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손대면 버려진 맥주병·주스병도 예술이 돼요
리사이클링서 진화한 업사이클링
13일부터 '수선하는 삶' 전시

반투명한 갈색빛 컵은 단정하면서도 세련됐다. 녹색 컵은 식탁에 훌륭한 포인트가 될 것 같고, 흰색 무광 컵은 군더더기 없이 소박하다.
‘리 보틀 메이커’라는 활동명으로 유리 공예품을 만들고 있는 박선민(38) 작가가 테이블 위에 올려둔 컵이다. 녹색 컵을 뒤집어보니 하단에 330mL란 글씨가 있다. 중국의 유명 맥주 브랜드병을 가공한 것. 무심히 버려진 유리병에 새로운 생명이 담긴 셈이다. 재활용품에 디자인 또는 활용도를 더해 가치를 높이는 ‘업사이클링(up-cycling)’ 개념에 부합하는 작품이다.
국민대학교 디자인 대학원에서 유리 공예를 배운 박 작가는 2014년 제주에서 열린 바다 쓰레기 업사이클링 전시에 참여하면서 유리병 작업을 시작했다. 당시 바닷가에서 수거한 유리병을 자르거나 재조합해 화병 형태의 오브제를 만들었다. 박 작가는 “작업을 위해 폐유리병을 관찰하다보니 한 번 쓰고 버리기엔 아까울 정도로 나름의 아름다움이 있었다”고 했다. 이후 작업의 70~80%를 버려진 유리병으로 하는 독특한 유리 공예가가 됐다. 폐맥주병과 와인병, 주스병과 양주병 등을 활용해 화병·컵·그릇을 만든다.
“모든 유리병이 다 재활용되는 게 아니더라고요. 국내 브랜드 주류 병의 경우 수거해 가서 재사용하지만, 수입 브랜드 주류 병이나 음료병은 그대로 폐기 돼요. 그냥 일반 쓰레기인 거죠. 유리병이 분해되는 데 500만년이 걸린다고 해요. 버려지는 병을 지속해서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어요.”

유리병은 브랜드에 따라 다른 유리로 만들어져 같은 브랜드 제품이 아니면 녹여서 재활용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팽창 계수가 달라서다. 그나마 국내 제품은 동일한 수량이 많아 세척해 재사용하거나 녹여서 재활용할 수 있지만, 수입 제품은 종류가 다양해서 한 데 모아 재활용하기 쉽지 않다.
폐유리병으로 작품을 만드는 것이 새로운 유리 공예품을 만드는 것보다 쉬운 일은 아니란다. 박 작가는 “수거·세척 후 라벨을 제거하고, 절단한 뒤 여러 단계의 연마 작업을 거쳐 마감하기까지 많은 노력이 든다”며 “컵 10개 제작에 2~3일이 걸린다”고 했다. 박 작가는 “재활용(리사이클링)과 업사이클링의 개념을 혼동해 업사이클링 제품의 격을 낮춰보는 경우가 있다”며 “버려진 병이지만, 오랫동안 곁에 두고 싶은 아름다운 제품으로 재탄생시키려 노력한다”고 말했다.
유리병에 새겨진 글씨나 무늬를 활용해 작품을 만들기도 하고, 도자기로 굽을 만들어 붙이거나 금속 장식을 더하는 등 다양한 소재를 활용한다.
박 작가의 작품은 지난해 KCDF(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에서 진행한 ‘2019 공예디자인 스타상품’에 선정됐다. 서울 청담동 그릇 편집숍 ‘정소영의 식기장’, 삼청동 ‘아원공방’, 인사동 ‘KCDF 갤러리 숍’, 한남동 ‘구호 플래그십 스토어’ 등에서 그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오는 13일부터는 서울 신사동의 라이프 스타일 편집숍 ‘플레이스 1-3’에서 작은 전시도 연다. ‘수선하는 삶’이라는 타이틀로 3명의 작가가 릴레이 전시를 하는데, 그중 한 명이 박 작가다.
“세상에 물건이 이렇게 많은데 하나를 더한다는 게 가끔 부담스러웠어요. 하나를 더 늘리기보다 이미 존재하는 것을 소재로 활용해 공예로 풀어내고자 합니다. 요즘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작가로서 고민해야 하는 부분이죠.”
유지연 기자 yoo.jiyo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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