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안녕, 블랙 위도우_요주의 여성 #22

“진짜 울어?” 〈어벤져스: 엔드게임〉에서 아이언맨이 죽음을 맞이하자 남편은 눈물을 참지 못했습니다. 이런 말도 안되는 게임 같은 영화를 보고 우느냐고 핀잔을 줬던 나였는데… 코로나를 피해 아침 일찍 혼자 극장에서 〈블랙 위도우〉를 보면서 몇차례 콧잔등이 시큰해졌습니다. 끝내 눈물이 핑 돌았어요.
때 늦은 느낌이 드는, 블랙 위도우의 과거에 대한 (그렇고 그런) 이야기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공개된 영화는 짜임새 좋은 한 편의 히어로 영화이자 여성의 자립과 연대를 그린 멋진 드라마였습니다. 몸과 몸이 부딪히는 MCU에서 가장 현실적인 액션 신이 펼쳐지며, 동생 옐레나(어느 작품에서나 펄펄 나는 플로렌스 퓨)를 비롯해 새로운 캐릭터들이 흥미로운 관계성을 그려냅니다. 무엇보다 블랙 위도우라 알려진 강인한 여성 나타샤 로마노프의 진짜 이야기가 뒤늦게 당도한 오랜 친구의 편지처럼 뭉클한 감동을 줍니다.


작품을 거듭하며 캐릭터는 지속적으로 변화했고 블랙 위도우는 팀의 중요한 책략가이자 정신적 리더로 자리잡았으나 〈어벤져스: 엔드게임〉에서 그 여정은 끝나고 말았죠. 숭고한 희생으로 포장되긴 했으나 아무래도 아쉬웠던 퇴장. 죽어서야 팬들의 등쌀에 떠밀려 부랴부랴 만든 솔로 무비라는 의심이 짙었는데… 직접 제작에 참여한 스칼렛 요한슨과 케이트 쇼트랜드 감독은 블랙 위도우의 조각난 퍼즐을 모아서 나타샤 로마노프라는 ‘스스로 빛을 내는’(영화의 시작과 끝에 등장하는 ‘반딧불이’처럼) 용감한 여성의 이야기를 완성했습니다. 이번 영화를 보고 나니 비로소 블랙 위도우를 이해한 기분이 듭니다. 〈어벤져스: 엔드게임〉 속 그녀의 희생이 더욱 가슴 아프게 다가옵니다.

케이트 쇼트랜드 감독은 “이 영화는 자신의 인생을 살 수 없었던 사람이 다시 한번 자신의 인생을 살게 되는 여정을 따라가는 작품이다”라고 말합니다. “위도우를 피해자가 아닌 생존자로 바라보고자 했다”는 감독의 의도는 영화 전반에 녹아 있습니다. 위도우들의 고통이 직접적으로 묘사되는 장면은 거의 없으며 나타샤의 인내와 강인함은 더욱 세심히 묘사됩니다. 비혈연으로 맺어진 유사 가족의 연대, 서로를 돕고 구하려는 여성들의 자매애가 가슴 뭉클한 여운을 선사합니다.

‘미투 운동’과 성평등 이슈가 떠오르기 전에 블랙 위도우 무비가 만들어졌다면, 아마 지금과 상당히 다른 영화가 나왔을 겁니다. 너무 늦었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지금 찾아왔기에 이렇게 애틋하고 의미 있는 것일지도. 영화 속에서 멜리사(레이첼 와이즈)는 오랜만에 재회한 딸 나타샤를 향해 말합니다. “How did you keep your heart?” 마치 블랙 위도우란 캐릭터를 지켜낸 스칼렛 요한슨에게 하는 말처럼 들리기도 했던 이 말. 아픔은 우리를 성장하게 하며 내 안의 진정한 나를 지키는 게 중요하다는 것. 영화를 보는 모든 이들과 나누고픈 블랙 위도우의 마지막 메시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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