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전 사극 속 남장여인 왕세자, 그러나 이 부분은 아쉽다
[이준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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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BS 2TV <연모>의 한 장면 |
| ⓒ KBS |
KBS 2TV 월화 드라마 <연모>가 퓨전 사극으로서의 단점들을 드러내며 아쉬움을 주고 있다. 지난 2일 방송된 <연모> 8회에서는 명나라 사신의 전횡에 맞서는 세자 이휘(박은빈)과 정지운(로운)의 활약상이 그려졌다.
명나라 사신단을 영접하는 책임을 자처했던 이휘는 거듭 횡포를 부리는 조선인 출신 태감(박기웅)에게 분노를 참지못하고 결국 때려눕히고 만다. 보고를 받은 혜종(이필모)은 "널 믿은 날 이리 실망시키는구나"라며 책망한다.
말없이 눈물을 흘리는 이휘에게 정지운이 찾아와 "잘하셨다"라며 따뜻하게 안아주며 위로한다. 이휘와 정지운은 대화를 통하여 서로에 대한 오해를 풀었다. 정지운은 "오해하실만큼 부끄러운 일을 한적이 없다"고 해명하고 이휘는 "오해한 적 없다.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고 답한다.
정지운이 "그러면 왜 연회 때 저를 그리 차갑게 대하셨냐?"고 묻자 이휘는 머뭇거리다가 "나 때문에 그대가 곤란해지는 것이 싫었다"고 말한다. 정지운은 기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저도 같은 마음이다. 그러니 제게 더 이상 차갑게 대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한다.
태감은 화해를 청한다는 명목으로 술자리를 마련하여 이휘와 다시 마주한다. 태감의 진짜 목적은 이휘의 호위무사 김가온(최병찬)과 자신의 무사를 싸우게 하는 것. 이휘는 거절하고 자리를 떠나려고 하지만, 명나라 무사가 다짜고짜 공격에 나선다.
김가온은 이휘를 보호하려다가 명나라 무사가 휘두른 칼에 중상을 입는다. 정지운이 달려와 칼을 명나라 무사에게 겨누며 이휘와 김가온을 보호한다. "이러는 이유가 뭐냐"며 분노하는 이휘에게 태감은 "세자처럼 배부르게 자라 백성들을 위하는 척 가증이나 떠는 인간들을 모조리 밟아버리는 것이 내가 원하는 것"이라며 조롱한다.
태감은 공물을 두배로 늘려줄 것을 요구하며 조선을 압박한다. 고민에 빠진 혜종에게 이휘는 자신이 문제를 해결할테니 한번만 더 기회를 달라고 간곡하게 청한다. 한편 이현(남윤수)은 태감을 찾아가 그가 황실의 물건을 빼돌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있음을 우회적으로 언급하며 조용히 경고한다. 이현과 정지운은 태감이 수상한 자와 만나고 있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조용히 그의 뒤를 탐문하기 시작한다.
각자 태감을 미행하던 이휘와 정지운은 우연히 만나 정체불명의 무사들에게 습격을 받아 위기에 놓인다. 다행히 이현이 적시에 관군을 이끌고 나타나 두 사람을 구한다. 이현은 숙소로 몰래 돌아가던 태감을 붙잡아 상황을 추궁한다. 수상한 행적을 발뺌하는 태감에게 이현은 호위 강화를 명목으로 태평관을 지키는 병력을 늘리겠다고 선언하며 태감을 압박한다.
이휘 일행은 조선에서 태감과 암거래를 일삼던 일당을 생포하여 태감이 명나라 황제의 내탕금을 착복해온 기록이 담긴 비밀 장부를 획득하는 데 성공한다. 이휘는 비밀 장부를 보여주며 태감을 무력하게 만드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태감의 진짜 비밀은 황제의 후궁과 관계였다. 조선에서 연인 사이였던 두 사람은 부모에게 팔려 명나라로 건너가 각각 황실의 태감과 후궁이 되었지만 여전히 이루어질수 없는 사랑을 이어가고 있었다. 조선에게 태감과 거래하던 인물은 바로 후궁의 아버지였고, 태감은 자신을 버린 조선에 대한 적개심을 품고 있었던 것.
태감은 자신의 비밀을 알고서도 묵인한 이휘를 찾아가 속내를 추궁한다. 태감은 "만일 그 아이(후궁)을 건드린다면 절대 가만히 있지않겠다. 내 모든 걸 이용해서 너와 조선에게 복수할 것"이라며 발악한다. 하지만 이휘는 오히려 그런 태감의 사연을 안타까워하며 "너를 버린 이 나라의 세자로서 용서를 구하마, 그녀와의 비밀 역시 끝까지 묻어두겠다"고 약속한다. 태감은 이휘와의 밀약에 따라 모든 비밀을 묻어두고 조용히 명나라로 돌아간다.
모든 사건을 해결한 이휘 일행은 모처럼 술자리를 가지고 오붓한 시간을 지낸다. 이휘와 정지운은 어린 시절 함께 추억을 나눴던 궁중의 비밀 장소에서 우연히 재회한다. 술에 취한 정지운은 이휘의 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하다가 충동적으로 이휘의 볼에 입을 맞춘다. 깜짝 놀라 서로를 응시하는 두 사람의 모습에서 다음 회에 대한 궁금증을 높였다.
