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N사피엔스] 전자의 발견
19세기 과학자들의 놀라운 장난감이었던 음극선은 X선(1895년)과 방사능(1896년)의 발견을 개가를 올렸다. 정작 음극선의 정체를 규명한 것은 1897년이었다. 그 주인공은 영국의 조지프 존 톰슨이다. 원래 톰슨의 전공은 수학이었다. 1884년부터 1919년까지는 캐번디시 연구소장직을 역임했다. 이 기간 동안 톰슨은 실험물리학에서 큰 업적을 남겼다. 그의 후임들도 역사에 남을 기여를 많이 했으니 훌륭한 스승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 20세기 초반까지 캐번디시 연구소는 물리학의 첨단을 내달리는 연구소라 할 수 있었다. 얄궂게도 톰슨 자신은 실험 자체에는 전혀 소질이 없었다고 한다.
톰슨이 음극선 연구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을 때에는 음극선의 본질에 대해 상반된 주장들(입자인가 파동인가)이 엇갈리고 있었다. 독일의 헤르츠는 파동설을 지지했다. 그는 음극선에 전기장을 가했으나 그 어떤 변화도 관측하지 못했다. 만약 음극선이 전기적으로 대전된 입자라면 외부 전기장에 대해 반응해야 하기 때문이다.
톰슨은 헤르츠의 결과를 뒤집고 전기장에 의해 음극선이 휘어지는 결과를 얻었다. 전기장의 방향에 음극선이 어느 방향으로 반응하는가에 따라 그 전하를 결정할 수 있는데 결과는 음의 전하였다. 음극선이 외부의 자석이 발휘하는 자기장에 의해서도 휘어진다는 사실은 이미 알려져 있었다. 그렇다면 이런 실험적 결과로부터 톰슨은 어떻게 음극선이 ‘전자’라는 새로운 입자의 흐름이라고 단정할 수 있었을까?
음극선을 음의 전기를 띤 어떤 작은 입자들의 흐름이라고 생각하면 이 입자가 전기장과 자기장에 의해서 휘어지는 정도를 뉴턴역학과 전자기학을 이용해 쉽게 기술할 수 있다. 보통 전기장이 작용하는 구간은 음극선이 진행하는 전체 경로에서 굉장히 짧은 구간이다. 그 짧은 구간 동안 음극선은 전기장에 의해 힘을 받아 가속운동을 한다. 이 과정에서 음극선의 경로가 꺾인다. 전기장 구간을 벗어난 뒤에는 음극선이 아무런 힘을 받지 않으므로(중력은 무시한다.) 힘이 작용하지 않는 등속운동으로 진행한다. 그 결과 전기장 때문에 음극선이 휘어지는 정도는 음극선을 구성하는 입자의 질량과 전하량과 속도, 그리고 나머지 쉽게 알 수 있는 변수들로 표현할 수 있다.
여기에 자기장에 의해 음극선이 꺾이는 실험결과를 결합한다. 자기장이 음극선을 휘는 상황도 전기장의 경우와 비슷하다. 다만 자기장이 음극선에 힘을 발휘하는 디테일이 조금 다르다. 그 결과 자기장이 음극선을 휘는 정도는 다시 음극선을 구성하는 입자의 질량과 전하량과 속도, 그리고 나머지 알려진 변수들로 표현된다. 공교롭게도 전기장의 영향에서든 자기장의 영향에서든 질량과 전하량은 항상 전하량 나누기 질량의 형태로 그 모습을 드러낸다. 이 값을 흔히 비전하라 부른다.
이제 전기장이 음극선을 휘는 정도와 자기장이 휘는 정도를 실험으로 관측해서 이를 이론적인 계산값과 비교하면, 세 개의 미지수(질량, 전하량, 속도)에 대해 두 개의 방정식을 얻는다. 그런데 질량과 전하량은 비전하라는 비율 형태로만 나타나니까 이걸 하나의 변수로 생각하면 비전하와 속도라는 2변수에 대한 2개의 연립방정식이 존재하는 셈이다. 그 결과 이 연립방정식을 풀면 음극선을 이루는 입자의 속도와 비전하를 알 수 있다.
