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일반고 잔혹사..'학종 시대' 맞는 강남 일반고

정현진.신인섭 2016. 11. 30.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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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극화. 교육특구 서울 강남 일반고의 현재 상황이다. 선호학교와 기피학교가 뚜렷하다. 강남 일반고 판도 변화는 교육정책과 대학입시제도 변천 탓이 크다. 내부적 문제보다 외부적 충격이 변화를 이끌었다는 얘기다. 특목고·자사고 설립과 고교선택제 도입, 학생부종합전형의 확대가 일반고 지형을 바꾸고 있다. 강남 일반고의 현주소를 짚어봤다.

| ‘학종 시대’ 달라지는 분위기
그런데 강남 엄마들은 왜 다시 일반고에 주목하나

특목고·자사고 등장으로 우수 학생 뺏겼지만
숙명여고·단대부고 등 강남 상위권 충격 덜해
고교선택제 후 선호-기피 양극화 심해지기도

자사고·일반고 장단점 정확히 분석한 부모들
“경쟁 치열한 자사고보다 내신 관리 수월해”
대입 학생부전형 확대로 일반고 부활 조짐

일반고 위기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일각에서는 특목고·자율형사립고(자사고)가 우수 학생을 선점하면서 일반고를 황폐화시켰다고 주장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문·이과 체제로 대변되는 획일화된 교육과정이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특히 23개(하나고 포함) 자사고가 들어선 서울에서 이 논란은 더 뜨겁다. 심지어 교육특구로 통하는 강남도 자유롭지 않을 정도다.
최근 강남 일반고의 진학 실적이 개선됐다고 하나 80년대 8학군 시절 명성에 비하면 초라하다. 강남 일반고 간 양극화 현상도 눈에 띈다. 쟁쟁한 자사고를 주변에 두고도 전보다 명성이 올라간 일반고가 있는 반면 기피학교로 낙인 찍히며 추락한 학교도 있다. 2010년 고교선택제 실시 후 벌어진 풍경이다. 강남 속 일반고의 양극화 현상을 들여다봤다.


특목고·전국 자사고에 밀려 빛바래
강남 일반고도 특목고→자사고→일반고로 이어지는 고교서열화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다. 최근 상황이 호전됐다고는 하지만 옛 8학군 때 명성에 비하면 초라하기 그지없다. 강남 일반고 입장에선 억울하다. 내부적 문제보다 외부적인 충격 탓에 명성은 무너져내렸기 때문이다.

1986년 서울대 합격자를 많이 낸 고교 5위 안에 경기고(75명)·상문고(54명)·휘문고(52명)·서울고(51명)까지 강남·서초구 소재 4개 학교가 이름을 올리며 강남 8학군은 전성기를 맞았다. 84년 서울고를 졸업한 김모(50)씨는 “서울대는 매해 50~60명씩, 연세대·고려대는 각각 100명씩 들어갔다”며 “연일 8학군이 언론 톱기사를 장식했던 때”라고 회상했다.

하지만 8학군 신화는 92년을 기점으로 막을 내린다. 과학고·외국어고가 특수목적고로 인가를 받으면서 엘리트 교육에 목말랐던 학부모들이 특목고를 선택한 탓이다. 당시 특목고 대비 입시학원은 새벽 2시가 넘어 수업이 끝날 정도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여기에 2002년 민족사관고·포항제철고·상산고 등 전국 단위 자사고까지 설립되면서 대치동 학원가는 또 한번 요동쳤다.

80년대 학교 당 많게는 80여 명이나 서울대 합격자를 배출했던 8학군 학교들의 서울대 진학 실적은 2007학년도에 이르러 곤두박질친다. 대신 특목고가 그 실적을 고스란히 차지한다. 2007학년도 서울대 합격자 탑10은 과학·외국어·예술 분야 특목고가 휩쓸었다. 서울예술고가 88명으로 1위를 기록했고 서울과고가 2위(72명), 대원외고가 3위(64명)를 차지했다. 그나마 경기고가 11위(17명), 서울고·숙명여고·휘문고가 각각 14위(16명)로 명맥을 유지했을 뿐이다. 2014학년도 이후는 용인외고·하나고와 같은 전국 단위 자사고와 특목고 간 싸움이다. 2016학년도 서울대 합격자 수 순위에서 강남 일반고는 더 떨어졌다. 숙명여고만 22명을 합격시키며 겨우 22위 자리를 지켰다.


황폐화 논란은 피한 강남 일반고
2010년과 이듬해에 걸쳐 강남·서초구에 5개 학교(세화고·세화여고·중동고·현대고·휘문고)가 광역 자사고로 전환하면서 이 지역 일반고가 받은 충격은 상당했다. 서울 서초구 소재 한 사립여고의 진학부장은 “지역 자사고가 신입생을 선발하기 시작한 2010학년도에 학교가 느낀 위기감은 대단했다”며 “우리 학교에 입학했던 최상위권 학생 중 상당 수가 근처 자사고로 전학을 갔다”고 기억했다.

