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오름기행] 제주의 시작에서 새해를 시작하다
손민호 2016. 12. 23. 00:05
| 제주오름기행 <18> 성산일출봉


성산일출봉도 오름이다. 제주 오름 368개 중의 하나일 따름이다. 그러나 성산일출봉이 지닌 의의와 가치는 낱개의 오름에 그치지 않는다. 성산일출봉은 숱한 전설과 신화가 전해오는 성지이자, 제주도가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주인공이다. 제주도 여행자라면 누구나 성산일출봉을 아는 것처럼 말하지만 성산일출봉의 전부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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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과 청산
성산과 청산


성산일출봉의 원래 이름은 성산(城山)이다. 문자 그대로 산이 성처럼 서 있어 성산이다. 조선 중기 문신 김상헌(1570∼1652)도 “산성 같은 자연(自然如山城)”이라고 성산일출봉을 묘사한 바 있다. 성산이라는 마을 이름도 이 오름에서 비롯됐다.

제주도 명승 열 곳을 열거한 영주10경의 제1경이 성산출일(城山出日)이다. 제주도에서 첫 번째로 꼽히는 장관이 성산에서 떠오르는 해라는 말이다. 그 유명한 일출 장면 덕분에 성산이라는 이름에 일출봉이 붙었다. 한동안 일출봉으로만 불리다 최근에는 성산일출봉으로 통일됐다.

사실 애초의 성산일출봉은 섬이었다. 성산일출봉이 생성된 5000년 전에는 뭍과 떨어져 있었다. 그렇다고 완전한 섬은 아니었다. 뭍의 고성리와 성산일출봉을 품은 성산리 사이의 바다가 얕아 성산일출봉은 물이 빠지면 뭍이 됐고 물이 차면 섬이 됐다. 1920년대 일제가 바닷물 드나들던 물길을 메우면서 온전한 뭍이 됐다. 옛 물길이 있던 자리를 ‘터진목’이라고 부른다. 터진목을 경계로 동쪽에 성산리가 있고, 서쪽에 오조리가 있다. 남쪽 마을은 고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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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관 오름의 비밀
왕관 오름의 비밀


성산일출봉은 단박에 시선을 끄는 힘이 있다. 생김새가 워낙 독특하기 때문이다. 가장 특이한 지형이 정상부다. 성산일출봉은 정상에 봉우리가 없다. 대신 지름 600m의 분화구가 쩍 하니 입을 벌리고 있다. 머리 부분은 없지만 몸통 부분은 각진 바위가 서 있다. 그래서 하늘에서 보면 공상과학 영화에서나 봤음 직한 우주기지가 떠오른다. 당장에라도 분화구가 양 옆으로 벌어지며 우주선이 솟구칠 것 같다. 테두리가 뾰족한 동그라미 모양을 보고 신라 왕관을 연상하는 사람도 많다.


‘성채 모양의 성산일출봉은 벽면이 해양 밖으로 솟아나와 극적인 풍경을 연출하면서 그 구조 및 퇴적학적 특성이 드러나 있는 드문 경우로 화산 분출을 이해할 수 있는 세계적으로도 중요한 곳이라 할 수 있다. … 지구상에 이런 예가 몇 있지만 … 성산일출봉은 다른 곳에서는 불가능한 침식작용의 이해를 명백히 도와준다.’- 유홍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7』 120∼121쪽.
성산일출봉은 바다에서 분화한 화산이다. 바다에서 폭발한 그 자리에서 굳은 화산을 수성화산이라고 한다. 수성화산이 바다와 만나는 벽면이 오랜 세월 파도와 바람의 침식작용으로 깎여나가 화산의 속살을 훤히 드러낸 꼴이 지금의 성산일출봉이다. 노출 콘크리트 공법을 생각하면 이해가 쉽겠다.



하여 성산일출봉의 가치를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으면 배를 타고 남쪽 바다로 나가야 한다. 파도와 바람에 깎이고 팬 암벽이 바짝 각을 세운 채 서 있고, 암벽 위로는 분화구 테두리를 따라 짐승 이빨처럼 날카로운 암봉들이 줄지어 있다. 옛 기록에는 성산일출봉 분화구 테두리를 따라 솟은 암봉이 99개나 된다고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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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시작
제주의 시작


성산일출봉에도 제주도의 아픈 역사가 배어 있다. 제주도까지 쫓겨 내려온 삼별초가 성산일출봉에서 진지를 구축했고(삼별초 김통정 장군의 전설이 내려온다), 몽골이 직접 통치했던 고려시대 100년 동안은 성산일출봉 주변 초원이 말을 키우는 목장으로 쓰였다. 성산일출봉에도 일제 진지동굴이 있다. 모두 18개가 확인됐는데, 일본군이 폭탄을 실은 보트를 동굴에 숨겼다고 한다. 서쪽 아랫도리 수매밑이라 불리는 포구 터를 지나면 해안선을 따라 들어선 진지동굴이 보인다. 4ㆍ3 사건의 상처도 곳곳에 남아 있다. 성산일출봉 동쪽 우묵개 동산과 터진목 등지에서 민간인이 집단으로 학살당했다.



성산일출봉은 손꼽히는 일출 명소이지만, 막상 정상에 오르면 실망하는 사람이 많다. 탐방로가 끝나는 지점에 설치한 정상 전망대 바깥으로는 한 발짝도 나갈 수 없기 때문이다. 생각 같아서는 분화구 능선에서 90m 아래에 있는 분화구 바닥도 내려가고 싶고, 직선거리로 600m 떨어진 바다 쪽 분화구 능선에도 서 보고 싶지만 모두 금지돼 있다. 전망대도 크지 않다. 새해 첫날 성산일출봉 정상에서 일출을 맞을 수 있는 인원이 1500명으로 제한된 까닭도 전망대가 한꺼번에 1500명 이상을 수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성산 출신인 한천복(65) 문화관광해설사가 옛 기억을 더듬었다.



“30년 전까지만 해도 분화구 바닥에서 사람이 살았어요. 말도 키우고 소도 키웠어요. 절벽을 타고 내려가기도 했어요. 가마우지를 잡기도 하고 풍란을 뜯기도 했는데…. 다 옛날 얘기지요.”
성산은 시작과 관련이 많은 마을이다. 성산읍에 시흥리(始興里)라는 마을이 있다. 제주도에 목사(牧使)가 부임하면 일부러 시흥리까지 와서 섬의 고을을 순찰하는 순력(巡歷)을 시작했다. 그 전통을 이어받아 제주올레가 1코스를 시흥리에서 시작한다. 제주 창건 신화에 등장하는 3대 시조가 아내를 얻은 혼인지도 성산읍 온평리에 있다. 앞서 적었듯이 영주10경의 제1경이 성산일출봉이다.

■여행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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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
사진=손민호 기자,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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