 수 있고, 늦어지면 미국인들의 안전한 탈출이 위험해질 수 있는 상황이었으며, 시점을 잡는 게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또 통역사 등 미국에 협조한 아프간인들을 미국으로 데려오기 위한 비자 발급 등 행정 절차가 느려 속도를 내지 못했다고 전했다.

바이든 정부는 현재까지 아프간에서 빠져나온 미국인과 탈출을 대기하고 있는 인원수는 공개하지 않았다. 카불 주재 미 대사관은 외교관과 직원, 계약직 등 4000여명이 근무해온 세계 최대 대사관 중 한 곳이다.

미 국방부 고위 당국자는 미국인 2만 명이 탈출 대기 중일 것으로 추산했다고 워싱턴포스트(WP)는 전했다. 전원 빠져나오는 데는 며칠이 걸릴 수 있다.

현재로서는 아프간을 떠나길 원하는 모든 미국인에게 출국을 허용한다고 탈레반이 공언하고 있지만, 상황이 언제 바뀔지 몰라 현지에서는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고 CNN은 전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미국인 구출 작전에 투입될 미군 1000명을 추가로 보내기로 했다. 기존에 승인한 5000명까지 모두 6000명의 미군이 미국인이 집결해 있는 국제공항을 지키고 있다.

워싱턴=박현영 특파원 park.hyunyoung@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