<연모>는 왕실의 쌍둥이로 태어나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버려졌던 아이가 오라비 세손의 죽음으로 남장을 통해 세자가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궁중 로맨스 사극이다. 이소영 작가의 동명만화를 원작으로 했으며 박은빈, 로운, 남윤수 등 청춘스타들의 출연으로 화제를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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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BS 2TV 드라마 <연모>의 한 장면 |
| ⓒ KBS |
국내 사극에서 남장여인을 주인공으로 하는 로맨스물이라는 설정은 그리 새롭지는 않다. <바람의 화원>이나 <성균관 스캔들> <구르미 그린 달빛>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연모>는 남장여인인 세자는 '왕이 되기 위해 성별을 숨길 수밖에 없는' 설정에서 기존의 생계형 혹은 해프닝에 가까운 남장여인들과는 그 비밀의 무게가 다르다.
철저한 가부장적 남성중심 사회였던 조선, 그것도 권력의 정점에 근접한 왕위 계승을 위하여 여자가 남자가 되어야했다는 설정은, 시대 배경상 성별 역할의 고정관념이 강할 수밖에 없는 사극에서 보기드문 신선한 캐릭터로 다가온다.
이휘는 쌍둥이 오빠와 엄마를 잃고 억지로 세자가 되어 남자로서의 삶을 살아야했지만, 기구한 운명에 좌절하지 않는 꿋꿋하고 주체적인 매력이 돋보이는 인물이다. 이휘는 극중에서 문무를 겸비한 만능 캐릭터로 묘사된다. 이휘가 항상 주체적으로 사건을 주도하고 정지운을 여러 번 위기에서 구해내는 모습은, 일반적인 궁중 로맨스물에서 남녀 주인공과 달리 '백마탄 왕자'과 '히로인'의 포지션이 정 반대로 바꾼 듯하다.
다만 아쉬운 부분은 매력적인 캐릭터들을 제대로 받쳐주지 못하는 드라마의 개연성과 디테일이다. <연모>가 역사 고증에 크게 연연하지 않는 퓨전 사극임을 하더라도 지나치게 억지스럽고 부자연스러운 설정들은 극의 몰입감을 떨어뜨린다.
아무리 외척이고 권신이라고 해도 대비(이일화) 앞에서 대놓고 소리를 지르고 협박을 일삼는 좌의정 한기재(윤제문), 백주대낮에 궁녀를 살해하고 관복을 입은 채 무리들을 이끌고 도성 한복판에 있는 감옥을 습격하여 죄수들을 탈취할만큼 막나가는 정석조(배수빈), 세자에게 활을 겨누고도 무사한 왕실 종친 창운군(김서하) 등. 가상 배경이니 역사적 지식이나 고증을 차치하더라도 상식에 맞지 않는 설정들이 너무 많다.
주인공 이휘는 남장여인이라는 비밀을 감춰야하는 특성상 매사에 신중하고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캐릭터임에도 수시로 궁밖을 넘나들며 스스로를 위험한 행동에 몰아넣기 예사다. 심지어 감정에 못이겨 명나라 사신을 구타하는 대형사고까지 저지른다.
또한 태감은 아무리 황제의 총애를 받는 사신이라고 해도 일국의 왕세자 앞에서 칼부림을 벌이는 조폭같은 행동을 서슴지 않는다. 황제의 내탕금을 착복한 비밀장부가 굳이 조선에서 발각되었다는 것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주인공 박은빈의 출중한 연기력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박은빈이 워낙 여성스럽고 체구도 작은 반면, 하필 주변 남배우들이 대부분 180대 중반 이상의 장신이다보니, 외형적으로 지나치게 왜소해보이는 이휘의 어색한 남장 연출이 두드러지는 부분도 아쉽다.
정작 황당한 사건들에 휘둘리느라 극의 메인이 되어야 할 이휘와 정지운의 로맨스는 진행이 너무 느리다. 아직 이휘가 여인이고 첫사랑 담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정지운이 이휘에게 '우정을 넘어 연모의 감정'까지 진전되는 과정이 설득력이 떨어지면서 8회 말미의 갑작스러운 입맞춤은 더욱 뜬금없고 어색하게 다가온다.
초반 답보상태였던 <연모>의 시청률이 지난 8회 7.6%(닐슨코리아 전국 기준)까지 반등한 것은 그나마 위안이다. 다만 이는 동시간대 방송되던 경쟁작인 SBS <홍천기>가 지난달 종영하고 이렇다 할 경쟁작이 없는 상황이 되면서 일시적인 반사이익을 누렸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어진 예고편에서는 이휘와 정지운의 미묘한 관계가 깊어지는 가운데, 세자빈 후보로 간택된 노하경(정채연)의 첫 등장을 예고하며 궁금증을 높였다. 본격적인 중반에 접어드는 <연모>는 다소 떨어진 이야기의 속도감과 개연성을 회복하는 것이 관건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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