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건축가 이타미 준, 사후에야 경주타워 저작권 되찾은 사연

김정석 2020. 2. 5.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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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경주타워 공모전서 당선작 아닌 2위 우수상 입상
타워 준공 후 매우 흡사한 디자인에 5년간 소송전
저작권 인정돼 사후에야 제대로 된 현판 설치..17일 현판식
고 유동룡 선생(이타미 준) [사진 ITM유이화건축사사무소]

“일본에서는 한국인 건축가에게 그런 공모전에 참가할 자격조차 주어지지 않죠. 처음으로 경주엑스포 프로젝트를 통해서 (경주타워 디자인 공모에) 참여하게 됐어요. 그때 굉장히 기뻐하셨어요. ‘일본에서 못해본 걸 해보게 되는구나’ 하시고요.”

정다운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이타미 준의 바다’에서 유이화 ITM유이화건축사무소 대표가 한 말이다. 유이화 대표는 ‘이타미 준’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는 세계적인 재일 한국인 건축가 고(故) 유동룡 선생(1937~2011)의 장녀다.

경주타워는 경북 경주시 천군동 경주세계문화엑스포공원 안에 있다. 황룡사 9층 목탑을 실제높이 82m(아파트 30층 높이)로 재현해 음각으로 새겨놓은 디자인으로 유명하다. 실크로드를 통해 신라에 들어온 로만글라스를 상징하는 유리와 철골구조로 만들어졌다.

경주의 랜드마크인 경주타워와 유동룡 선생은 어떤 인연을 맺고 있는 걸까. 오는 17일 경주세계문화엑스포재단이 개최하는 특별한 행사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경주타워 옆에 유동룡 선생의 업적을 기록한 현판을 거는 행사다.

유 선생과 경주타워의 인연은 200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경주세계문화엑스포(이하 엑스포)가 ‘경주세계문화엑스포 상징 건축물 설계 공모전’을 진행한 때다. 이 공모전에 유 선생은 재일 한국인 건축가 ‘이타미 준’이라는 이름으로 경주타워 설계안을 출품한다. 결과는 전체 2위인 우수상. 상금 1000만원을 받았다.

경주세계문화엑스포 상징건축물 공모전 당시 이타미 준이 출품한 디자인안 야경투시도. [사진 ITM유이화건축사사무소]


3년이 지난 2007년 8월. 유 선생의 제자 한 명이 완공된 경주타워의 모습을 발견하면서 문제가 시작됐다. 유 선생이 출품한 설계안과 매우 흡사한 모습으로 경주타워가 세워지면서다. 엑스포 측은 공모전 1위 당선작을 토대로 경주타워 디자인을 추진했지만 5번의 설계심의위원회를 거친 결과는 첨성대를 상징화한 당선작과는 차이가 컸다.

유 선생 측은 2007년 10월 공모전에서 당선된 건축사무소를 상대로 저작권법 위반에 대해 형사소송을 제기했지만 2008년 2월 증거 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분이 났다. 이듬해인 2009년 6월 엑스포를 상대로 손해배상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이 소송은 항소심까지 가서 손해배상 판결이 났고 엑스포는 유 선생 측에 4200여만원을 배상했다.

경주타워와 경주엑스포공원 전경. [사진 경주세계문화엑스포]


엑스포는 판결 이후 경주타워 우측 바닥에 유 선생이 경주타워 설계를 했다는 내용의 표지석을 설치했다. 하지만 표지석이 눈에 잘 띄지 않고 표면이 심하게 닳아 유 선생 유가족이 지난해 9월 성명표시 재설치 소송을 제기했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저작권 인정과 적극적인 수정 조치 등을 지시하면서 소송은 취하됐다.

엑스포는 경주타워 앞에 새롭게 현판을 내걸 계획이다. 가로 1.2m, 세로 2.4m 크기의 대형 안내판이다. 유 선생의 각종 수상기록과 대표작이 기록된다. 유 선생의 건축철학과 2005년 프랑스 예술문화훈장 ‘슈발리에’, 2010년 일본 최고 권위 건축상 ‘무라노 도고상’ 등의 수상경력과 제주핀크스 골프클럽 클럽하우스, 수·풍·석 박물관, 포도호텔, 방주교회 등 대표작들이 이름을 올린다. 유 선생의 사후에야 그의 명예가 제대로 회복된 셈이다.

경주타워 우측 바닥에 설치돼 있던 바닥 석판의 모습. [사진 경주세계문화엑스포]
경주세계문화엑스포는 최근 경주타워 유동룡 선생 신규 현판식을 앞두고 지난해 10월 기존 바닥 석판을 제거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사진 경주세계문화엑스포]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현재 경주엑스포 이사장으로서 고인과 유가족에게 깊은 사과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며 “앞으로 지적재산권은 더욱 중요해질 것이며 고유의 자산으로 인정받고 존중받아야 하기에 이번 현판식이 우리 사회전반에 만연한 표절에 대해 경각심을 일으키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유 선생은 일본에서 태어난 재일동포 2세로, 끝까지 일본에 귀화하지 않았다. ‘건축이 여행이고, 여행이 건축’이라는 철학을 작업의 기초로 삼고 제주도와 경주, 안동 등 전국을 다니며 고전 건축물과 미술품을 탐구해 영감을 얻었다. 지난해 유 선생의 일대기와 건축철학을 담은 영화 ‘이타미 준의 바다’가 개봉되기도 했다.

경주=김정석 기자
kim.jung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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