비전하를 측정하는 데에는 또 다른 방법도 있다. 에너지를 이용하는 방법이다. 진공관 속에 금속집전자를 설치해 음극선이 와서 부딪히게 한다. 이렇게 되면 음극선을 구성하는 입자들이 갖고 있던 운동에너지가 집전자에 전달돼 그 온도를 높이게 된다. 즉, 음극선의 운동에너지가 집전자의 열에너지로 전환된다. 그 정도는 정확히 똑같을 것이다. 이때 집전자의 증가한 전체 열에너지를 전체 전하량으로 나누면 하나의 입자가 전달한 운동에너지를 그 입자의 전하량으로 나눈 값과 같다. 그런데 입자의 운동에너지는 질량과 속도의 제곱의 곱에 비례하므로 이 관계에서 다시 음전하 입자의 비전하 값이 개입하게 된다. 이 결과와 자기장에 의해 음극선이 휘는 결과를 결합하면 음극선 입자의 비전하 값을 다시 구할 수 있다.
톰슨이 두 가지 방법으로 구한 비전하 값이 서로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았다. 전기장과 자기장에 의한 변위로 구한 값은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실제 값의 약 2배에 가까운 값이었다. 반면 에너지를 이용한 방법에서는 실제 값에 가까운 값과 전기장/자기장 결과에 가까운 값을 함께 얻었다. 톰슨은 후자의 결과를 더 신봉했다고 한다.
비전하 값은 질량에 대한 전하량의 비율이므로 질량과 전하량 각각의 값을 알 수는 없다. 다만 다른 알려진 대전입자들, 특히 이온들에 대한 값과 비교해 볼 수는 있다. 음극선 입자의 비전하 값은 다른 이온들에 비해 천 배 이상으로 무척 크다. 어떤 비율의 값이 크다면 분자(전하량)가 클 수도 있고 분모(질량)이 작을 수도 있다. 음극선 입자의 경우는 어디에 해당할까? 이온은 중성의 상태에서 전기 전하량이 몇 개 더해지거나 모자란 상태이므로 여기서 큰 차이가 난다고 보기는 어렵다. 따라서 음극선 입자의 질량이 잘 알려진 이온의 입자보다 천 배 정도 작다고 결론지을 수 있다.
톰슨은 전극의 재질을 알루미늄, 백금 등으로 바꾸고 진공관에 남아 있는 희박한 기체의 종류도 바꿔가며 실험을 계속했고 전극이나 기체의 종류와 상관없이 거의 일정한 비전하 값을 얻었다. 이는 음극선을 구성하는 입자가 물질의 종류와 상관없이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입자임을 강력하게 시사하는 것이다. 게다가 이 입자는 그때까지 알려진 다른 원소들의 이온보다 훨씬 더 가볍다. 그렇다면 음극선의 정체는 모든 원소들에 보편적으로 들어있는, 음의 전기를 띠는 매우 가벼운 새로운 종류의 입자라고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이 입자가 바로 전자이다.
전자(electron)의 어원은 호박(amber)을 뜻하는 그리스 단어이다. 전기(electricity)도 여기서 파생된 말인데, 이는 고대 그리스 시절부터 호박 등을 문질렀을 때 마찰전기가 생기는 현상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톰슨이 전자의 발견자로 역사에 이름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은 이런 과정의 총체적인 결과였다. 특히 톰슨 스스로가 음극선의 실체가 새로운 입자라고 해석하고 규정한 것이 주효했다. 톰슨과 비교되는 사람이 독일의 발터 카우프만이었다. 카우프만도 음극선을 열심히 연구했고 심지어 톰슨보다도 훨씬 더 좋은 비전하 값을 얻었다. 카우프만이 비전하를 측정한 방식도 에너지와 관계가 있다. 음극선을 구성하는 입자가 음전극에서 튀어나와 비행할 수 있는 근본적인 이유는 진공관 속 음극과 양극 사이의 전압차이 때문이다. 전압이란 달리 말해 단위 전하량에 대한 전기적인 퍼텐셜에너지이다. 따라서 이 퍼텐셜에너지가 음극선 입자의 운동에너지로 전환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 상황은 높은 곳에서 사과가 떨어지는 현상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높은 가지에 매달려 있는 사과는 중력퍼텐셜이 크다. 사과가 가지에서 떨어져 땅으로 낙하하면 중력퍼텐셜이 사과의 운동에너지로 바뀐다. 이 관계를 이용하면 사과가 지면에 도달할 때의 속도를 쉽게 구할 수 있다. 카우프만은 이런 방식으로 비전하를 구했고 그 결과는 톰슨의 결과에 비해 실제 값에 훨씬 더 가까웠다.