당시 서울 지역 자사고는 중학교 내신 성적 상위 50% 이내 학생만 지원 받아 추첨선발했다.(※서울 지역 자사고는 2015학년도부터 중학교 내신 성적 제한 없이 추첨 후 면접으로 선발한다) 자사고는 우수 학생 선점에 따른 선발효과를 톡톡히 봤다. 5개 자사고가 일반고로 있던 2011학년도 수능에서 이들 학교의 수능(국어·영어·수학) 2등급 이내 학생 비율은 평균 16.3%에 머물렀다. 하지만 자사고로 선발한 졸업생을 배출하기 시작한 2013학년도 수능부터 이 비율이 급증하더니 2015학년도 수능에선 5개 자사고가 평균 36.8%를 기록했다. 불과 4년만에 20.5%포인트가 증가한 셈이다.

같은 기간 강남구 일반고 상위권 학생들의 수능 성적도 개선되기는 했다. 강남구 소재 13개 일반고의 수능 2등급 이내 학생 비율은 15.2%에서 17%로 늘었다. 반면 서초구는 13.4%에서 11.9%로 소폭 하락했다. 교육특구로 꼽히는 송파구·양천구·노원구도 양상은 비슷하다. 양천구·송파구는 각각 2.1%포인트, 0.3%포인트 상승했고, 노원구는 0.5%포인트 소폭 하락했다.

특목고에 이어 자사고가 우수 학생을 선점하면서 일반고 황폐화 논란이 거세게 번졌다. 김혜남 서울 문일고 교사는 “비강남 일반고에서는 반마다 선두그룹을 형성하는 서너 명의 최상위권 학생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수업 분위기가 좌우된다”며 “특목고·자사고가 우수 학생을 쓸어담으면서 특히 비강남 일반고는 수업을 끌고 가기 어려울 정도로 분위기가 가라 앉았다”고 전했다.

강남을 비롯한 교육특구 상황은 이보다는 나은 편이었다. 자사고 충격에도 일반고의 학업 분위기는 웬만큼 유지됐다. 워낙 공부하는 층이 두터웠던 덕분이다. 사교육시장의 성장과 함께 강남·서초·송파·양천·노원구 등 소위 교육특구로는 학생이 끊임없이 유입됐다. 2000년 강남구로 유입된 만 10~14세 순이동수(전입-전출)는 1706명에 달한다. 2005년은 2196명, 2010년은 2120명, 지난해에도 1666명에 이른다. 강남구 소재 한 사립 남고의 교감은 “특목고·자사고 설립으로 최상위권이 빠져나갔음에도 불구하고 강남 일반고가 학력 수준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솔직히 대치동 사교육의 힘”이라고 말했다.


학생부종합전형 확대, 일반고에 청신호
일부 강남·서초 지역 일반고는 2014년 학생부종합전형(학종) 확대로 부활의 조짐을 보인다. 2008년 시작한 입학사정관제는 초기 모의국제회외·경시대회·캠프와 같은 교외 스펙이 합격에 큰 영향을 끼쳤다. 고액 컨설팅 등 사교육 논란이 일자 교육부는 2011년부터 학생부에 교외 스펙 기록을 전면 금지했고, 2014년 입학사정관제를 내신과 교내 비교과 활동만으로 평가하는 학종으로 개편·확대했다. 서울대는 학종 선발비율이 총 모집인원의 70%를 넘어섰고, 연세대·고려대 등 주요 대학도 학종 선발 비율을 총 모집인원의 30~50%대까지 확대했다.

평가 범위가 교내 활동만으로 제한되면서 학종 합격의 첫 관문은 내신으로 좁혀졌다. 임성호 종로학원하늘교육 대표는 “서울대 합격생을 보면 지역균형은 내신 1등급 초반, 일반전형도 최소 2~3등급은 돼야 합격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내신이 주요 대학 학종의 핵심으로 떠올랐다”고 분석했다. 중학교 3학년 자녀를 둔 이정희(42·대치동)씨는 “이제 많은 엄마들이 내신 경쟁이 치열한 자사고보다 교내 프로그램이 알찬 일반고로 자녀를 보내 내신 관리를 잘 해주는 게 더 이득이라고 생각한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미애 샤론코칭 대표는 “자사고 첫해에는 기대감에 쏠림이 심했지만 지금은 엄마들이 자사고와 일반고 간 장단점을 정확하게 따진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지금 자사고로 진학하는 학생은 크게 두 부류다. 자사고에서 내신 3등급 이내를 받을 수 있는 극상위권이거나 내신은 포기해도 면학분위기를 보고 수능 성적을 올리려는 중위권 학생들이 자사고를 찾는다”고 설명했다. 장지영 진선여고 교감은 “자사고 첫해에는 충격이 컸지만, 2014년경부터 중학교 내신 상위권 학생들이 일반고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며 “올해 우리 학교엔 중학교 내신 상위 5% 이내에 든 학생이 전체 입학생의 15%에 달할 정도였다”고 말했다.