그럼에도 카우프만은 새로운 입자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 이는 19세기 중후반 유럽대륙의 분위기와 관련이 있다. 당시 대륙에서는 오스트리아의 에른스트 마흐가 주창한 이른바 마흐주의가 횡행했었다. 마흐주의란 인간의 직관적인 관찰경험으로 얻을 수 있는 지식만 과학적이라는 사고방식이다. 마흐주의에 따르면 인간이 직접 경험할 수 없는 영역은 과학의 연구대상이 아니게 된다. 마흐주의의 영향에 따라 20세기 초반까지도 원자론이 주류 과학계에 안착할 수 없었다. 돌턴이 근대적인 원자론을 들고 나온 것이 1803년이고 19세기 중반 이후로는 기체분자운동을 이용해 열 현상을 기술하는 시도들이 성공적이었음에도 주류 과학계에서는 대체로 인간이 직접 경험할 수 없는 대상을 자연에 실제로 존재하는 실체로 받아들이기를 꺼렸다. 카우프만도 그런 전통에 속해 있던 과학자여서 톰슨보다 훨씬 더 좋은 실험결과를 얻었음에도 그 결과를 적극적으로 해석하는 데에 실패했다. 톰슨은 이런 전통에서 비껴나 있었고 오히려 원자론의 전통에 가까웠다.
이 사례는 산소의 발견자가 누구인가 하는 논란과도 닮은 점이 있다. 수은재로부터 산소를 처음 분리한 것은 영국의 조지프 프리스틀리였으나 그는 이를 공기의 어떤 새로운 상태로 여겼을 뿐이었다. 프리스틀리는 여전히 전근대적인 플로지스톤의 패러다임 속에서 연소현상을 이해하고 있었다. 반면 프리스틀리에 뒤이어 산소를 분리한 프랑스의 앙투안 라부아지에는 자신이 분리한 물질이 새로운 기체임을 명확히 했다.
톰슨이 전자를 발견했다는 사실은 원자론의 입장에서도 큰 타격이었다. 왜냐하면 원자는 더 이상 쪼개지지 않는 (그래서 atom이라고 부르지 않았던가) 자연의 최소단위라고 생각했는데, 톰슨은 그 안에 음의 전기를 띠고 있는 훨씬 더 가벼운 요소가 있다고 주장한 것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원자는 쪼개질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원자는 더 이상 '아톰(atom)'이 아니게 된다. 몰론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원자(atom)라는 말을 쓰고 있다. 또한 원자는 이 세상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기본단위 중 하나이기도 하다.
원자가 쪼개질 수 있다면 보다 복잡한 문제들이 생긴다. 원자가 쪼개지지 않는 자연의 최소단위이면 모든 논의는 원자에서 끝난다. 그 하부단위로 내려갈 수 없기 때문이다. 반면 원자가 쪼개질 수 있고 그 안에 원자 자체보다 훨씬 더 작은 구성요소가 숨어있다면 원자는 하나의 구조물이 되는 것이고 그 ‘내부구조’가 어떠한지를 규명해야하는 숙제가 남는다. 당장 전자가 음의 전기를 띠고 있다면 이를 상쇄시킬 양의 전기는 어떻게 되는가 하는 의문이 남는다. 즉, 원자는 이제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점입자에서 갑자기 내부구조를 갖는 복잡한 구조물이 돼 버린 것이다. 이에 따라 과학자들은 그 내부구조를 밝히기 위한 새로운 여정을 시작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것이 원자모형의 출발이다. 전자를 발견한 톰슨이 그 선두에 섰음은 너무나 당연했다.
※참고문헌
-스티븐 와인버그, 《아원자입자의 발견》(박배식 옮김), 민음사.
-스티븐 와인버그, 《최종이론의 꿈》(이종필 옮김), 사이언스북스.
※필자소개
이종필 입자이론 물리학자. 건국대 상허교양대학에서 교양과학을 가르치고 있다. 《신의 입자를 찾아서》,《대통령을 위한 과학에세이》, 《물리학 클래식》, 《이종필 교수의 인터스텔라》,《아주 특별한 상대성이론 강의》, 《사이언스 브런치》,《빛의 속도로 이해하는 상대성이론》을 썼고 《최종이론의 꿈》, 《블랙홀 전쟁》, 《물리의 정석》 을 옮겼다. 한국일보에 《이종필의 제5원소》를 연재하고 있다.
[이종필 건국대 상허교양대 교수 jongphil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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