일반고 간 양극화, 선택받지 못한 고교의 추락
서울은 2010년부터 1단계와 2단계 각각 1·2지망을 써 총 네 학교까지 선복수지원 후 추첨 배정을 하는 고교선택제를 하고 있다. 1·2단계에서 학교를 배정받지 못하면 3단계에서 1·2지망 학교를 우선 고려해 통학거리·종교 등을 따져 배정한다. 원하는 학교 배정이 100% 보장되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선호하는 학교를 골라 갈 수 있는 길은 열린셈이다.

고교선택제 실시로 일반고 간 선호가 뚜렷히 드러난다. 선호학교를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당연히 대학진학 실적이다. 강남·서초 지역에서 2016학년도 서울대 합격생 수를 놓고 보면 숙명여고(22명)에 이어 단대부고(19명)와 서울·영동고(16명) 순이다. 경기고·중대부고가 각각 14명, 중산고·경기여고·양재고도 각각 13명씩 서울대에 보내면서 선호학교로 부상했다. 사립 5곳과 공립 4곳이 적절히 섞여 있다. 반면 실적이 좋지 않은 학교는 기피학교가 되버렸다.

고교선택제가 일반고 판도를 바꾼 셈이다. 2005학년 수능에서 강남·서초 지역 내 일반고 중 수능(국어·영어·수학) 평균 2등급 이내 학생 비율이 가장 높은 학교는 단대부고로 17.4%를 기록했다. 반면 가장 낮은 학교는 서울세종고(2.2%)였다. 일부 뛰어난 학교와 몇몇 뒤떨어지는 학교를 제외하고 대부분 학교가 10%대에서 두텁게 중간층을 형성했다. 당시에는 거주지 중심으로 강제배정을 했기 때문에 상위권 학생들이 학교별로 적절히 분배돼 학교 간 격차가 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고교선택제 실시 이후 2012년에 입학한 학생들이 치른 2015학년도 수능 성적을 살펴보면 강남·서초 지역 내 일반고 간 격차는 26.2%포인트까지 커졌다. 교육 수요자인 학생·학부모에게 선택 받은 학교와 그렇지 않은 학교가 확연하게 갈렸다.

일반고 간 양극화는 강남·서초 외에 송파·양천·노원구에서도 공통적으로 발견된다. 송파구가 속한 강동·송파 학군의 격차는 같은 기간 11.4%에서 14.2%로, 양천구가 속한 강서·양천 학군에서 격차는 9.1%에서 14.2%까지 커졌다. 특히 사립여고의 선전이 눈에 띈다. 2015학년도 수능 기준으로 강남구 일반고 중 수능 2등급 이내 학생 비율이 가장 높은 학교는 숙명여고(33.2%)였고, 서초구는 서문여고(15.1%)다. 임성호 대표는 “여학생이 갈 수 있는 자사고가 적다보니 여학생들이 학력 수준이 높은 여고로 쏠리는 현상이 더 심해졌다”고 진단했다.

일부 공립 남녀공학은 학부모들 사이에서 기피하는 학교로 악명이 높기도 하다. 강남구 소재 13개 일반고중 2015학년도 수능 2등급 이내 학생 비율이 낮은 5개 하위그룹에 3개의 공립 남녀공학이 속해있다. 중학교 3학년 남학생 자녀를 둔 이모(46·논현동)씨는 “특히 공립남녀공학인 C고는 생활지도도 엉망이고 진학실적이 좋지 않아서 다들 제발 안 걸렸으면 하는 학교”라고 털어놨다.

선호학교와 기피학교를 가른 요인은 뭘까. 전문가들은 ‘교장의 리더십’을 꼽는다. 특목고·자사고에 비해 활용 자원이 부족한 일반고가 학종 대비를 하기 위해서는 학교 내 모든 교사들의 협력과 헌신을 이끌어내야 한다. 교사 각자가 2~3개씩 동아리를 맡아 지도하면서 프로젝트 수업과 각종 교내대회를 기획·운영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민병관 양재고 교장은 “일반고 변화를 이끌기 위해서는 단위 학교의 의지에만 기댈 것이 아니라 교장이 경영자로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돼야 한다”며 “교장에게 인사권을 보장하고 학교 예산과 교육과정을 자유롭게 편성할 수 있는 자율권을 폭넓게 보장해줄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글=정현진 기자 Jeong.hyeonjin@joongang.co.kr
사진=신인섭 기자 shini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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